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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6

[촌스러운 여행] 프랑스 동쪽에서 2 (14) 박은빈 멀찍이 떨어져 걷던 우리, 그리고 나란히 걸어가는 우리. ⓒ박은빈 프랑스 동쪽에서 2 “대박! 진짜 맛있어!!” 이 말은 지극히 한국 젊은이가 쓰는 단어조합이다. 감자튀김을 집어먹은 다니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눌한 한국말로 소리친다. 우리는 주로 마주보거나 같은 곳을 바라보며 밥을 먹는다. “너는 서양인하고 동양인이 어떻게 다른 것 같아?” 두 손으로 샌드위치를 들고 막 입으로 가져가려고 할 때 불현 듯 생각이 났는지 다니엘이 물었다. 몇 달 전만해도 방금 그 질문에 대해 혼자서 실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난다. “음…. 처음에 나는 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어. 근데 이제는 비슷한 것들만 보여.”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녀석의 얼굴을 보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에.. 2014. 12. 27.
[촌스러운 여행] 프랑스 동쪽에서 1 (13) 박은빈 Hennezel, Vosges, France연두색 화살표를 따라 촌스러운 여행의 목적지를 표시합니다. 프랑스 동쪽에서 1 몸은 마음의 발현이라 숨길 수 없다. 볼이 간질간질. 그러려니 했는데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피부가 벌겋게 부어올라 오돌토돌 두드러기가 나있는 것이다. 배도 살살 아픈 게 작년에도 응급실을 왕래하게 했던 장염은 아닐는지 왠지 불길한 예감이다. 여름을 지나며 뙤약볕에서 일했던 피로가 번진 걸까. 아니, 거기엔 다른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종종 친구들이 여행하는 내게 대단하다고 말해준다. 그 이유는 첫째도 가족, 둘째도 가족, 셋째도 가족이다. 도대체 어떻게 가족들하고 24시간 빼곡하게, 며칠짜리 패키지여행도 아니고 일 년 가까이 여행을 다닐 수 있냐며 묻는다. 오랜만에 엄.. 2014. 11. 12.
[촌스러운 여행] 두 나라, 두 농부, 두 아내 (12) Ashburton, Devon, England연두색 화살표를 따라 촌스러운 여행의 목적지를 표시합니다. 두 나라, 두 농부, 두 아내낮만 해도 해가 뜨거웠다. 날이 어스름해지더니 축축한 바람이 찾아오고 하나 둘 방울방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빗소리 들으랴 턱을 괴고 활짝 열어둔 창문 너머를 감상한다. 실 같던 비가 금방 굵어졌다. 멀리서 죤티가 헐레벌떡 장화로 갈아 신고 밭을 향해 뛰어간다. 뒤따라 죤티의 아들도 우비 단추를 채 다 잠그지 못하고 뛰어간다. 무슨 일이지? 그러고 보니 양들이 겨우내 먹을 풀을 베어 말린 게 밭에 그대로 있구나. 죤티는 며칠 간 마른 풀을 네모나게 묶어두느라 늦은 밤까지 바빴었다. 한 트럭이라도 비를 덜 맞히려고 저녁밥도 팽개쳐놓고 뛰어나간 두 사람. 아빠도 남일.. 2014. 10. 13.
[촌스러운 여행] 동생 (11) 박은빈Llangadog, Carmarthenshire, Wales연두색 화살표를 따라 촌스러운 여행의 목적지를 표시합니다. (그동안 여행의 쿵닥거림 속에서 정신을 잃고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많아 어디서부터 해야 할 지 즐겁게 고민 중입니다. 다시 흐름을 가다듬고 9월 3일 수요일부터 2주마다 여행기가 시작됩니다.) 동생 내 자전거에 달린 네발바퀴가 닳고 닳아 달그닥거릴 때였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지면 멀리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친구들과 나는 온종일 뛰놀아 까무잡잡한 얼굴로도 모자라 껌껌한 저녁까지 더 놀고 싶었다. 집에 가면 혼자서 인형놀이밖에 더 할까. 옆집 병임이가 자기 동생이랑 집으로 뛰어가는 걸 보며 배가 아팠다. “나도 동생 만들어줘!” 그리하여 어느 역사적.. 2014. 8. 24.
[촌스러운 여행] 니 똥보다 내 똥이 더 굵다! (10) 박은빈 Newport, Pembrokeshire, Wales10편부터 연두색 화살표를 따라 촌스러운 여행의 목적지를 표시합니다. 니 똥보다 내 똥이 더 굵다! 그날따라 저녁밥을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고대하던 냄비 뚜껑이 열리니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콩 볶음이었다. 엄마는 들었던 포크를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고 짐짓 태연한 척 물 한 컵을 비웠다. 앞에 앉아있는 호스트를 한 번 쳐다보고 부엌문을 한 번 쳐다보다가 힘없이 한 숟갈을 뜨고 식사를 마쳤다. “이건 정말 너무했다.” 엄마 말에 동생이 한 마디 거든다. “난 일찍부터 여기서 먹는 건 기대도 안했어.” 아침엔 시리얼 한 그릇, 점심엔 빵 두 조각에 사과 하나 먹고 해가 떠있는 온종일을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심심한 입을 달랠 간식은 있을 수 없.. 2014. 7. 14.
[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가족, 촌스러운 여행 (5) 2014년 2월, 가족들과 유럽 시골마을로 일명 촌스러운 여행을 떠난 박은빈의 기록입니다. 박은빈과 그녀의 가족이 유럽여행 중 만나는 다양한 농촌과 농업 협태를 전합니다. 매달 첫째, 셋째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농저널 농담] 박은빈 영국 런던에서 두 시간 거리의 레드필드(Redfield Community)와 남서쪽으로 멀찍이 떨어져있는 비치힐(Beech hill Community)을 연이어 찾았다. 이 두 공동체는 서로 다른 곳이지만 한데 엉키는 지점이 많아 하나의 글로 묶어보았다. 근 한 달간 함께 생활했더라도, 시기와 계절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이면은 당연히 알 수 없다. 여름이 되면 가냘프던 나무들도 울창하게 잎을 껴안듯이 그들에게도 다른 일상이 펼쳐질 것이다. 내가 만난 2014년 봄의 그들을.. 2014.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