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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푸른들 시선

[푸른들 시선] 경미언니

by 농민, 들 2014. 6. 30.

<농저널 농담> 박푸른들

 

ⓒ 박푸른들

 

 어쩌다보니 농고에 들어간 난 2학년이 되면서 2주간 농가실습을 가야 해야 했다. 학교의 오랜 전통이었다. 때는 이 때다 하며 집과 가장 먼 곳으로 가려는 아이들에게 경미언니 집 해남은 인기였다. 결국 나는 가위 바위 보를 해 이기는 덕분에 경미언니와 만나게 된다.

 농가실습 선생님이던 경미언니를 8년 만에 만났다. 언니를 만나자 그때 기억이 어슴푸레하게 나를 감싼다.

 

 한 여름 땀을 진탕 흘리고 누우면 찬 공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두껍고 단단한 흙집, 까만 밤길을 걸어 잘 짜인 판잣집 문을 열고 들어가 앉으면 큰 창에 별이 한 가득 떠 있던 화장실, 배고플 때마다 풀에 휘감겨진 텃밭에 용케 들어가 따내서는 감자 위에 삶아낸 그 빛난 옥수수, 널따란 고구마 밭과 길고 길던 고구마 순 작업, 가톨릭신자인 경미언니와 남편 군호언니 덕분에 오전마다 쉰 꿀 같은 주일 오전, 농사일을 거들며 나누던 수많은 수다….

 

 다시 만난 언니, 언니는 땅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짙어진 살갗도 그렇지만, 이제는 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사꾼에게 고구마박사라고도 불린다. 농사꾼에게 듣는 칭찬만큼 달콤한 말이 또 있을까. 농사를 짓는다는 건 한 곳에 뿌리를 내려 보겠다는 뜻이다.

그 간 언니는 다음 해, 그 다음 해들을 내다보며 농사꾼으로써 온전히 뿌리를 내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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