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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농촌 청년여성 생활수기] 연두의 생활수기

by 농민, 들 2018. 3. 12.

3차 청년여성농민캠프 참가자들의 생활글쓰기 공동프로젝트. [농저널 농담]



<강원도 화천 무인농장> 연두



평창올림픽으로 온 세상이 뜨거울 즈음에 나는 강릉과 평창을 오가며 공연을 했다. 올림픽을 위해 사라진 많은 생명들에게 미안해할 틈 없이 연습과 공연을 하며 지냈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개막식 때 공연하느냐고 물었다. 난 A급이 아니라 그렇진 않다고 말했다. 공연비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고생만 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해주었다. 나는 말했다. 좋아서 하는 거예요.




ⓒ연두



화천에 이사한 후 새로운 장구선생님을 만나고 다시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첫 공연 후에 생각했다. 아, 맞다. 이것도 쉽진 않았지... 몇 분 공연을 위해 몇 달을 준비하고 무대에서 그 시간들을 불태워 빛나야 한다는 것. 전날 무대의상을 정성껏 다리고, 화장을 곱게 해야 한다는 것. 몇 분을 위해 하루를 온전히 보내야 한다는 것.


평소에 화장품도 제대로 바르지 않는 나라서 두꺼운 화장은 곤욕이었다. 연습을 위해 차로 두 시간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연습하고 집에 들어오면 밀린 집안일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막상 악기 치고 춤추는 그 순간은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연습이 시작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풀렸다. 무엇보다 아이 낳고 달라진 몸의 느낌들이 신기했다. 나이를 먹고 몸이 달라져서인지 예전이랑 다른 기분과 느낌이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이제 남의 눈치 덜 보고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보이면 어쩌나 저렇게 보이면 어쩌나 머리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내가 악기를 치고 호흡하는 이 시간이 마냥 좋아서 그런 생각할 틈이 없었다. 될 대로 되라지라며 악기를 치고 춤춘다. 전에 하지 않았던 짓을 해본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 몸의 선과 틀을 벗어나보는 것은 짜릿하고 재미있다. 더 나이 들면 세월만큼 몸짓과 가락이 더 맛있어 지려나^^




ⓒ연두



난 타악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다. 풍물굿으로 맺은 인연들이 날 여기까지 끌고 왔다. 굿판이 좋고 판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아 길을 걷다보니 여기까지 흘러왔다. 멀리서 굿치는 소리가 들리면 뱃속이 간질간질하며 놀고 싶어진다. 결국 내가 좋아서 이러고 있는 것이다. 그곳이 무대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악기를 치는 순간과 춤을 추는 순간에 온전히 날 만나고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 안에 미생물이 꿈틀거리는 일은 굿쟁이로 판에 서있을 때라는 사실을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다시 알게 되었다.


지난 정월대보름 달이 훤히 비추는데, 보름굿을 치지 못한 아쉬움인지 달이 밝아서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달집도 태우고 사람들이랑 신성한 불놀이하며 놀았어야 했는데 그것을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나보다. 내년 대보름에는 꼭 보름굿을 치고 싶다. 농사 잘 지을 수 있게 온 생명들에게 정성들여 굿도 치고, 마을 사람들이랑 보름달 밑에서 대동놀이도 할 수 있길. 올해의 보름굿은 연습과 공연으로 퉁 쳐야겠다. 이 굿심(心)으로 올해 미생물들이랑 사이좋게 농사지어야지.


아, 다시 움트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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