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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빛으로 그린 농사8

[빛으로 그린 농사] 조촐한 갈무리 문수영 ⓒ 문수영 ⓒ 문수영 학교 정원을 수놓던 붉은 화살나무는 어느 날 밤 내리던 굵은 비에 잎을 다 떨어뜨렸다. 다시 채우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새벽마다 차가운 서리가 옅게 흩어 내리면 마치 눈이 쌓인 것처럼 지붕 위에도 마당 안에도 새하얀 가루들이 쌓여서 하나의 길을 만든다. 나의 가까운 친구는 계절마다 특정한 냄새가 있다고 했다. 지금은 아주 춥고 시린 시절이지만 숨을 깊게 들이쉬면 시원한 냄새가 난다고. 그게 참 좋다고. 나도 콧물을 훌쩍이며 오들오들 몸을 떨다가 큰 숨을 들이쉬어 본다. 맑다. ⓒ 문수영 ⓒ 문수영 ⓒ 문수영 갈무리 잔치 때 사진을 올렸으면 좋았겠지만 그 날 계속 무대에 올라야 했던 탓에 남겨둔 사진이 없어서 추수감사제 예배 때의 즐거운 얼굴들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갈.. 2014. 12. 4.
[빛으로 그린 농사] 벼바심 하러 가유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2학년인 문수영이 학교와 지역에서 살며 배우며 겪게 되는 것들을 2주에 한 번씩 빛으로 그려냅니다. [농저널 농담] 문수영 ⓒ 문수영 가을빛은 아름답다. 여기저기 내려앉아 머물면서 전체를 환하게 비춰준다. 그래서 가까이 보아도 빛이 반짝이는 걸 알 수 있고 멀리서 보아도 빛나는 풍경이 눈 안에 가득 들어온다. 이렇게 일주일 내내 따뜻하고 맑은 기운의 날씨를 느낄 수 있는 건 바로 지금 한 철 뿐이라고 한다. 매일 밤이 지나면 길가에 있는 주변 논에서는 하나 둘 논이 비워진다. 어느새 벼 베기가 한창이다. 학교에서도 남은 밭일들을 하며 벼 베기 알맞은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 충청도에서는 벼 베기를 벼바심이라고 부른다. 하루가 다르게 노란빛이 더해지는 논을 보면서 바심이라는 말이 .. 2014. 11. 2.
[빛으로 그린 농사] 이삭 팰 무렵 - 쌀 이야기 - 문수영 ⓒ 문수영 바야흐로 이삭이 패어나는 때이다. 논에 빽빽하게 들어선 벼들은 이제 더 이상 위로 자라지 않는다. 통통한 열매들을 저마다 만들어낸다. 벼꽃은 새벽에만 피는데 이삭 주머니 안에서 꽃이 터지고 나서는 조그맣고 하얀 수술이 이삭 사이사이에 피어오른다. 저녁 어스름할 때 논길을 걷거나 논둑에 앉아 있으면 코 밑으로 구수한 냄새가 퍼진다. 벼꽃 냄새다. 다른 꽃향기처럼 특별하진 않지만 우리가 매일 꼭꼭 씹어 삼키는 밥맛처럼 편안하다. 꽃을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면 풀 아래 숨어 쉬던 개구리는 사람 발자국 소리에 놀라 물속으로 퐁퐁 뛰어든다. 작은 물살이 일어나고 개구리 헤엄치는 소리가 하나의 노래가 되어 귓가에 울려 퍼진다. 이 계절, 논의 모습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그.. 2014. 9. 13.
[빛으로 그린 농사] 여름날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2학년인 문수영이 학교와 지역에서 살며 배우며 겪게 되는 것들을 빛으로 그려냅니다. [농저널 농담] 여름날 문수영 ⓒ 문수영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떠들썩한 이 밤, 하늘색이 불타오른다. 바람소리가 요란스러워 창문이 흔들댄다. 얼마나 무섭게 쏟아지려고 이러는 걸까. 거의 한달 동안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밭은 엉망이 되고야 말았다.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아 딱딱하게 땅이 메마른가 하면 갑자기 때를 모르고 몰아치는 비바람에 참깨와 옥수수가 쓰러져 누웠고 생강은 옥수숫대에 깔려 꺾여버렸다. 저번 주 내내 내린 비로 풀들은 한 뼘씩 더 자라 무릎까지 컸다. 여기가 풀밭인지 그냥 밭인지 알 수 없을 노릇이었다. 나는 늘 어깨에 걸치던 사진기를 벗어던졌다. 끝없이 자라나는 풀과 싸우려면 온.. 2014. 8. 5.
[빛으로 그린 농사] 메시지 안녕하세요! 농담을 통해 풀무학교 전공부의 기록을 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에세이를 연재하는 수영입니다. 일에 치여서 허둥지둥 살다보니 늘 연재한다는 생각을 깜박하면서 지내게 되는 것 같아요. 때문에 연재 약속을 못 지켜서 마음에 콕콕 걸리네요. 이번 주는 전공부 여름 휴가 중이에요. 그래서 사진과 글을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사진이 안 읽히는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요. 흑흑. 학교에는 모든 사진이 저장된 하드디스크가 있으니, 학교에 돌아가면 보내도록 할게요^_^. 2014. 7. 28.
[빛으로 그린 농사]한일자로 늘어서서 입구자로 심어를 보세!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2학년인 문수영이 학교와 지역에서 살며 배우며 겪게 되는 것들을 2주에 한 번씩 빛으로 그려냅니다. [농저널 농담] 한일자로 늘어서서 입구자로 심어를 보세! -손 모내기 이야기- 문수영 ⓒ 문수영 못자리 설치 후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흘러간 시간만큼 흙에 파묻혀 보이지 않던 볍씨는 어느새 초록색 싹을 틔워냈고, 어서 논으로 내보내달라고 애원하기라도 하는 듯이 빠른 속도로 자라났다. 우리는 짧디 짧은 2박 3일 휴가를 마치고 실습주간을 맞았다. 실습주간은 모내기철과 일찍 뿌려놓은 양파, 마늘, 감자, 완두콩의 수확 시기를 말한다. 이 때는 오전, 오후 다 논밭으로 나가 농사일을 하며 지낸다. 어쩌면 앞서 했던 모든 실습이 이 힘들고 바쁜 주간을 위한 몸 만들기였는지도 모르겠다며.. 2014. 6. 25.
[빛으로 그린 농사] 실습주간 맞이 몸풀기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2학년인 문수영이 학교와 지역에서 살며 배우며 겪게 되는 것들을 2주에 한 번씩 빛으로 그려냅니다. [농저널 농담] 실습주간 맞이 몸풀기 - 전공부 체육대회 이야기 - 문수영 ⓒ 문수영 5월이면 풀무학교 전공부 식구들끼리 하는 체육대회가 열린다. 비가 퍼붓는 날이 아니고서야 바쁜 농사일로 학교에서 지지고 볶으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마음 놓고 푹 놀 수 있는 때가 바로 이 체육대회다. 선생님들, 학생들, 전공부를 졸업한 수업생들까지 삼삼오오 모여 준비한 놀이를 하면서 들판에 드러누워 쉬고 먹는다. 전공부 안에는 뛰어놀 수 있을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푸른 잔디도 깔려있고, 넓어서 움직이기 좋은 근처 풀무고등학교 운동장을 빌렸다. 요 며칠 5월 같지 않게 날이 흐리고 바람이.. 2014. 5. 16.
[빛으로 그린 농사] 작은 볍씨가 논으로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2학년인 문수영이 학교와 지역에서 살며 배우며 겪게 되는 것들을 2주에 한 번씩 빛으로 그려냅니다. [농저널 농담] 작은 볍씨가 논으로 - 못자리 설치 이야기 - 문수영 ⓒ 문수영 이틀 전, 미리 물을 받아놓은 논이 참방하게 잠겼다. 금요일 아침 8시부터 부랴부랴 물장화를 신었다. 올해는 1학년 친구들 덕분에 농사일이 손쉽다. 고작 네 명뿐인 2학년이 힘겹게 해내는 일을 그들은 여럿이 모여 나오는 밝은 기운으로 뚝딱 해치워버린다. 그래서 계획보다 볍씨 파종도 일찍 끝났고, 일이 조금 앞당겨지긴 했지만 여전히 할 일은 많았다. 줄자, 못줄, 삽, 레이크, 써레를 챙겨 하이디논(학교 바로 밑에 있는 갓골논들의 못자리논)으로 급하게 내려갔다. 줄자를 길게 늘어뜨려 180cm 길이의 두둑.. 2014.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