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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푸른들 시선20

[푸른들 시선] 농민잔치 박푸른들 ⓒ 박푸른들, 서울 명동, 2014년 10월 26일 부쩍 높아진 하늘과 시원한 바람, 은은한 향을 주변에 뿜으며 익어가는 곡식, 울긋불긋 탐스러운 과일을 보며 감탄할 세 없이 서울의 이른 가을걷이 잔치준비로 한동안 바빴다. 김장채소를 거두고, 밭에서 겨울을 날 작물을 심는 농민에게는 이른 잔치이다. 잔치 이름 앞에 ‘도농’이라는 단어가 붙여지기도 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잔치가 농산물 직거래나 다름없기 때문에 도시 소비자에게 맞춘다. 길러낸 농산물을 제값으로 많이 파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잔치를 즐겨볼 틈 없이 늘 준비와 뒷설거지를 도맡는 농민을 볼 때면 미안하다. 농민단체 실무자로 일하며 서울의 이른 가을걷이 잔치 준비로 초가을을 보낸 지 두 해째. 이제는 농민 서로서로를 위한 잔치준비를.. 2014. 11. 12.
[푸른들 시선] 기억그릇 박푸른들 ⓒ 2014.9.12 강원도 홍천 메밀밭. 클라우드에서 겨우 찾은 사진 중 하나 오랜 시간 준비한 일을 마무리하던 찰나 컴퓨터가 고장 났고, 컴퓨터 디스크와 함께 그동안의 일이 날아갔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A/S 센터에 가면 찾아줄 거니까.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당연히 컴퓨터는 내가 모르는 사이 나의 작업을 모두 기록해두었을 거라는 기대. 하지만 A/S 센터 기사는 디스크와 함께 모든 기록이 날아갔다고 말했다. 모든 기록. 두 눈으로 감상하기 보다는 카메라 액정을 보며 찍은 사진들, 갈겨쓴 글들, 이것도 추억이라며 지우지 않았던 예전에 사귀던 사람과의 데이트 사진, 묵혀둔 여행기록, 언젠가 필요하지 않을까하며 악착같이 모아둔 자료들… 모두. 포맷된 컴퓨터를 들고 집에 오는 길 잊고 싶지.. 2014. 10. 20.
[푸른들 시선] 가을 박푸른들 ⓒ 박푸른들 ▲ 2013. 11. 4 가톨릭농민회 쌀 공동수매 어느 덧 24절기 중 열여섯 번째 절기인 추분(秋分)이 지나고, 된서리가 묵직하게 내릴 한로(寒露)가 다가왔다. 이맘때 농민들은 논과 밭에서 쌀과 잡곡, 채소와 과일을 추수하고 김장채소 재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올 한해 농사와 농산물 출하를 평가하고 내년을 계획하는 모임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올해는 날씨가 속을 덜 썩이는 덕분에 작황이 꽤 좋다. 하지만 가격폭락 때문에 풍년을 그저 반길 수만은 없다. 또한 얼마 전 정부의 대책 없는 쌀 전면 개방 발표와 한중 FTA 협상들로 인해 농민들의 한숨이 더욱 짙게 들리는 가을이다. 2014. 9. 30.
[푸른들 시선] 막내를 잡아주는 둘째 -둘째 동생- 박푸른들 ⓒ 박푸른들 ▲ 2014. 9. 7 막내를 잡아주는 둘째 동생을 낳아달라고 조르다가 시들해진 내 나이 열 살, 동생이 태어났다. 늦둥이인 줄 알았던 동생은 네 살이 되던 해 동생을 보았고, 막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엉엉 울며 찾으러 나가는 언니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서로의 습관적인 표정과 행동을 보고 쉽게 마음을 알아챈다. 특히 누군가 슬퍼할 때 가장 먼저 안아 달래주는 둘째의 모습을 보며, 분명 타고난 돌봄이라고 생각했다. 이 돌봄이 동생은 자라면서 뛰어난 살림쟁이가 됐다. 무엇을 하나 먹기 위해서 요리의 긴 과정을 마다하지 않고, 우리 셋 중 고기를 가장 맛있게 굽고, 설거지 후 싱크대에 음식물이나 물기를 남기는 법이 없다. 엄마가 마실 커피를 가장 맛.. 2014. 9. 17.
[푸른들 시선] 평화로운 밤을 주는 시끄러운 놀이터 - 해 저물 무렵 우리 동네 - 박푸른들 해가 저물 무렵,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노는 동네아이들 ⓒ박푸른들 “혼자 살기 무섭지 않아요?” 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그러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얼마 전 이사를 한 우리 집 앞에 있는 놀이터를 은근히 떠올리곤 한다. 창밖을 내다보면 나무 사이로 보이는 그곳은 비행기가 뜨고 나는 것이 보이고, 큰 길로 자동차가 오가고, 지하철과 기차가 쉼 없이 다니는 사이에 있다. 이 작은 놀이터는 동네 사람들에게 참으로 요긴한 장소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사람들은 이곳에서 땀을 흠뻑 흘리며 운동을 하고, 뛰어놀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눈다. 덕분에 그 앞에 사는 나는 서울의 밤이 무섭지 않다. 시끄러운 집 앞 놀이터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평화로운 밤을 준다. 2014. 9. 5.
[푸른들 시선] 기도 박푸른들 ⓒ 박푸른들 교구 사제들이 돌아가며 참가한 세월호 참사 천주교 단식 기도회. 오후 12시, 1시, 3시, 4시 30분, 6시. 정해진 시간동안 입을 모아 조용히 기도문을 왼다. 광장 분수의 뿜어져 나오는 물소리, 노니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작은 기도소리는 묻히기 마련. 하지만 기도문을 외는 사제와 신도들은 잔잔하다. 기도가 끝나고 시작되는 사이, 함께 있지만 혼자의 시간을 갖는다.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을 읽고, 소일거리를 한다. 노란 배를 바느질로 짓고, 그 배에 수를 놓고, 리본을 만든다. 오랜 옛날 정해놓은 기도문을 같이 외지는 않지만 이 시간 또한 기도 같다. ⓒ 박푸른들 옆에서 배를 바느질로 짓던 나는 속으로 ‘대단한 말과 행동이 아니더라도, 빈자리를 메우고 앉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2014. 8. 19.
[푸른들 시선] 반짝 인터뷰 박푸른들 ⓒ박푸른들 “사람들은 나를 농민여성운동가라고 부르더라고요. 하지만 그 표현은 내게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농사를 지었어요. 그때 농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죠. 그런데 당시 아버지는 집에 면서기라도 오는 날이면 벌벌 떠는 거예요. 가톨릭 신자로써 모든 이는 평등하다던 하느님 말씀을 아버지와 나 모두 믿었는데 말이죠. 하느님 말씀처럼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때문에 농민운동을 하게 되었는지도 몰라요. 그 중 여성에게 집중한 이유는 농민의 50%인 그들이 생산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도리어 소외되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이것은 여성만의 일은 아니죠. 누구나 언제든 이런 대우를 받게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지난 30여년의 활.. 2014. 7. 31.
[푸른들 시선] 다시 꺼낸 사진 박푸른들 ⓒ박푸른들 검은 밤하늘을 밀어내는 신촌의 알록달록한 빛과 소리, 그 안에서 열렸던 세월호 참사 촛불문화제. 그때 그곳에서 만난 한 아이가 나의 시선을 자신만의 문화제에 살며시 초대했다. 가로수 옆에 앉아 딱딱해진 도시 흙을 사부작사부작 부수고, 그 보드라워진 흙에 밝게 핀 초를 마치 연약한 나무 대하듯 조심스럽게 심는 고요한 문화제. 지난 4월 신촌 세월호 참사 촛불문화제 사진을 다시 꺼내보며, 나는 이 아이처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몸을 일으켜본다. 2014. 7. 21.
[푸른들 시선] 경미언니 박푸른들 ⓒ 박푸른들 어쩌다보니 농고에 들어간 난 2학년이 되면서 2주간 농가실습을 가야 해야 했다. 학교의 오랜 전통이었다. 때는 이 때다 하며 집과 가장 먼 곳으로 가려는 아이들에게 경미언니 집 해남은 인기였다. 결국 나는 가위 바위 보를 해 이기는 덕분에 경미언니와 만나게 된다. 농가실습 선생님이던 경미언니를 8년 만에 만났다. 언니를 만나자 그때 기억이 어슴푸레하게 나를 감싼다. 한 여름 땀을 진탕 흘리고 누우면 찬 공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두껍고 단단한 흙집, 까만 밤길을 걸어 잘 짜인 판잣집 문을 열고 들어가 앉으면 큰 창에 별이 한 가득 떠 있던 화장실, 배고플 때마다 풀에 휘감겨진 텃밭에 용케 들어가 따내서는 감자 위에 삶아낸 그 빛난 옥수수, 널따란 고구마 밭과 길고 길던 고구마 순 작업.. 2014. 6. 30.
[푸른들 시선] 농사체험이 범람하는 시대에-농민의 하루를 따라서 박푸른들 © 박푸른들 산딸기, 오디, 앵두, 보리수가 탐스럽게 열리는 계절, 내가 일하는 곳은 신입 실무자 연수를 연다. 농민들과 직접 관계를 맺으며 일하는 농업단체이다 보니, 신입 실무자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을 ‘농업에 대한 이해’로 꼽는다. 그래서 연수가 열리는 장소는 농촌이며, 프로그램은 농사이고, 강사는 농민으로 짜여진다. 프로그램대로 농민들을 따라 하루 꼬박 일하고 나면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몸에서는 쉰내가 난다. 거기다가 더위를 먹었는지 입맛도 없다. 쓰러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니 매해 신입 실무자들은 일이 너무 힘들다며 아우성이다. 하지만 전업농의 현실을 파악하고 지원해야 할 사람들이, 가볍고 신나는 농사체험을 통해 괜한 환상을 갖게 될 수 있어 일의 강도는 늘 농민의 하루 리듬에 .. 2014. 6. 13.
[푸른들 시선] 리듬 박푸른들 날이 갑자기 더워져 식물들의 생육이 빨라졌다.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게 많은 농민들은 변화를 빠르게 직감하고 일을 서두른다. 그렇다고 작년과 같은 수확량에 수확시기가 약간 당겨지고 마는 건 아니다. 제때 뿌리를 내리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지 못하면 병해충에 쉽게 노출되며 수확시기와 수확량을 짐작하기 어렵다. 올해 농촌은 예년보다 빠른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다. ⓒ 박푸른들 집에 돌아오자마자 흙내를 폴폴 풍기는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전화를 붙들고 다음 날 일꾼을 모으고, 켜켜이 쌓아둔 모판 안 볍씨가 금세 트는 바람에 서둘러 못자리를 만들고, 다른 때보다 일찍 식물에 옮겨 붙은 병해충을 떼어내기 위해 약을 치고, 열과가 생기진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 박푸른들 요즘은 농민에게 전화하는 것도 미.. 2014. 5. 26.
[푸른들 시선] '농민 속도 모르고'-파꽃 박푸른들 © 박푸른들 입하(立夏)가 지났으니 아직 밭에 남아있는, 농민 속도 모르는 대파도 꽃을 금세 터트릴 것이다. 따뜻했던 지난 겨울을 보낸 채소들은 대부분 풍작이었다. 때문에 가격을 내려도 좀처럼 팔리지 않던 그것들은 간간이 팔리거나, 보다 못한 농민들에 의해 뽑히지도 못하고 흙과 함께 갈아졌다. 그리고 팔리지도 못하고 갈리지도 못한 것들은 밭에서 꽃을 피운다. 평당 12kg가 수확되어 한 관인 4kg에 6천500원~8천원에 팔릴 거라는 계산에 심겨진 어느 농민의 6백평 유기농 대파는 십분의 일도 채 팔리지 못했다. 대파를 팔아 밀린 농자재 비용과 품삯도 주고, 아이들도 키우고, 유기농업운동도 해야 하는데 날이 풀리고 꽃이 피니 팔릴 대파들이 줄어들어 마음이 급하다. 계약재배를 했다는 소비자단체가 .. 2014. 5. 16.
[푸른들 시선] 어떤 집을 고를까 평생 농촌에서 농부들과 어울려 살다가 서울에서 살게 된 자칭 촌년 박푸른들. 농적인 관점이 담긴 그의 다양한 시선을 사진과 짤막한 글로 소개합니다. 이 글과 사진은 에서도 연재됩니다.[농저널 농담] 박푸른들 동생 푸른산과 푸른내에게 논은 초여름이면 수영장이었고,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 박푸른들 궁핍한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남과 살기에는 다소 모난 성격 탓에 서울에서 산 2년 동안 이사만 4번째이다. 시간은 가고 짐은 늘어 거듭되는 이사가 부담스럽지만 여전히 더 안락한 집을 꿈꾼다. 요즘은 바깥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무섭지 않고, 집 주인과 부딪칠 일이 적은 곳이 부러워 아파트가 부럽다. 하지만 살고 싶은 집과 마을은 따로 있다. 넓게 이어진 논들 사이에 덜렁 있던 두 집 중 한 집이던 .. 2014. 4. 29.
[푸른들 시선] 아빠의 '똥 창고'-두엄 속에 손을 쑥 넣던 날 평생 농촌에서 농부들과 어울려 살다가 서울에서 살게 된 자칭 촌년 박푸른들. 농적인 관점이 담긴 그의 다양한 시선을 사진과 짤막한 글로 소개합니다. 이 글과 사진은 에서도 연재됩니다.[농저널 농담] 박푸른들 두엄더미를 긁어내, 속에 있는 따뜻한 두엄에 손을 넣고 싶어지는 건 순전히 아빠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가축우리에서 나오는 똥오줌을 우리 집 옆 큰 창고에 실어 날랐다. © 박푸른들 어릴 적, 살던 집 옆에 어느 날 큰 창고가 세워졌다. 마을사람들은 그걸 ‘똥 창고’라고 부르며 자기네들 가축우리에서 나오는 똥오줌을 실어 날랐다. 아빠는 그것들이 제대로 썩어서 익을 수 있도록 도왔다. 시간이 지나 두엄이 되면 마을사람들과 나눠 유기 농사를 지었다. 아빠의 두엄은 서울 아이들에게도 쓰였다. 그 때 우리.. 2014. 4. 17.
[푸른들 시선] 매화 필 무렵, 매실 농민들은… - 매실 농사기술 교류회 평생 농촌에서 농부들과 어울려 살다가 서울에서 살게 된 자칭 촌년 박푸른들. 농적인 관점이 담긴 그의 다양한 시선을 사진과 짤막한 글로 소개합니다. 이 글과 사진은 에서도 연재됩니다.[농저널 농담] 박푸른들 오랫동안 한 품목 농사를 짓게 되는 과수 농민들의 노하우는 논리적이다. © 박푸른들 진주에 매화가 만개했을 때 간 출장은 농민회 활동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 박푸른들 밀원식물로 대표적인 매실나무지만 품종에 따라 꽃가루 양 차이가 커서 여러 품종을 심어야 벌들이 모인단다. 내가 본 농민들은 그 어떤 주제보다 본인의 농사이야기를 할 때 가장 빛난다. © 박푸른들 농민회를 다니다보니, 진주에 매화가 만개했을 때 그걸 보러 가는 출장도 있다. 생산과 출하를 관리하는 일을 맡아서 그동안 출장이 많았다. 출.. 2014. 4. 10.
푸른들의 시선은 한 주 쉽니다 박푸른들의 연재는 한 주 쉽니다. 2014. 4. 7.
[푸른들 시선] 씨앗에 대한 ‘탐심’-책상 위 씨앗이 담긴 병 평생 농촌에서 농부들과 어울려 살다가 서울에서 살게 된 자칭 촌년 박푸른들. 농적인 관점이 담긴 그의 다양한 시선을 사진과 짤막한 글로 소개합니다. 이 글과 사진은 에서도 연재됩니다.[편집부] 박푸른들 어떤 겨울, 씨앗 보관을 잘한다고 마을에 소문난 농부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소문난 분들은 매해 꼬박꼬박 씨앗들을 바지런하고 꼼꼼하게 갈무리해두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하러 가니 농부들은 쑥스러워하면서 가을에 꽁꽁 싸매 집안 서늘한 곳 구석구석에 놓아둔 씨앗보따리를 풀어내며 씨앗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었다. 친정엄마가 매해 받아쓰던 것을 50여 년 전 시집 올 때 한 줌 가져와 오늘까지 쓰고 있다던 할머니, 20년 전 시어머니한테서 받은 호랑이강낭콩.. 2014. 3. 29.
[푸른들 시선] 할아버지와 나의 공유지 평생 농촌에서 농부들과 어울려 살다가 서울에서 살게 된 자칭 촌년 박푸른들. 농적인 관점이 담긴 그의 다양한 시선을 사진과 짤막한 글로 소개합니다. 이 글과 사진은 에서도 연재됩니다.[편집부] 박푸른들 봄을 맞는 바지런한 도시농부 우리 집 앞마당은 집주인할아버지가 요긴하게 쓰는 옥상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할아버지가 놓아둔 60여개 엇비슷한 화분들과 3개의 큰 빨래건조대로 빽빽하다. 도시농부인 할아버지는 한 해 동안 이 화분들에 상추, 토마토, 고추, 배추, 무를 차례로 길러낸다. 늦가을 무를 수확하고 나면 그나마 겨울동안 이곳은 내 차지가 되었다. 추위가 가시자 화분 흙 사이로 지난 해 거두지 못한 대파 밑단에서 싹이 삐쭉 올라왔다. 아쉽지만 이곳이 할아버지와 나의 공유지로 바뀌게 되는 시기이다. 요새 .. 2014. 3. 20.
[푸른들 시선] 짙은 계절 맛 평생 농촌에서 농부들과 어울려 살다가 서울에서 살게 된 자칭 촌년 박푸른들. 농적인 관점이 담긴 그의 다양한 시선을 사진과 짤막한 글로 소개합니다. 이 글과 사진은 에서도 연재됩니다.[편집부] 박푸른들 이상기후로 봄과 가을이 짧아졌다는 말들에 대해 나는 열외다. 농업단체에서 일하는 나는 일을 시작한 작년 봄부터 전국 농촌 여러 곳을 부단히 돌아다닌다. 철따라 농산물 생산과 출하에 대해 상의하러 농부들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농부들에게서 건네받은 먹거리들은 내게 계절을 짙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 ©박푸른들 ©박푸른들 ©박푸른들 ©박푸른들 ©박푸른들 ©박푸른들 ©박푸른들 2014. 3. 14.
[푸른들 시선] 매듭 짓고 준비하는 시간 농부 할아버지와 아버지, 이웃들 속에서 자라서인지 저 또한 농촌과 농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꼭 그래야 하는 이유를 찾은 것도 아니고, 반드시 그래야 할 일도 아니지만 나의 뿌리는 고향인 충남 홍성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서울에 있는 농업단체에서 일합니다. 사는 곳과 사무실은 서울이지만 주로 전국 농촌을 돌아다니며 농부들을 만나는 게 제 일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제게 간사라고도 하고 실무자라고도 부르지요. 하지만 이곳에만 일하고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재밌는 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듭니다. 그래서 결정사항을 충실히 따라야 하는 단체 실무자라는 정체성은 조금 옅습니다. 농촌과 농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 2014.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