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밖간사의 사무실 공상

[밖간사의 사무실 공상] 사무실 탈출기

by 농민, 들 2014. 11. 27.

서울의 한 시민단체에서 불평을 늘어놓으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 '밖간사'의 셀프 위로 글쓰기입니다. 이 글은 매주 일요일 연재됩니다.


<농저널 농담> 밖간사

ⓒ 밖간사



1. 오래 앉아있으면 유체이탈 할 것 같은 나에게 하루 8시간 사무실 근무는 몹시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점심을 먹고 앉아있을라치면 속이 더부룩해 죽겠다. 낮에만 볼 수 있는 바깥의 알록달록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것도 억울하다. 참지 못하고 화장실도 가보고, 물도 마시고, 사무실을 서성여보지만 답답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무실에 2년 동안 다닌 걸(혹은 버틴 걸) 보면 누구 말마따나 장하다. 그러고 보면 학교를 다닐 때도 이랬다. 수업을 하다 말고 답답하고 가쁜 숨 때문에 바깥에 나가 바람을 쐰 적이 종종 있었다.

엄마는 내게 ‘외근도 가고, 강압적인 분위기도 없는 지금 일이 너에게는 딱’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좀 더 나가고 싶다. 좀 더 자유롭고 싶다.


2. 어제는 사무실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 걸리는 곳으로 외근을 갔다. 행사 사진 고작 몇 장을 위한 동행이었다. 굳이 사진을 잘 못 찍는 홍보담당자가 갈 필요 없는 자리였지만, 잠자코 따라나선다. 작년만 해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장거리 외근을 갔지만, 지난 봄 부터 바뀐 업무 탓에 어제는 실로 오랜만의 외근이다. 낯선 업무 때문인지 일 년 내도록 나갈 구실을 잘 만들지 못했다.


3. 볕이 서울 구석구석을 훑는 날이면 늦은 출근과 이른 퇴근을 하는 P가 부럽다. 나는 평소 P의 출근을 보며 게으르다고 놀리는데, P는 할 일이 적으니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짧은 건 당연하다며 도리어 유연하지 못한 나의 출퇴근시간을 놀린다.

자유로운 출퇴근시간을 논하기엔 뻣뻣하고 노쇠한 시민단체의 막내 실무자에게는 걸어서 5분 걸리는 우체국 가는 일이 낙이다. 하나 있는 작은 창문마저 다 열리지 않아 공기청정기를 틀어야만 하는 가혹한 사무실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우체국 업무를 냉큼 받는다. 다녀오는 시간 10분, 우편을 보내는 시간 5분. 2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우체국에 다녀오면 찬물로 뽀득뽀득 씻은 것처럼 상쾌해져 퇴근시간까지 버틸 수 있게 된다. 그 맛을 아는 나는 20분 일찍 퇴근해 우체국에 들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4. 나는 내가 기분 좋아질 소소한 일 몇 가지를 안다. 업무 도중 우체국 가는 일은 그 중 하나이다. 그 중에는 수영수업 전 사람이 없는 수영장에서 하는 평형, 집에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여유롭게 똥 누기, 추운 날 옷을 잔뜩 껴입고 바깥에서 마시는 술, 퇴근 후 예능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기도 있다. 꼭 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놓치면 아쉬운 일들이다. 욕심껏 쥐고 있는 일 없는 요즘은 이것들을 놓치는 날이면 무척 서운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