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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농촌청년여성 생활수기] 여행 중 만난 ‘변하지 않는 현실’

by 농민, 들 2018. 2. 14.

농민이 만드는 농촌농업농민 생활밀착형 B급 저널 농저널농담×농촌청년여성캠프의 콜라보. 농촌청년여성캠프 참가자들의 생활글쓰기 공동프로젝트. [농저널 농담]



<청년여성농민캠프 참가자> 면




토토로의 모티브, 다케오에 다녀오다.


도시가 싫어 귀촌한 나는 여행도 시골로 가는 것을 선호한다. 지난달에는 일본 사가현의 다케오를 다녀왔다. 다케오는 일본의 시골마을 중 하나로, 한국의 군 단위 지역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영하 10도보다 더 낮은 온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니 어찌나 따듯하던지. 일본에 놀러가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겨버렸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자연경관과 온천이었다. 특히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왔던 큰 나무의 모티브가 된 녹나무를 보러갔는데, 녹나무의 풍채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너무 너무 커서 아이폰 카메라 앵글에는 다 들어오지 못하는 웅장함’이라고 하면 전달이 될까. 카메라에 다 들어오지 않아 찍기도 어려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진 찍는 것 자체를 잊어버렸다. 녹나무의 아름다움에 쏙 빠져서 말이다. 난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꽤 오랫동안 녹나무 앞을 지켰다.


ⓒ면



시골에서 ‘외국인’이란


원기 충전할만한 좋은 것들로 가득한 여행이었지만, 인상 쓰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 사건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소소한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꽤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번 여행의 또 다른 테마, 온천을 위해 나는 대중목욕탕에 갔었다. 숙박업소 내에 있는 온천은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다케오 온천’에는 정말 사람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으레 그렇듯이 나체가 가지는 문화적인 코드는 아주 강력해서, 모두가 앞만 보고 목욕하게 만든다.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나체 상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불편하다. 나 역시 그랬다. 언어를 모르는 것도 큰 이유가 됐다. 감 놔라 배 놔라 참견하려 해도 말을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앞만 보고 씻고 있었는데, 중년으로 추정되는 어떤 일본인이 나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같이 여행 간 일행이 대강 통역해줬는데, 어느 나라 사람이냐 같은 꽤 사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아 재빨리 자리를 피해 일행과 따로따로 떨어져 씻고 이따가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일본 온천물 좋네’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나왔는데 일행의 표정이 영 안 좋았다.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내가 자리를 피한 뒤에도 아까 그 일본인과의 대화가 더 이어졌다고. 그 사람이 내가 자리를 피한 뒤에도 계속 반말로 일행에게 어디 나라 사람인지 물어봤고, 꽤 능숙하게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일행은 왜 물어보시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당황한 그 사람은 ‘아니 뭐, 요즘 대만이나 그런 곳에서 관광객이 많이 오길래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실례가 많았어요. 미안해요.’ 라고 존댓말로 대답했다고 한다.


그 일본인보다 우리가 더 나이가 어려보이니 반말을 한 게 아니라, 못 알아들을 것으로 보이니 반말을 한 게 더 기분이 상했다. 타지에서 외국인이 어떤 권력구조에 놓여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국이라고 뭐 그리 다른가. 멀리 갈 것 없이 내가 사는 동네만 해도, 결혼이주여성들을 비롯한 수많은 동남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국인들은 반말로 말을 건넨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기분이 상한 우리는 맛있는 것을 먹으며 기분 전환하자고 식당에 갔다. 하지만 그 날 밤은 우리 마음 한편에 외국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떼어지지 않는 씁쓸한 밤이었다.



ⓒ면




변하지 않는 현실


ⓒ뉴시스

http://news1.kr/articles/?2929615



한국에서 외국인의 입지가 이토록 위태위태한데도, 경남 합천군 등 지자체는 지난해 농촌 총각이 국제결혼하면 장가 지원금을 주겠다고 나섰었다. 시골을 활성화시킬 방법으로 타국의 여성을 사와, 억지 가정을 만들어 인구수를 늘리겠다는 가장 단편적인 정책을 펼친 것이다. 참 고민도 없고 별 생각 없이 정책을 만든다지만,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미 한국 농촌에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차고 넘치고, 이들을 위한 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시내로 나가 10분만 관찰해도 금방 알 수 있다. 나는 얼마 전에 동네 치과에 갔는데, 결혼이주를 했지만 자국민으로 인정이 안 되니 의료보험은 없는 셈이고, 결국 큰돈을 내고 치료 받는 외국인 여성을 봤었다.


언제까지 가부장제에 기댄 ‘쉬운’ 정책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할 것인가. 2015년도에 일부 지자체가 시행했던 임시방편 국제결혼 지원정책을 또 다른 지자체에서 지난해에 재탕했다. 지방선거가 있는 올해는 어떨까. 생각하니 마음만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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