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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농촌여성이 말한다 ① 농촌의 페미니즘, 연애, 결혼

by 농민, 들 2018. 3. 16.

1월 28일 밤 10시. 단톡방에 농촌에 사는 청년여성 아홉 명이 모였다. ‘3.8 여성의 날’을 맞아 ‘농촌 페미니즘’ 토론회를 열자는 ‘왱왱’ 기자의 제안이었다.


정리, 발행-헬로파머



"미투로 매일이 시끄러운 요즘. 하지만 농촌에서는 미투도 페미니즘도, 다른 세계의 일로만 느껴진다. 그녀들의 이야기가 자신들의 언어로 직접 전달될 수 있도록, 농촌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 기사를 위해 진행했던 농촌 여성들과의 인터뷰의 전문을 공개한다." -헬로파머 왱왱 기자




[왱왱] 진행자 언젠가 귀농·귀촌을 꿈꾸는 도시 직장인. 페미니스트를 정체화 하며 페미니스트가 되어가고 있는 과정인 사람.


[덕자] 본격적으로 농사지을 준비 중. 농한기인 농사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사회의 성차별을 인지한,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바라며 살고 있는 페미니스트.


[덜꽃] 홍천에서 농사짓는 사람. 모든 차별과 폭력에는 반대하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문제화 시키고 해결해 나가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어 페미니스트로 정체화 하지는 않음.


[연근] 귀농 생활 1년차. 페미니즘이 나를 설명하고 이해하게 도와주는 수단이라 생각하는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으로 자신이 경험한 성차별이나 스스로의 폭력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삼는다.


[삐삐] 곧 삼형제의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 페미니즘을 지지 하고 지향하지만, 사실 아직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저에게 명확하지 않은 상태.


[봄] 5년간 농사짓다가 잠깐 다른 계획을 짓고 있음. 여러 편견에서 자유로우려 애쓰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생각함.


[수수] 부여에서 농사짓고 있음. 전 모든 차별에 대해 거부감, 반대를 가지고 있는 페미니스트. 하지만 차별을 받는다 생각하지만, 나 또한 누군가에 대해 차별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자신 있게 이야기 하지는 못함.


[서연] 이십여 년 전 자연체험 진행하면서부터 관심이 있어서 작년에 귀농할 작정으로 홍천으로 이주. 현재 마을 사업 중.


[달짱] 사회적 성차별을 감지를 하나, 아직 한국사회구조가 성평등 인지 수준이 낮기에 공개적인 페미니스트의 운동성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사람.


ⓒ 들



농촌, 페미니즘

"요즘 도시에서는 페미니즘이 열풍이죠. 농촌에서는 어떤가요?"


[봄] 솔직히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삶의 공간에서는요. 인터넷 혹은 이런 그룹활동에서는 뭔가 활발하게 얘기 되는 것 같긴 한데 실제 제가 살고 있는 농촌, 마을 그 현장에서는 그 단어조차 생소하고 낯설어요.


[달짱] 저는 친근감 있게 느껴지지 않고, 다른 것에 집중 되어 있고, 심각한 성차별을 안 당해서 인지 그 단어가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연근] 페미니즘이 유행이라는 건 전혀 체감 안 돼요. 지리산에서 귀농한 사람들이 엮은 글을 본 게 페미니즘 관련한 이슈를 접한 게 전부라서. 우리 동네는 비교적 젊은 청년들이 많은 편이지만 그게 이야기 거리가 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덜꽃] 시골은 아직도 그래요 젊은이들도 많이 없고, 어르신들은 아직도...


[덕자] 저는 도시살이를 얼마 전에 마쳤고, 또 SNS를 하다 보니 도시와 농촌의 경계가 정확히 나뉘진 않아요.


[삐삐] 농촌에서 페미니즘이 유행이었나요? 저는 처음 들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농촌에서 페미니즘이 유행이라기보다는 ‘농촌’이라는 곳에 특수성 때문에 몇몇 곳에서 일어나는 페미니즘 운동이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덜꽃, 봄] 공감해요.


[봄] 사실 일상적인 대화상대조차 마땅찮은 마당에 페미니즘을 주제로 이야기하기는 참 어려운 현실이에요.



"그렇군요. 그럼 농촌에서 여성으로 살며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덕자] 겁 많은 여자인 저는 혼자 살 집 구하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가족 소유의 시골집은 길가에 있어서 여자 혼자는 위험해서 못 살겠고, 제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읍내 주공아파트는 근처 교도소 출소자들이 많이 산다고 하고.


[삐삐] 저는 ‘가족’ 이라는 틀 안에 있기도 하고…. 아직은 농촌에서도 시내권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농촌에서 여성으로서’느끼는 불편함, 혹은 불편한 문화가 크게 체감 되진 않고 있어요.


[수수] 농촌은 사생활이 굉장히 오픈되어있는 곳이라 장단점이 있다 생각해요. 저는 처음부터 저의 상황에 대해 다 오픈하고, 그래서 그런지 터치는 별로 없어요. 특히 혼자서 사는 여성들에 대해선 자꾸 누굴 연결시키려 하고, 이해를 잘 못하시죠.


[덕자] 저는 제게 추근덕 거리는 이웃이 정말 싫고, 무서워요. 얼마 전엔 꿈에 나와서도 괴롭혔다니까요. 이럴 땐 페미니스트랍시고 이것저것 외치던 게 허무해지기도 해요. 꿈에서 그 이웃이 결국 벌레로 변해버려서 제가 발로 콱 밟았다는.


[봄] ‘혼기 찬 여자가’, ‘혼자 산다’ 이 부분부터 이미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괜시리 겁이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실제 시골 사는 언니는 집으로 불쑥불쑥 들어와 버리는 몇 분으로 인해 개를 키우기 시작했을 정도예요. 뭔가 만만하게 여기시는 게 있더라고요. 덕자 고민이 실감나게 공감가요. 너무 당연하게 ‘시집와라’ 하시며 나이가 심하게 차이나거나 하는 분들을 엮으시기도 하죠.


[덜꽃] 거의 대부분 여성이 하고 있는 노동을 인정받지 못하고 남성들의 노동만 가치는 두는 일...


[수수] 그렇죠? 남성과 여성의 농업노동임금의 차이도 정말 말이 안돼요.



"혹시 가족농 하시는 분 계신가요? 부모님, 남편과 함께 농사지으며 겪는 고충이 궁금해요."


[봄] 5년째 가족농을 하고있죠. 가족 간의 농사철학이 다 다르니 매번 어렵고 다투게 되기도 하고...


[덜꽃] 저는 남편과 이제 6년째에 접어드네요.


[달짱] 저는 자라온 곳으로 귀농한 경우라 저는 모르고 저를 아는 마을 사람들이 다 친근하게 봐서 불편함이 없고, 그냥 도시에서 살았듯이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요. 단 밤이 되면 등이 없어 고요한 어두움이 아직 적응이 안되건 빼고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덕자] 부모와 함께 농사지을 때 겪는 세대차 등 때문에, 같이 농사를 짓다가 도중 포기했다는 친구들이 주변에 넘나 많았어요. 그래서 전 독립 경영체로, 가족과는 협업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어요. 거리두기.



"여성의 역할에 대한 강요를 받나요? 가사노동을 더 하거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하는 존재라거나 이런 거요."


[봄] 일하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밥하죠. 남자는 일하고 앉아있다가 밥 먹고 쉬다가 일하고요.


[덜꽃] 그런 인식을 갖더라고요. 제 남편도 있지만, ‘남자는 큰 틀을 보고 여자는 큰 틀을 못 본다’, 고로 ‘큰 틀을 보는게 우월하고 남성의 능력’이라 생각하죠.


[봄] 뭔가 두 배로 일하는 기분인데 당연히 남자가 더 힘든 일하니까 밥과 설거지는 여자 몫이다, 이런 건 있어요.


[수수] 여성의 역할은 공동체 안에서도 강요받고 있지요.


[덜꽃] 전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걸 모르는 게 우습더라고요 농촌생활은 모든 소소한 일거리를 다 해야하는데.



ⓒ 들




"바꿔보려는 시도는 해보셨는지 궁금해요. 시도 해보셨다면 어떤 반응이셨는지도요."


[봄] 당번을 정해본다거나 외식을 시도해봤죠. 남자나 여자나 일 끝나고 피곤한건 똑같으니까요. 그러나 별 성과는 없었어요. 아예 안 해버렸더니 욕만 먹고 할머니가 다 하시게 되어서 결국 다시 제 몫으로 돌아왔죠.


[덜꽃] 그걸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 게 이해가 안가요.


[달짱] 저는 첫해 아버지와 농사를 같이 지어는 해보고 싶은 농법이 있어 시도 하려다 가끔 부딪히는 상황이 와 내 땅이 생기면 실험해야지 하고 아버지 농법대로 농사지었습니다. 올해는 아버지께 도움을 달라 해서 제가 원하는 농법에 대해 대화도 하니 한번 해봐라 그러시더라고요.


[수수] 예를 들면 저희 공동체는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청소당번도 하고 식사당번도 하는데 저같이 혼자 농사짓는 여성은 청소도 식사도 다 하는데, 남성 혼자 농사짓는 분은 청소도 식사도 안하세요.


[덜꽃] 저희도 그랬어요. ㅋ


[수수] 한 두분 성향이 그러려니 했는데, 혼자 짓는 남성회원들은 한분 제외하고 자기 당번인데 안 하시고, 오히려 다른 여성회원들에게 부탁하고..


[덜꽃] 근데 저희 공동체는 오너라는 분이 귀농하신분인데도 너무 가부장적인 의식이 있어 힘들더라고요.


[봄] 꼭 똑같이 하길 바란다기 보다 그 노동을 그만큼의 가치로 이해 못 하는 것 같아요.


[수수] 그런데 언니들도 그걸 받아들이시고.. ㅠㅠ 그게 더 힘들었어요. 혼자 사니까.. 이리 말씀하시는데.. 저도 혼자 사는데.. 아마 제가 청소 안하고 식사당번 안했음 엄청 입방아에 올랐을 거예요.


[덜꽃] 저희 남편도 도시에서 도시농업 할때 많이 분담했는데 시골오니 달라지더라고요. ㅜㅜ


[봄] 맞아요ㅋ 풀 안맨 집 있으면 절대 남자 욕 안나와요, 여자 욕 하시죠. 게을러서 풀도 안맨다며. 할머니들의 아주 큰 이야깃거리죠.



"그래서 농촌 남자들이 여자들 보다 ‘결혼상대’에 더 절실한가 봐요. 여러분도 혹시 농촌이라 연애나 결혼에 대한 한계가 느껴지시나요?"


[달짱] 농촌이든 도시든 연애나 결혼은 마음먹기인 것 같아요. 장소분간 없이요.


[봄] 어려움보다 간섭과다?


[수수] 그럼요. 저는 결혼은 생각이 없고, 연애는 하고픈데 사람이 없어요.. 물론 농촌에 혼자 있는 남성들은 많지만, 나이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나이가 적게 차이 나더라도 세대 차이는 엄청나고.. 그리고 농촌에선 ‘결혼 안하고 연애만?’ 이게 이해가 안 되지요.


[봄] 의사와 상관없이 엮어 주시는 것.


[덜꽃] 시골에선 여자가 남자의 서포트하는 존재로만.


[봄] 아 데이트! 같이 밭일하다 뽀뽀라도 할라치면 거참(웃음).


[덕자] 왕 이해(웃음).


[삐삐, 덕자] 부끄(웃음).


[봄]남자인 친구가 왔다 가면 온 동네에 소문나요. 남자친구 바뀌면 동네사람 말 무서워서 못 헤어지게 하시기도 하고요(웃음)



"결혼에 대한 입장은 어떠세요? 꼭 해야 한다? 안해도 된다?"


[삐삐] 자기들 맘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달짱] 혼자 살 능력이 되면 혼자 사는 건 괜찮은 것 같아요. 도시는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아 괜찮았는데, 농촌에 와보니 여러모로 남성이 해야 할 일과 내 편이 있었으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덜꽃] 저 뜻이 맞다면 결혼은 선택이지 필수는 아니다.


[봄] 아 26살 즈음에는 금값이다 하며 후딱 팔아 치워야 할 대상인 듯 말씀들 많으셨어요.


[수수] 저도 달짱님 얘기에 공감이 많이 돼요. 농사라는 공간이 워낙 혼자 하다 보니 많이 외롭기도 하고 내 편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지요.


[봄] 30 즈음이 되니 애도 못 낳겠다며 말씀들 많으시고.


[덕자] 아, 저도 달짱 생각에 동의해요. 저도 요즘 내 편이 필요하단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게 도시와 달랐네요.


[달짱] 솔직히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경제적 기반도 있지만 함께 고민하는 님이 있었으며 하고, 혼자 농사가 아닌 같이 삶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동지의 필요성을 느껴서입니다.


[수수] 저는 할머니들한테 어째 친정 엄마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 시어머니 같은 사람만 있냐고 봄님한테 하는 얘기들 하시면 막 뭐라고 해요.


[달짱] 도시에서는 직장 생활하고 문화 누릴 것 누리고 나름 노후 준비를 해왔는데, 농촌에서는 외로움이 가장 큰 것 같고, 누군가 있었으며 하고 혼자보다 둘이 다른 방향이지만 방향을 맞춰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하는. 아직 비혼이라 결혼에 대한 착각이 있나 봐요.



※농촌여성이 말하는 농업노동과 꿈꾸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②편에서 이어집니다.


ⓒ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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