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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농촌퀴어쏠의 그냥 리뷰 / 6월편] 2008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사랑을 믿다’ / 권여선

by 농민, 들 2018. 6. 18.

ⓒ문화사상사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겼다는 건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지만 청춘에 대해서는 만종과 같다. 사랑을 믿던 한 시기가 끝났으며, 뒤를 돌아보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지금 서른다섯이라는 인생의 한낮을 지니고 있다.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서 이글거리지만 이미 저묾과 어둠을 예비하고 있다. 내 생애의 조도는 여기가 최대치다. 이보다 더 밝은 날은 내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중략)

헤어지기 전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괜찮지?”

괜찮네.”

물론 기차처럼 긴 술집에 대한 품평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듣는 동안 내가 겪고 있는 실연의 고통이 서서히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괜찮냐는 물음에 괜찮다는 대답을 되풀이하면서, 그녀가 자꾸 나의 안부를 묻고 나는 그것에 괜찮다고 대답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괜찮지? 괜찮아. 그러면서 나는 정말 괜찮아졌다. 이제 모든 것은 소소한 과거사가 되었다. 나는 기차간 모양의 술집 분위기를 내는 이 단골 술집에 혼자 앉아, 맞아 그때 그런 얘길 했었지라든가 왜 그랬을까 그녀는, 하고 생각한다. 그녀의 이름, 그녀가 했던 얘기들, 그녀의 피식 웃던 표정, 그녀의 단정한 인중선과 윗입술을 떠올린다. 그녀는 오지 않고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위로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랑이 보잘것없다면 위로도 보잘것없어야 마땅하다. 그 보잘것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받아들이면 됐다.


2008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사랑을 믿다’ / 권여선

p. 39~41 발췌

 


의미를 정확히 모른 채 쓰는 말이 많다. 모르기만 하면 다행일까 잘못 알고 쓰는 말은 더 많다. ‘사랑을 믿는다는 말이 이런 종류의 말이 아닐까 싶다. 사랑이 무언지, 믿음이 무언지 모르면서도, 우리는 사랑을 믿는다고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을 믿는다는 둥 믿었는데 배신당했다는 둥 시덥지 않은 말을 술까지 곁들여가며 해댔다. 술기운을 받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었을 그 낯부끄러운 말들을 잘도 꺼냈다.


이제 다시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겠어라며 세상 다 잃은 듯 술 마시다 지하철 화장실 변기에 기대 잠들던 20대를 통과하고 나서야 위 발췌문의 의미를 조금 이해했다. 사랑은 믿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며, 나를 배신하는 것도 아니다. 연애하는 동안 상대에 대한 나의 기대감(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나를 좀 더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이 존재했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사랑이 변한 건 아니었는데. 내 탓보다는 남 탓하는 게 편하니까, 사랑을 탓했다. 사랑이 변한 거라고.


여전히 나는 의미를 정확히 모른 채 쓰는 말이 많다. 하지만 잘못 알고 쓰지는 않으려 한다.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잘 모르지만,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은 고쳐 생각하려 한다.


발췌문의 사랑을 믿던 한 시기가 끝났으며, 뒤를 돌아보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문장에 강하게 동의하고, 그 문장의 힘을 나는 믿는다’.


-농촌퀴어 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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