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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여행] 프랑스 동쪽에서 1 (13)

by 촌년 2014. 11. 12.

<농저널 농담> 박은빈


Hennezel, Vosges, France

연두색 화살표를 따라 촌스러운 여행의 목적지를 표시합니다.



프랑스 동쪽에서 1


몸은 마음의 발현이라 숨길 수 없다. 볼이 간질간질. 그러려니 했는데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피부가 벌겋게 부어올라 오돌토돌 두드러기가 나있는 것이다. 배도 살살 아픈 게 작년에도 응급실을 왕래하게 했던 장염은 아닐는지 왠지 불길한 예감이다. 여름을 지나며 뙤약볕에서 일했던 피로가 번진 걸까. 아니, 거기엔 다른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종종 친구들이 여행하는 내게 대단하다고 말해준다. 그 이유는 첫째도 가족, 둘째도 가족, 셋째도 가족이다. 도대체 어떻게 가족들하고 24시간 빼곡하게, 며칠짜리 패키지여행도 아니고 일 년 가까이 여행을 다닐 수 있냐며 묻는다. 

오랜만에 엄마가 해주는 집 밥이 그리워 부모님 집을 찾아가면, 잠깐 잊었던 잔소리에 딱 이틀만 있다 짐 싸서 나오게 되는 심정,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올해, 사랑하지만 너무나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될 존재들을 코앞에 두고 살고 있다. 

아빠는 내가 열두 살 이후로 장시간 같은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건 1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나보다 7살 어린 동생은 내가 기숙사형 고등학교를 들어갈 때 10살짜리 꼬마아이였다. 여행을 시작하고 보니 이 녀석이 스무 살을 앞두고 있는 게 아닌가! 가족 중 유일하게 수화기 너머로 안부를 주고받아왔던 엄마도 그다지 편안하지 않다. 현재 그 여파로 알레르기와 장염을 앓고 있다. 보통 집 떠나 아프면 가족 생각이 나는데, 이번엔 가족 덕택에 집 떠나 고생이다. 그렇지 않아도 보고 싶던 친구들이 눈물 나게 아른거린다. 하지만 얄미운 여행은 멈추는 법 없이 계속되고, 반쯤 넋이 나간 몰골로 프랑스 동쪽에 있는 생태공동체 에코로니(ECOlonie)에 도착했다.


기차 안에서 ⓒ박은빈


사람들은 너른 마당에 나무 테이블마다 앉아 저녁을 먹고 있다. 짙은 노을이 발가스름하게 화단의 꽃과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넝쿨을 비춘다. 건물 두 개를 사이에 두고 작은 골목마다 사람들이 북적인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공동체 식구들일까? 따뜻한 여름날 저녁에 사람들의 몸짓은 자연스러웠고,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언어의 이야기들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그중 누구에게 우리의 거처를 물어봐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피사체들로 여겨졌고, 마치 서울역 앞에 갈 곳 없는 아이처럼 누군가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청년이 우리가 머물 방을 안내해주었다. 우리는 그제야 도착했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쉬며 짐을 풀기 시작했다. 각자 매일 밤 눕게 될 침대와 이불을 확인하고 주변자리에 익숙한 개인 소품들을 놓았다. 낯선 방이 길들여지는 시간이다. 

어두운 저녁이 되었는데도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들려온다. 정원 앞 들판에 모닥불이 일렁이고 그 주위에 여러 가족들이 삼삼오오 다정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꼬챙이에 머쉬멜로우를 끼어 모닥불에 구워먹느라 신이 났다. 방으로 돌아오니 벽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방에 작은 스텐드 불빛만 밝혀있다. 동생은 이어폰을 끼고 테블릿을 보며 낄낄 웃고 있고, 엄마는 의자에 앉아 성경책을 보고 있다. 아빠는 담배 피러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방금 본 들판에서의 광경과 문하나 열고 들어온 이 방의 공기는 아주 다른 두 세계처럼 느껴진다. 

얇은 문지방 하나 넘나드는 내 모습도 전혀 다른 두 사람처럼 달라진다. 밝은 웃음과 어수룩한 행동으로 사람들과 장난을 치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면 단조로운 표정에 별 말 없이 방 안에만 틀어박힌다. 

우리 가족은 다정하기보다는 이성적이고,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기보다는 혼자 사유하는 게 더 익숙한 사람들이다. 내가 치는 피아노 소리와 밥솥 뚜껑이 칙칙칙 돌며 김을 뿜는 소리 말고는 밖의 새소리가 시끄러우리만큼 집은 조용하다. 고요한 정적은 고개를 돌려 알 수 없는 허기짐과 원망으로 내 안에 쌓여왔다. 지나온 세월과 함께 촘촘히 뿌리내린 어두운 장막은 여행 내내 나를 괴롭게 한다. 허심탄회하게 가족과 대화할 용기도, 속사정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어 밤이면 졸음보다 외로움이 늘 먼저 찾아온다.


피곤이 역력한 우리들 ⓒ박은빈


일이 끝난 저녁, 방에 모인 우리들은 각자 침대에 널브러졌다. “여기 누가 오자고 한 거야! 완전 힘들어. 역대 제일 빡센 곳이야.”동생이 울부짖었다. 

하루 8시간, 일주일에 최소 40시간을 일해야 하는 이곳에서 아빠는 농장팀 사람들과 밭에 잡초를 뽑고, 호박, 콩, 비트를 수확해 부엌에 가져다주었다. 동생은 갓 건네받은 채소들을 손질하고, 요리사의 지시에 따라 200인분이 넘는 식사를 준비했다. 엄마는 게스트하우스 객실관리팀에서 손님들이 쓰고 나간 방을 청소하고, 침대마다 새 시트를 입혔다. 나는 캠핑장 주변의 샤워실과 화장실을 청소하고, 치즈공장에서 잔일을 도왔다. 에코로니는 예상했던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넓었고, 다양한 프로젝트들로 구조화되어있다. 나로 하여금 서울역을 연상시키게 만들었던 인파들은 청정 자연 속에서 캠핑을 위해 모여든 손님들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에코로니의 한 해 흐름 중 최성수기 한복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뒤뜰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 ⓒ박은빈


이곳은 허브정원, 채소밭, 과수원, 양계장, 염소목장에서 먹을거리를 기른다. 싱싱한 먹거리들은 레스토랑과 베이커리, 치즈공장, 가게, 카페에서 자급하고 가공하여 지역시장이나 손님들에게 판매한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와 여름 캠핑장이 이곳에 주요 사업이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열리는 생태·예술·치유 워크숍에 참여한다. 이외에도 도예공방, 유리·석공예를 배울 수 있는 아틀리에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 공간을 굴러가도록 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가족을 포함한 20명의 볼런티어, 9명의 공동체 회원들이다.(2014년 08월 기준)

“아이고. 허리야. 일이 힘들긴 힘드네. 그동안 단 한 번도 내 김매는 속도를 따라잡은 사람이 없었거든? 근데 같이 일하는 볼런티어들이 나보다 빨라. 일을 정말 열심히 해. 쉬는 시간 종이 쳤는데도 계속 해. 것 때문에 나도 일을 못 끝내고 기다렸잖아.”아빠가 혀를 내둘렀다. “맞아. 나랑 오늘 부엌에서 같이 일한 젊은 애들도 다 씩씩하더라. 일도 진짜 열심히 하고.”엄마도 거든다. “아니, 그 사람들은 왜 여기서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거래? 나 같으면 여기서 못 살아.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여기서 살지?”퉁명스런 동생의 말 언저리에 호기심이 묻어있다.

에코로니는 25년이란 시간동안 가꿔온 공간들을 둘러보는 것만도 즐겁지만, 초기부터 수많은 볼런티어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욱 흥미롭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볼런티어들은 일손이 필요한 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경험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적성에 따라 요리사, 가드너, 카펜터, 카페 매니져 등등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20~30대 젊은이들이다. 지난 반 년 간 돌아다녔던 농장과 공동체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또래 친구들이다. 덕분인지 이곳엔 특유의 쾌활함과 뜨거움이 곳곳에 배어있다. 내가 늘 그리워하던 냄새. 지나다니는 친구들의 즐거운 발걸음이 지쳐있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보통 도시에서 자취를 하며, 대학을 다니고 있을 시기에 혹은 직장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시간에 왜 이 친구들은 여기서 지내고 있을까? 어떤 삶을 살다 지금 이곳으로 오게 되었을까? 아직 말도 못 건네 본 그들을 상상 속에 그려보며, 내일은 누구랑 같이 일을 하게 될지, 무슨 질문을 가장 먼저 할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혼자 키득거렸다.

하지만 일을 하는 시간에는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만큼 바쁘다. 주고받는 대화라고는 고작 “오늘 오전에는 여기서 일하기로 되어있는데, 무슨 일을 할까요?”“손님들이 그릇을 가져오면 여기서 설거지하면 되요.”“이건 어디다 둬요?”“저기 찬장 위에요.”단답형 문장들의 연속. 게다가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은 찾아오는 손님들을 포함하여 대부분 네덜란드 사람들이다. 쉬는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네덜란드어로 이야기를 하니 도무지 대화에 섞일 틈이 없다. 이미 여럿이 짝지어 있는 동그란 원 안에 사뿐히 끼어들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가끔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와도 먼 아시아 땅에서 온 가족이 신기하다는 듯, 의례적인 질문 두세 가지로 대화는 금방 끝이 나곤 했다. 때마다 나는 큰딸이라는 책임감으로 우리가족의 대변인이 되었다. 동시에 가족이라는 커다란 올가미에 묶여있는 느낌이 나를 짓눌렀다. 가족 속의 내 모습처럼 사람들 사이에 내 눈동자도 다시 점점 흐릿해져갔다. 


가운데 피라미드를 두고 둥그런 모양으로 꽃과 채소들이 심겨져 있다. ⓒ박은빈


아침이슬에 축축하게 젖은 바짓단이 햇볕에 빳빳이 마를 때까지 허브정원에서 잡초를 뽑는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홀로 일하나 수많은 소리와 향기, 작은 곤충들과 여린 풀잎의 움직임을 본다. 그곳엔 단답형 문장들도, 친구를 사귀고 싶은 들뜬 마음도,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움츠러든 마음도 없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흙 뭍은 잡초 뿌리와 잎사귀들이 한데 엉켜있던 수레를 나긋한 보폭으로 퇴비장에 옮겨다 놓았다. 정원 돌담을 지나 마당으로 나오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물을 마시러 걸어가는 그때, 첫째 날 방을 소개해줬던 친구가 갑자기 나를 붙잡았다. 그리곤 오른쪽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나 물어볼 게 있어. 이렇게 말하는 거 맞아?”라고 물으며 내게 작은 쪽지 하나를 건넨다. 꼬깃한 쪽지에는 파란색 작은 글씨로 두 문장이 적혀있다. ‘an nyoung ha se yo. man na seo ban ga war.' 

드디어 내게 친구가 생겼다.


에코로니를 들어서며 ⓒ박은빈


(에코로니에서의 일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드디어 친구가 생긴 박은빈에게 어떤 일이?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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