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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여행] 니 똥보다 내 똥이 더 굵다! (10)

by 촌년 2014. 7. 14.

<농저널 농담> 박은빈



Newport, Pembrokeshire, Wales

10편부터 연두색 화살표를 따라 촌스러운 여행의 목적지를 표시합니다.



니 똥보다 내 똥이 더 굵다!

 

그날따라 저녁밥을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고대하던 냄비 뚜껑이 열리니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콩 볶음이었다. 엄마는 들었던 포크를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고 짐짓 태연한 척 물 한 컵을 비웠다. 앞에 앉아있는 호스트를 한 번 쳐다보고 부엌문을 한 번 쳐다보다가 힘없이 한 숟갈을 뜨고 식사를 마쳤다. “이건 정말 너무했다.” 엄마 말에 동생이 한 마디 거든다. “난 일찍부터 여기서 먹는 건 기대도 안했어.”

아침엔 시리얼 한 그릇, 점심엔 빵 두 조각에 사과 하나 먹고 해가 떠있는 온종일을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심심한 입을 달랠 간식은 있을 수 없다. 부엌에서 컵 하나 꺼내는 것도 조심스러운 곳이다. 그런데 저녁까지 그 전날 먹은 걸 똑같이 먹어야 하다니. 엄마는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늦은 밤 나지막이 배낭 깊숙한 곳에서 라면 한 봉지를 꺼내고야 말았다. 한편 같은 지붕 아래 한 핏줄인 나는 그야말로 단순한 삶이로다!’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지나치게 먹고 또 먹던 내게 끝없는 허기짐과 허전함이 드러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우프(WWOOF)를 통한 여행은 타인과 같은 생활양식으로 살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모든 것에 양면이 있듯이 이 시간마저도 누군가에겐 즐거움이 되고, 누군가에겐 고행(苦行)이 된다. 또한 서로가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같은 길에 있는 우리들은 저마다 다른 보폭으로 걸어가고 있다(맨 앞에 아빠그 뒤에 동생ⓒ박은빈


일곱 번째 호스트를 만나게 된 날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우리들은 축축하게 내리는 비 사이로 숙소까지 걸어가야 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이어서 대문이 열리고 배낭은 털썩 바닥에 내려졌다. 식탁은 다리 하나를 절고, 바닥은 걸음마다 먼지가 날렸다. 자야할 다락방에는 손가락보다 긴 다리를 가진 거미들이 입구를 막고 있고, 거미줄 건너 방 안쪽에는 매트리스와 베개 하나가 무덤처럼 누워있었다. 엄마는 비 맞은 겉옷을 벗지 못하고 거실 한 가운데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보다 못한 아빠가 한숨을 깊게 내뱉더니 청소를 시작했다. 주변이 어둑해져서야 가까스로 사람 사는 집다워졌으나 엄마는 여직 거실을 서성이며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오후, 엄마가 어렵사리 한 마디 꺼냈다. “우리..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어때?” 단번에 싫다고 대답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이만큼 청소했으면 됐잖아.” 누구보다도 가족에게 쌀쌀맞은 나였다.

여기선 생태변기를 사용해야 했다. 농고 다니던 시절 친구들하고 직접 만들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보자마자 반가웠다. 거기에 더 얹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인분을 퇴비화 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소위 생태적 삶을 동경하는 아빠와 나만의 공통된 반응이었을 뿐, 엄마와 동생은 저 멀리 뒤에서 쓸쓸히 서있었다. 일반 수세식 변기도 설치되어 있었지만 소변만 허용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였다. “생태변기 잘 쓰고 있어?” 나는 엄마와 동생에게 안부를 물었다. “아니. 안 쓰고 있어.” 둘 다 이하동문. 보다 정확하게는 너무 더럽고, 깊고 거뭇한 아래에서 벌레가 튀어나올까봐 못쓰겠다는 말이었다. “써야지! 수세식 변기는 사용하지 말라고 여기서 이야기했잖아!” 강건한 내 입장에 둘은 할 말을 잃었다. “생태변기 사용해보려고 시도는 해봤어? 안 해봤지?” “수세식변기 막히면 어쩔 거야?” 나는 아랑곳 않고 무섭게 추궁하기 시작했다.

나는 동생 말따나 호스트 찬양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가족은 나와 같아야한다는 유치한 질투심인가? 그건 다름의 지점이 명확히 드러났을 때 나타난 내 본모습이었다. 거기엔 순식간에 타오른 분노와 우월감 같은 것도 섞여있었다. 그에 반해 아빠는 다정한 방식으로 다가갔다. “우리 어렸을 때 변기는 다 이렇게 생겼었는데, 기억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엄마는 그 옛날 마당에 있던 뒷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느새 개구쟁이 소년이 된 아빠는 그때는 화장지도 없었어요~ 뒷간에 가면 노끈 같은 게 있는데 거기에다 문질렀어. 노오란게 반질반질해가지고는~” 하회탈처럼 으하하하 웃어버렸다. 다들 으이~ 그게 뭐야~” 하면서도 따라 웃었다. 무거운 건 가볍게 전해야하는 법이다.

다름은 손쉽게 틀림으로 변해 우리를 잠식한다. 세상 누구보다 가까이 있는 가족들마저 틀린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여행은 너야말로 틀렸다고 말해준다. 쉽지 않은 여행임에 분명하나 허물어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프를 선택한 이유 


오늘도 우퍼(WWOOFer)에게서 메일이 왔다. 엔니와 데이빗은 일주일에 적어도 1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서 우핑(WWOOFing)문의를 받는다. 대부분 유럽권에서 유학중인 대학생들이다. 나는 유럽에 젊은 친구들이 농사에 관심이 많구나!’ 하고 놀랐지만 엔니의 표정은 달랐다. “그 친구들은 농사나 농촌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라. 그냥 영어에 관심이 있는 거야.” 그들 대학에서는 영어학습을 일정기간 필수로 이수해야하여 많은 학생들이 영어권 나라의 우프를 선택한다고 한다. 왜 하필 우프냐고? “돈 필요 없이 영국인 집에서 살 수 있으니까.” 데이빗에게서 오래 전부터 우퍼를 받으며 쌓인 피로가 엿보인다. 정원에 자그맣게 피어난 장미 한 송이도 지난 해 우퍼가 가시덩굴인줄 알고 죄다 잘랐다가 겨우 살아남았다. 잠깐 일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더 손이 가야해서 몇 배로 힘이 든단다. 그들에게 밭일을 맡긴다는 건 마치 길고 긴 글이 완성되어갈 때쯤 오류로 새하얗게 날아가길 바라는 것과 같다. 조마조마한 생활 끝에 호스트는 안식을 찾고, 우퍼는 농촌에서의 첫 경험을 추억한다. 이만하면 해피엔딩이다.

그밖에 다양한 경우의 수도 존재한다. 지난봄, 한 우퍼가 자신이 알콜중독자임을 밝히며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경험을 바랐다. 엔니는 조금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좋은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초대했다. 그는 처음으로 땅에 씨앗을 심고, 잘게 부서지는 흙 사이로 지렁이가 삐져나오는 걸 보았다. 고요한 시골 밤과 별빛을 즐겼다. 그와 보낸 시간들은 엔니와 데이빗에게도 여전히 고마움으로 남아있다


엄마와 엔니 그리고 강아지들, 떠나던 날 저 둘은 눈물을 글썽였다ⓒ박은빈


우프는 다양한 형태로 서로 다른 결의 삶을 보여주고 이어준다. 어느 평범한 한국인 가족이 별다를 바 없는 영국인 가족과 한 집에서 살게 될 줄이야. “지금 내가 집에 있는 건지 여행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엔니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한 손에 상추를 얹고 그 안에 밥 한술 올린 다음 쌈장을 찍어 먹는다. 발사믹 소스가 뿌려진 샐러드는 보이지 않고, 쌈 싸먹을 상추만 식탁에 올려졌다. 데이빗은 조만간 인터넷에서 고추장을 주문할 예정이다. 호스트는 지겨우리만큼 익숙한 집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똑같은 걸 다르게 보고 말하는 사람들과 생활하면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일이 없는 주말에 자칫하면 무료할 수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엔니와 데이빗이 직접 투어가이드로 나섰다. 엔니는 이 동네에서 태어나 지금껏 반평생을 살아온 토박이다. 지나가는 길목마다 이야기가 서려있어 듣는 이도 흘러간 시간이 손으로 만져진다. 우리들은 집 밖으로 나와 얼마 안가서 원시림으로 유명한 지역명소에 다다랐다. 오래된 참나무들이 하늘을 에워싸고 있었다. 부식된 낙엽과 나뭇가지마다 두르고 있는 이끼향내가 더 깊게 숨 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숲의 꼭대기에 서서 푸른 바다와 언덕이 어우러진 풍경을 한 눈에 담고는 혼자 중얼거렸다. ‘. 여기서 살면 참 좋겠다.’ 아빠는 데이빗과 해초를 뜯으러 바다로 향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소재지로 나왔다. 길 하나 가운데 두고 양 옆에 슈퍼와 약국, 카페, 정육점이 장난감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골목하나 꺾어서 갤러리에 들어섰다. 12평 남짓한 공간에 이 동네 꾼이란 꾼들은 다 모아 놓았더라. 한쪽 벽에는 그림 속 파도가 철썩이고 있고, 선반에는 동네 양의 것으로 추정되는 색색깔 양털 브로치들이 보였다. 지역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둘러보며 혹시 이 사람 옆집에 사는 이웃 아닌가? 추측하는 게 제법 동네사람 다됐다. 그밖에도 동네 요가모임이며 비폭력대화모임이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어딜 가나 이야기가 쏟아졌다.

몇 달 전의 옥스퍼드 관광은 잊은 지 오래다. 하지만 해질 무렵 친구와 집으로 걸어가던 시골길은 내내 지워 지지 않는다. 그 흔한 지도 속 작은 점들이 한 사람의 얼굴로, 그 사람의 삶터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우프를 할 수 있다! 명절 귀향길도 도시에서 도시로 떠나는 요즘,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촌동네로 여행가면 어떨까? 60명의 호스트들(2014년 봄 기준)이 전국 각지에서 우퍼들을 기다리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우프코리아홈페이지를 참조하자. http://wwoof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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