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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여행] 동생 (11)

by 촌년 2014. 8. 24.

<농저널 농담> 박은빈

Llangadog, Carmarthenshire, Wales

연두색 화살표를 따라 촌스러운 여행의 목적지를 표시합니다.


(그동안 여행의 쿵닥거림 속에서 정신을 잃고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많아 어디서부터 해야 할 지 즐겁게 고민 중입니다. 다시 흐름을 가다듬고 9월 3일 수요일부터 2주마다 여행기가 시작됩니다.)



동생

 

내 자전거에 달린 네발바퀴가 닳고 닳아 달그닥거릴 때였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지면 멀리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친구들과 나는 온종일 뛰놀아 까무잡잡한 얼굴로도 모자라 껌껌한 저녁까지 더 놀고 싶었다. 집에 가면 혼자서 인형놀이밖에 더 할까. 옆집 병임이가 자기 동생이랑 집으로 뛰어가는 걸 보며 배가 아팠다. “나도 동생 만들어줘!” 그리하여 어느 역사적인 날에 나는 할머니와 단둘이 잠을 자게 되었다.

동생은 나보다 7살 어리다. 그 옛날 팔뚝만한 아기를 조심히 끌어안고 엄마 흉내를 냈던 기억이 난다. 동생이 기저귀 차고 엉덩이 불룩해서 뒤뚱뒤뚱 걸으면 넘어질라 손을 잡아주었다. 그랬던 녀석이 이제 키가 나만한 고딩이다. 인생의 절반을 떨어져 살기도 했고 내가 집보다 밖을 더 좋아하는 탓에 우리사이는 가깝고도 멀~. 게다가 내 이름도 지가 바꿨다. 성은 이씨요. 이름은 주일. 이주일. 2주일만 언니. 아주 오랜만에 집에 들르면 2주일을 더 못 버티고 다시 밖을 나섰던 게 이유다.

동생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학교 갔다가 밤 11시가 다되어 돌아오니 내가 집에 있더라도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 특히나 시험기간이면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져 방문 걸어 잠그고 새벽까지 공부를 했다. 다른 날엔 아이돌 팬이라면 꼭 알아야 할 유명 모 사이트에 접속하여 수많은 동영상을 체크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착한 내 동생은 제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나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어 했다. “언니! 이리와 봐! 이건 진짜 꼭 봐야 돼!” 그렇다고 갈 내가 아니었다. 난 누군가의 이번 앨범 신곡이 뭔지, 이번 생방송에서 얼마나 멋있었는지 궁금할 리가 없었다. 역으로 내가 같이 동네 산책하자고 꼬드기면 동생놈은 절대 넘어오는 법이 없었다.

그런 우리사이에 이야기 거리가 생겼다.

 

하루 대부분을 책상 앞에서 보냈던 녀석은 예상을 뒤집고 거뜬하게 밭일을 해내고 있다. 쉬는 시간마다 들리는 포효는 여전하나 애교로 봐줄만 하다. 힘들다면서 나도 못 드는 무거운 수레에 잡초 한 더미 더 얹어 끌고 간다. 뜨거운 한낮에 김매기는 죽을 맛이겠지 슬쩍 떠보니 자기는 농사일 중에서 김매기가 제일 잘 맞는 것 같단다. 아빠는 농기구를 손에 쥔 작은 딸내미 모습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지 참나. 농사꾼 다 됐네. 얘 원래 내가 밭에서 일하고 있으면 모른 척 지나가던 놈이었어.” 장난스레 내게 이른다. 농부의 딸은 단 한 번도 밭에서 땀 흘린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딸기가 길게 줄기를 뻗어 새끼 낳는 걸 보았다. 감자가 땅에 숨어있으니 무엇이 감자인지 초록 이파리보고 알아채는 것도 처음이다. 실처럼 가느다란 파를 줄맞춰 심고는 밭 한 귀퉁이에 작년에 심은 통통한 대파를 가리키며 이 작은 애가 나중에는 저렇게 크는 거야?” 묻는 귀여운 동생이다.


ⓒ박은빈

밭에 어지러진 잡초를 뽑고 나니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을 위해 일찍이 침대에 몸을 눕히고 막 잠 사이로 빠져드는데 동생이 막아섰다. “언니는 왜 농사가 좋아?” 눈이 번쩍. 방안은 까맣고 창문 밖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얘가 먼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물어오긴 처음이었다. 나긋하게 풀어헤친 내 이야기들은 방안에 온기를 더했다. 이야기는 늦가을과 한 겨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다음 해를 상상하며 밭이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재미,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봄이 다가오면 종이에 앉아있던 그림이 온몸을 일으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씨앗이 때늦게 움트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준다. 그 과정에는 예상치 못한 잡초무리도 찾아오고, 여름 더위에 고비도 스쳐지나간다. 계획할 수 없는 계획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배운다.

오밀조밀 다양한 채소들 보러 동네 아이들이 찾아오면 밭은 금세 시끌벅적해진다. 달마다 찾아오는 도시 친구들과 시골 동네에서 농사이야기로 꼬박 하룻밤 지새우는 것도 즐겁다.

동생은 한껏 들뜬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갸우뚱했다. 맞아! 나도 언니처럼 느꼈어! 와 같은 반응은 아니었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방금 막 태어난 아기 새의 심장소리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그렇구나 하고 말해주고 있었다.


ⓒ박은빈


돌아다닌 지 반년이 넘어가니 14일마다 친구들과 잠자리가 변하는 생활도 익숙해졌다. 다만 딱 한 가지 매번 바뀌는 밥상은 적응하기 어렵더라. 아무리 배고파도 맛있는 걸 먹어야만 하는 동생은 맛에 있어서 아주 깐깐하다. 다시 말해 맛있는 걸 먹는다면 인생 전체를 통틀어 행복한 표정과 몸동작을 자아내는 친구다.

동생이 참다못해 주방에 기웃거리기 시작한지는 오래되었다. 때마다 호스트 아주머니들도 대신 요리해줄 사람이 생겨 무척 반가워했다. 어떤 날은 피자를 만들겠다고 재료를 찾아 나섰다. “너 피자 만들어본 적 있어?” 괜스레 걱정되어 물어봤더니 역시나 아니, 전혀.” 동생은 태어나서 처음 만들어 보는 피자를 사람들에게 대접할 예정이었다. 어쩜 이리 태평할 수 있을까. 얘는 요리를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따위 없었다. 이미 동생의 눈동자에는 피자가 넝실거리고 있었다. 처음 다듬는 재료들을 만지고 집어먹으면서 언니! 이 파프리카 먹어봐! 파프리카 생으로 먹으니까 진짜 맛있어.” 그동안 조리가 다 된 음식들, 엄마가 차려준 반찬들만 먹던 애가 맛의 신세계에 눈을 떠갔다.

어제도 오늘도 일하는 중에도 쉬는 중에도 온종일 저녁 메뉴 생각이다. 또 다른 고민이 있다면, 국수 육수를 만드는데 마른멸치가 없어서 어떤 재료로 우려야 할지? 동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가 뭘 몰랐어. 왜 컵라면을 잔뜩 사왔을까. 춘장이나 멸치나 요리에 필요한 원재료들을 가져왔어야 했는데.” 그렇다. 우리가 한국에서 공수해온 비상식품은 라면이 전부였다. 피자에 이어 해물국수, 롤케익, 크레커 등등 각종 요리들을 섭렵한 동생은 , 정말. 내가 이렇게 만드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그동안 나는 내가 직접 만들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다 사먹기만 했어. 매일 학교 갔다가 돌아오면 엄마가 차려준 밥상 평가만 했지.” 한 숨을 이어 내쉰다.

모 그룹의 세 번째 콘서트를 그리며 그나마 태블릿에 남아있는 영상들을 통해 하루의 위안과 마음의 진정을 얻던 동생. 이제는 레시피 연구에 빠져있다. 뭘 해도 요리.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할 때도 요리 이야기로 시작한다. 만화를 봐도 요리만화,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봐도 요리채널, 책을 뒤적여도 요리책.

밭에서 일할 때도 다 똑같은 풀떼기들로 보였던 것들이 싱싱한 요리재료로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저녁 준비한다고 채소들을 물에 씻으며 동생이 물었다. “아빠! 우리 집에도 방울토마토랑 양배추 있어?” 이 질문에 대답은 아빠에게 넘어가기도 전에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 대박! 당연히 있지! 넌 거기 평생 살았는데도 여태 몰랐냐!” 옆에서 아빠는 할 말을 잃었다. 무언가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그걸 볼 수 있는 눈은 길러져야 한다. 오늘이 그 날인가 보다.


        

ⓒ박은빈


한동안 내가 떡볶이 노래를 불렀다. 길가 빨간 포장마차에 들어가 오뎅 국물을 종이컵에 한 국자 따르고, 아주머니가 떡볶이를 건네주면 이쑤시개로 뻘건 떡 하나 콕 집어먹던 그 맛이 그리웠다. “언니, 우리 떡볶이 먹을 수 있어.” “어떻게? 떡 있어?” “아니 없어. 하지만 방법이 있어.” “뭔 소리야. 어떻게 만들어~” “우리에겐 쌀이 있으니까!” 동생은 진심이었다. 모내기하고 손 김매기하고 벼 추수하고 볏짚은 묶어봤어도 떡은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동생은 영국 시골마을에 슈퍼란 슈퍼는 다 뒤지며 쌀가루를 찾아다녔다. 결국 손에 쥐어진 건 통통한 쌀 한 팩. 녀석은 일이 끝나고 쉬지도 않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쌀을 가능한 한 잘게 갈기 위해 늦은 저녁까지 웅웅거리는 믹서기 소리가 온 집안을 울렸다.

쌀가루를 조물조물하더니 몇 분간 푹 쪘다. 방앗간에서 나는 떡 냄새가 솔솔. 그릇에 정말 떡 같은 게 똥글똥글 뭉쳐있었다. 어렵게 얻은 참기름을 묻히고 돌돌 말아 떡볶이 떡을 마침내 완성시켰다. 그날 저녁은 떡꼬치에 떡볶이로 원 없이 그립던 입맛을 채웠다. “! 떡볶이 완전 맛있어! 너 내가 나중에 동네 애들이랑 벼농사 짓고 그 쌀로 떡 뽑으면, 네가 와서 떡볶이 요리 선생님 해줘라!” “그래! 바로 달려가지!” 동생과 내가 좋아하는 걸 공유하는 방식은 이 몇 마디에서 태어난다. 점점 불어나는 우리들의 교집합이 무시무시하게 기대된다.

여전히 동생은 요리사로 활약 중이다. 날로 구수해지는 손맛과 보글거리는 냄비,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얼마나 녀석이 즐거운지 알려준다. 14일마다 바뀌는 부엌 스캔이 만만치 않지만 요리를 할 수 있다면야! “엄마, 여행 끝나고 집에 가면 부엌에서 손 떼. 이제 부엌은 내 차지야.” 동생은 진지했고엄마는 만세를 외쳤다20년 넘게 부엌을 지키던 엄마는 흐뭇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게 될 것이다뒤늦게 동생이 아주 중요한 걸 깜빡했다는 표정으로 하는 말. “..근데 엄마. 설거지만 좀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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