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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농촌퀴어쏠의 그냥 리뷰/ 4월편] 되돌아갈 길은 없다, 당신과 나의 『페미니스트 모먼트』

by 농민, 들 2018. 4. 11.

되돌아갈 길은 없다, 당신과 나의 『페미니스트 모먼트』

더러움과 오염의 자리를 꿋꿋이 지켜온 나에게


"지배적인 시선에서 이러한 타자들의 정치는 순수한 것을 더럽히는 존재, 오염의 실천이라고 여겨진다. ‘더러움’과 ‘오염’이라는 표현은 타자들을 혐오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내뱉는 말이기도 하지만 요즘 나는 혐오에 대항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같이 가져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누가, 어떤 행위가, 무슨 관계들이 더러움과 오염의 자리에 할당되는지 따져 묻지 않는다면,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고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이 지배질서를 유지시킬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혹은 혐오하는 사람들이 권력이 많아서 그러하다는 근거로 단순히 권력의 문제로 치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 <페미니스트 모먼트> p.103


ⓒ그린비



얼마 전에 SNS를 타고 다니다 보았다. 국내에서 최초로 공립학교에서 퀴어에 대한 강의가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기독교의 조직적 항의 전화로 취소됐다는 소식을. 그 학교에서 지금 퀴어로 존재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좌절하고 상처받았을지, 절망적이었을지 가늠이 돼 마음이 아팠다. 죽을힘으로 탈출한 나의 10대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 그리고 향후 몇 십 년은 아니 몇 백 년은 이 상태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아서. 비참하고 참담하다.


‘더러움과 오염의 자리’에 할당됐던 나는 꼭 그만큼의 대우를 받았다. ‘더러운 년’, ‘징그러운 년’ 그러니까 다들 으레 말하는 그 ‘레즈년’으로 10대를 통과했다. 경멸의 눈빛과 아낌없는 손가락질로 무럭무럭 자라나 ‘모든 사람들이 호모포비아가 확실한 것 같다’는 극단적 결론 1과 ‘그렇다면 나는 응당 괴물 같은 존재’라는 극단적 결론 2로 자기 파괴적인 선택을 했고 10대 때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었다. 죽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상황 – 이라고 그 당시에 굳게 믿었고, (슬프게도) 지금도 그 시절에 대한 판단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어떤 보호제도도 없었던 그 때의 나에겐 그것만이 최선이었다.


다만 극단적 결론 2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지금은 할 여유가 생겼다. 호모포빅한 학교에서 벗어나자 ‘너가 잘못된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내가 다녔던 학교 사람들 같지 않구나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학교 안에서 그 누군가가 ‘너가 잘못된 게 아니야’라고 말해줬거나, 학교 친구들이 나에게 ‘레즈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정말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은 덜 상처 받고, 덜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빈약한 상상력에 헛웃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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