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농사와 과학

[농사와 과학] 씨앗은 무엇을 담으며, 무엇을 닮는가 (1)

by 농민, 들 2014. 5. 27.


씨앗은 무엇을 담으며, 무엇을 닮는가 (1)


<농저널 농담> 떼알


시작하며

  2011, ‘IFOAM 세계유기농대회의 사전학술대회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는 유기농업에 가장 이상적인 씨앗이란?’ 이라는 주제로 의견 교환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유기농업 관련 전문가들이 씨앗의 생산 규정과 생산의 주체, 유용 형질과, 선발 환경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했습니다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국적 모를 백발의 노교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씨앗 속에 푸쉬케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재래종 수집을 다닐 때 겪은 일화를 말해 주었습니다. 재래종 밀을 재배하는 농부에게로부터 씨앗을 얻으면서 이 종의 장점이 뭐냐고 물어 봤더니 농부는 장점은 잘 모르겠지만 부인이 자신과 결혼할 때 가져온 씨앗이고, 부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를 재배한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노교수는 이 대화를 통해 부인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전해져 내려 왔을 가보와 같은 씨앗을 떠나는 딸에게 전해 주며 그에 담았을 어머니의 마음과, 떠나 온 부인이 느꼈을 씨앗에 대한 각별함, 그리고 씨앗을 심어 길러 내는 것으로 부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농부의 모습을 통해 씨앗이 담고 있는 푸쉬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고 했으며, 유기농업이 재배기술을 넘어 삶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씨앗에 담긴 혼과 마음을 간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과거, 씨앗에 담긴 푸쉬케 이야기에 넋을 빼앗겼었던 저는 지금, 애석하게도(?) 씨앗에 담긴 유전자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식물이 겪어 낸 치열한 적응의 과정과, 농부의 간절함을 담은 유전적 편집 행위를 통해 씨앗에 기록 되어진 살아냄의 아름다운 흔적에 대한 감동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 중이며, 씨앗에 대한 권리가 다시 농부의 손에 돌아오는 날과 푸쉬케유기농업에 적합한 형질을 담아 낸 품종의 육성을 꿈꾸고 있습니다.

저는 농담이라는 공간을 통해 씨앗과 작물에 관련된 과학적 이야기들, 그리고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분야인 육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다소 딱딱하고 지겨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농사의 모습 이외에 다른 모습들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씨앗의 역할

 식물학상 씨앗은 일반적으로 동일한 염색체의 수가 2배로 존재하는 이배체의 포자체’(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식물체) 세대와 염색체의 수가 반으로 존재하는 반수체의 배우체’ (꽃가루나 배낭 등의 배우자를 만듦) 세대가 번갈아 가면서 존재하는 식물의 세대교번과정에서 두 세대를 이어 주는 가교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세대교번을 하는 식물들은 양친의 배우자들이 수정되어 접합자를 형성하고, 이 접합자가 체세포 분열을 통해 다시 이배체 상태의 포자체 개체로 자라나는 과정을 연속적으로 거치며 생육과 번식의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그림1. 식물의 세대교번


부모 세대의 결실인 씨앗은 배와 배의 생육에 필요한 양분을 저장하고 있다. 씨앗 속에 존재하는 배는 포자체 즉, 어린 식물로 자라나 새로운 세대를 시작하게 되며 부모 세대를 다음 세대로 이어 나가게 된다. 따라서 씨앗은 식물의 생활사의 마지막 단계인 동시에 새로운 생활사의 시작이기도 한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끝과 시작을 동시에 지닌 오묘한 존재성을 나타낸다.

 농업에서 씨앗의 역할은 무엇일까? 후에 더 자세하게 다루게 되겠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작물을 기르고 재배하는 농업생산과정에 필수적인 투입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씨앗이 없다면 농업생산과정 자체가 진행될 수 없기 때문에 투입물이라는 표현보다는 땅과 함께 농업생산과정의 생산수단 자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


그림2. 농업생산과정

 

농업은 1차 산업으로써 땅과 씨앗이라는 생산수단에 노동력을 투입하여 작물을 길러 내고 그 결과로 곡물과 채소라는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농부들은 이 식량과 채소를 직접 이용하거나 교환 과정을 통해 생계 수단으로 이용하며 이를 가지고 다음해의 농사를 준비하게 된다. 씨앗은 작물생산과정의 시작인 동시에 작물의 결실인 곡물로서는 완성이기도 하다. 농부들은 이 생산물을 상품의 형태로 시장에 판매할 수도 있고, 다음 생산과정의 재생산 요소로서 이용을 할 수도 있다. , 씨앗은 농업생산과정에서도 생산수단이자 생산물인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시작이자 끝을 동시에 지닌 존재적 특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씨앗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앞서 설명했듯이 씨앗은 부모이자 자식이고, 투입이자 산출이기도 하며, 시작이며 끝인 동시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중 식물의 번식 수단으로서의 씨앗의 역할은 발아하고 성장하여 부모 세대의 모습을 다시금 재현하는 것이다. 현재의 씨앗은 1년 전의 모습을, 1년 전의 씨앗은 2년 전의 모습을, 2년 전의 씨앗은 3년 전의 모습을, 그 전의 씨앗은 더 이전의 모습을 닮아 왔을 것이며, 이러한 닮음의 재현 과정을 무수한 시간 동안 반복했을 것이다. 현 세대의 씨앗 속에는 이전 세대를 재현하기 위한 기억들이 유전자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씨앗 속에 담긴 이러한 기억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자연 선택’ (Natural selection) 이라는 환경에 의한 편집 과정을 겪어 왔다. 조상들이 살았던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던 형질(Trait)들은 그들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 했을 것이고, 살아남아 번식에 성공한 조상들이 어떤 환경 조건에서 적응해 왔느냐에 따라 다양한 기억이 후대에 전달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씨앗은 자연 환경에 의해 선발 된 적응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림3. 고지대에서부터 저지대에 걸쳐 다양한 수분 조건에 적응한 벼의 조상들

수분이 부족한 고지대에 적응한 벼의 조상들은 수분이 부족할 때 견디는 힘이 강했으며 밭벼의 형태로 진화 했다. 반면에 깊은 수심에 적응한 벼들의 조상들은 상대적으로 통기 조직이 더 발달하여 침수 조건에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이 강했다. 후에 물 위를 떠다니는 부도(심수도)형태로 진화했다.



다양한 환경에 적응한 조상종(Ancestral species)과 야생종(Wild species)들로부터 작물이 만들어지기까지는인위선택’ (Artificial selection) 이라는 농부에 의한 반복적인 선발의 과정이 필요했다. 최초의 농부들은 야생종들 중 자신들의 재배적 목표에 더 부합한 형질들을 지닌 개체로부터 씨앗을 확보하고 이듬 해에 다시 재배하는 일종의 선발을 반복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과거의 농부들은 재배와 수확에 유리한 형질들은 나타내고, 불리한 형질들은 나타내지 않는 대립 유전자(Allele)들의 조합을 작성했으며, 결과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식물인 작물을 점차적으로 육종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림4. 작물과 그의 조상종의 비교 

벼의 경우 왼쪽의 조상종과 비교했을 때, 탈립성이 적으며, 좀 더 직립된 형태의 이삭을 가지며, 상대적으로 까락이 없거나 짧다벼가 재배화 되어지면서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부위에 돌연변이가 생긴 SH1 유전자와암호화지역(Coding region)에 돌연변이가 생긴 PROG1 유전자가 나타내는 형질들이 농부들에게 선호되었고 이들 유전자를 지닌 개체들이 선발 되어졌다옥수수의 경우 재배종은 그의 조상종에 비해 탈립성이 감소된 씨앗이 여러 줄로 형성되어 있고곁가지의 수가 적다. 전좌(Translocation)가 발생한 Sh1-5.1 유전자와 이동유전자(Transposon)에 의해 발현 양상에 변화가 일어난 tb1 유전자가 나타내는 형질들이 농부들에게 선호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재배자의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변화된 형태의 식물을 만들기 위해 반복적으로 일어난 야생종의 유전적인 편집 과정을 작물의 재배화’ (Domestication) 라고 한다. 재배화 과정을 거친 대부분의 작물들은 그들의 야생종 조상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특징적인 차이를 나타내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씨앗의 크기 증가

2.생육의 균일성 증가 

3.정아우세 증가 (곁눈과 비교 했을 때, 끝눈의 생장이 더 왕성한 현상

4.탈립성 감소 

5.씨앗의 휴면성 소실 

6.섭취 부위에서 쓴맛과 독성을 나타내는 물질의 감소 

7.광주기의 인식과 개화의 동조 현상의 변화

 

야생종과 비교 했을 때, 작물은 야생 조건에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었던 형질들 대신에 재배에 적합한 형질들을 지니게 되었다. 철저하게 농부들의 바람에 따라 기형적인 형태적, 생리적 특징을 지닌 식물로 변화되는 과정을 겪었으며, 이들의 씨앗이 계속해서 선발, 재배 되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작물은 점차적으로 진화해 가며 농부의 바람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해 갔다.

 


씨앗은 무엇을 닮는가

 최초의 농부들에 의해 행해진 원시적인 형태의 육종의 결과로 형성 된 작물의 씨앗은 오랜 시간 동안 재배되고, 그 이후의 농부들의 다양한 바람에 따라 또 다른 선발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다. 동일한 조상종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더라도 선발의 목적이 다른 형질에 있을 경우, 이후의 작물들은 조상종과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그림5. 농부의 목적에 따라 야생겨자로부터 선발된 형질들

 

그렇다면 과거의 농부들은 어떤 바람들을 씨앗에 담아 왔고, 이 씨앗들은 어떠한 바람을 닮아 왔을까? 아마도 다양한 기후와 환경 조건에서 여러 형태로 농사를 짓던 농부들의 수 만큼이나 다양한 바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수분의 공급을 빗물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서 늘 물이 부족한 고산 지대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들에게는 오랫동안 수분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생존하여 수확을 얻을 수 있는 작물에 대한 바람이 있었을 것이고, 겨울이 빨리 오기 때문에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지역의 농부들은 제한적인 고온 기간 동안 재빨리 생장을 하고 수확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생필품을 만들 재료가 필요하거나 가축을 키우는 농부들에게는 신발과 모자를 만들고, 겨우내 사료로 이용할 수 있는 짚이나 왕겨 같은 부산물을 많이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각각의 농부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 시킬 수 있는 형질들을 지닌 작물들을 선발했고, 그 결과 농부들의 다양한 필요만큼이나 다양한 형질을 지닌 재래종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들의 씨앗은 다시금 재배되어 해를 지날 때 마다 조금씩 조금씩 농부를 둘러싼 자연 환경과 그들의 바람을 닮아 갔을 것이다.

 


지금, 씨앗은 무엇을 담아 내며, 닮아 가는가?

모든 농부들은 자신이 속한 환경 조건과 삶의 양식에 가장 적합한 형질을 지닌 씨앗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어 왔다. 내 바람을 닮은 씨앗을 계속해서 선발하고 재배하는 것이 과거의 농부였고, 농부의 바람을 점점 더 닮아 가는 과정을 통해 형성 되어진 것이 작물의 씨앗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씨앗들은 어떠한가? 지금의 씨앗들도 농부의 다양한 바람을 닮아 가는 과정을 겪고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씨앗은 철저하게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정책을 닮아 있으며, 그 속에는 이들의 목표에 적합한 형질들이 담겨 있다. 과거의 씨앗들은 그를 재배한 농부가 속한 다양한 환경과 다양한 삶의 방식, 그리고 다양한 재배 목적에 기인하여 하여 다양성을 나타낼 수 있었다. 지금의 씨앗들은 다양한 형질들 대신 대규모 재배와 다수확에 유리한 형질들만을 지니고 있으며, 농지의 환경 조건에 적합한 재배 방식 대신 표준화 된 재배 방식에 대해 적합성을 나타내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 보다는 일관된 삶의 방식을 고착시키는 데에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씨앗들은 농기계와 농자재의 필요를 강조하여 기업과의 필연적인 연결 고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단편적인 생산의 효율 증진과 규모화를 긍정하며 국가의 정책을 대변하고 있다.

다른 이의 바람을 닮은 씨앗을 통해 재배를 하고 수확을 하는 과정 속에 그와 다른 의도가 개입되려 할 때에는 충돌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충돌로 일어나는 문제들을 농부가 해결해야 하는 상황들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수확지수가 높고 뿌리의 길이와 키가 작은 형질을 지녀, 낮은 양분의 흡수력과 낮은 잡초와의 경합력을 나타내는 품종의 경우에는 뿌리 가까이에 다량의 양분을 필요로 하며, 제초제를 이용해 많은 잡초를 제거 해야지만 제대로 된 수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농자재의 투입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인즉슨 재배 과정에 가장 적합한 농자재를 사용할 때에만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질을 지닌 씨앗을 가지고 농자재를 사용하지 않는 재배 방식을 적용하였을 때에는 기대하는 수확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농자재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생겨나는 고충들은 농부에게 추가적인 비용과 노동이라는 형태로 부과 되어진다. 따라서 수확과 더불어 농사를 통해 주체적인 삶,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 농 생태계의 보전 등의 다원적인 가치들을 실현하고 싶은 농부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농업의 형태를 담보해 줄 수 있는 씨앗으로 농사를 지을 때에야 비로소 강제로 부과되는 비용과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며 주체적인 농부로서의 삶을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편에 이어서 계속)

 


 

- 참고 문헌 및 그림 출처

Rachel S. Meyer, Michael D. Purugganan, Evolution of crop species: genetics of domestication and diversification, Nature Reviews Genetics 14, 840852 (2013)

Doebley, John F. et al, The Molecular Genetics of Crop Domestication, Cell , Volume 127 , Issue 7 , 1309 1321 (2006) 

M. S. Wolfe et al, Developments in breeding cereals for organic agriculture, Euphytica, 163:323346 (2008) 

E.T. Lammerts van Buerena et al, The need to breed crop varieties suitable for organic farming, using wheat, tomato and broccoli as examples: A review, NJAS - Wageningen Journal of Life Sciences 58 193205 (2011)

Jikun Huang, Carl Pray and Scott Rozelle, Enhancing the crops to feed the poor, Nature 418, 678-684 (2002)

http://blogs.utexas.edu/mecc/2013/11/17/climate-smart-agriculture-more-rice-less-methane/

https://www.flickr.com/photos/ricephotos/collections/

http://www.doctortee.com/dsu/tiftickjian/cse-img/biology/evolution/mustard-selection.jpg

잭클로펜버그 2(2007), 농업생명공학의 정치경제, (허남혁, 옮김) , 나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