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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여행] 프랑스 동쪽에서 2 (14)

by 촌년 2014. 12. 27.

<농저널 농담> 박은빈

 

 멀찍이 떨어져 걷던 우리, 그리고 나란히 걸어가는 우리. ⓒ박은빈

 

 

프랑스 동쪽에서 2

 

대박! 진짜 맛있어!!”

이 말은 지극히 한국 젊은이가 쓰는 단어조합이다. 감자튀김을 집어먹은 다니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눌한 한국말로 소리친다. 우리는 주로 마주보거나 같은 곳을 바라보며 밥을 먹는다. “너는 서양인하고 동양인이 어떻게 다른 것 같아?” 두 손으로 샌드위치를 들고 막 입으로 가져가려고 할 때 불현 듯 생각이 났는지 다니엘이 물었다. 몇 달 전만해도 방금 그 질문에 대해 혼자서 실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난다. “. 처음에 나는 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었어. 근데 이제는 비슷한 것들만 보여.”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녀석의 얼굴을 보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생긴 것도 다르지, 쓰는 말도 다르지, 나랑 완전 다른 사람들인 줄 알았어. 그런데 똑같이 속상해서 다투고, 매끼 둘러앉아 다 같이 밥 먹고, 하기 싫은 일 귀찮아서 미루기도 하고, 연애도 하고, 각자 가지고 있는 아픔들 때문에 울기도 하고.” 그동안 스쳐지나갔던 사람들과 보냈던 그때 그 시간들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간다. “. 맞아. 정말 똑같아.” 혼자 끄덕이면서 내 말에 마침표가 붙이자마자 다니엘이 질문한다. “그래도, 그래도 다른 게 있다면?” 딱히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 방울토마토를 찍어 먹었다. “! 하나 생각났다. 스킨십! 너네는 친구든 가족들이든 틈만 나면 서로 안고 인사하잖아. 생활에서도 자연스레 애정담긴 스킨십을 주고받고. 우리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야. 특히 가족들하고 껴안는 건. 어우.” “진짜? 아니 가족인데 왜 못해? 그럼 친구들하고도 포옹 안 해?” “친한 친구들하고는 해.” “친한 친구들하고는 하는데 왜 가족들하고는 못해?” “몰라. 묻지 마. 상상하기도 싫어. 이상해. 으으.” 상상만으로도 몸서리를 친다. 엄마, 아빠, 동생을 힘껏 껴안아줬던 적이 언제였더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다. "넌 여기에 왜 온 거야?" 다니엘은 발목까지 눈에 잠기던 지난겨울 에코로니(ECOlonie)에 왔던 기억을 떠올리는 듯 했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1년을 바라본다. "? 글쎄." 이미 깊숙이 몸에 익은 공간과 하루생활에 대해 느닷없이 물어오면 쉽사리 대답하기가 어렵다. 나는 다시 질문을 바꾸어 물었다. "여기서 산다니까 네덜란드 친구들이 뭐래?" 테이프를 길게 늘일 때 가끔 그 끝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손톱으로 원을 한 바퀴 긁으며 가까이 쳐다보다 탁하고 멈춰지는 곳을 느낀다. 이제 풀어내는 일만 남겨둔 표정으로 다니엘이 대답했다. “나나 친구들이나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그 모든 게 얼마나 익숙하고 편하겠어. 걔네들은 이 편리함을 두고 왜 굳이 시골에 가려는지 이해를 못하더라. 나보고 이상하대.” 몇 년 전 시골 내려간다니까 도대체 왜?’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친구들이 내게도 있었다. “그래서 넌 뭐라고 했어?” “난 그렇기 때문에 떠나고 싶다고 했어. 이전과는 다른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 둘 다 비슷한 시기에 가지고 있던 것들 모두 내려놓고 낯선 곳으로 떠나왔다. 계절이 뒤바뀐 오늘, 새삼 걸어온 길을 뒤돌아본다. 나도 그도 말없이 같은 곳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박은빈

 

"아! 나 또 다른 점 생각났다!” 초점을 잃었던 내 눈동자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 그도 금세 호기심으로 둔갑하여 나를 뚫어질 듯 쳐다본다. “너넨 나이 상관없이 친구하잖아. 관계를 맺을 때에도 나이가 다르다는 이유로 격식을 차리지도 않고. 그런데 우린 나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 그중에서도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장 특별하게 여겨. 나이가 같은 사람을 친구라고 불러.”

1989년 내가 태어나기 두 달 전 그가 태어났다. 너를 만나 반갑다는 말을 나는 그렇게 대신하였다.

우린 걷고 또 걸었다. 눈을 감은 듯 어두운 숲을 발자국소리 따라 지나왔다. 이윽고 나타난 시골길은 굽이굽이마다 별빛이 닿아 밝았다. 내가 살아온 곳부터 그가 살아온 네덜란드까지 걸어가면 얼마나 걸릴까? 우린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말을 쓰며 살다 별이 빛나는 오늘,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넌 꿈이 뭐야?” “? 없어. 그런 거.” 내가 예상했던 대답과는 정반대였다. 틀에 박힌 도시생활을 떠나 생태공동체에서 새롭게 자신의 삶을 모색하는 녀석이라면 제법 그럴듯한 대답을 해줄 줄 알았다. 꿈이 없다는 소리는 잿빛 하늘 아래 넥타이 매고 회사로 출근하는 중년의 주름진 얼굴과 더 잘 어울린다고 여겼는데. “정말 하고 싶은 게 없어?” 다시 한 번 확인해야만 할 것 같았다. “. 없어.” 다니엘은 일말의 고민 없이 꿈 없는 사람이길 자청하였다. 손수 적은 꿈 100가지를 노트북 바탕화면 맨 앞에 저장해둔 나란 사람은 그 이유를 알아야만 했다.

옛날엔 늘 꿈을 쫓아다녔었어. 딱히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하면 인생을 포기한 사람 보듯이 나를 보더라고. 그래서 애써 뭔가 꿈이라는 걸 만들어보기도 했었는데, 꿈을 정해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은 거 있지. 이게 정말 맞는 걸까? 하는 불안한 마음은 금세 다른 꿈들과 내 꿈을 비교하더라. 비교 당할까봐 두렵기도 하고. 그럼 꿈이 무슨 소용이야. 나한테 이제 꿈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아.”

그럼 뭐가 중요한데?” 이번에도 그의 대답은 재빨랐다. “지금.”

지금을 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좋지만 왠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도 네가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여기에 온 거 아니야? 그것도 꿈이잖아.” “조금 달라. 내가 이 이야기 너한테 했었나? 나 대학 가게 된 이야기?” 그는 오래전 대학에서 춤을 전공하다 자퇴했다. 춤을 추며 경쟁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오면 그는 그 자리에서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옆에 있는 내게 같이 흔들자고 눈짓을 하면 나는 부끄럽다고 손사래를 친다. 타인의 시선은 상관없이 몸을 흔드는 그를 행복하게 쳐다볼 뿐이다. “대학 가기 전에 춤을 배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 그리고 대학 갈 생각도 없었어. 친구들은 다들 대학에 가는데도 나는 딱히 배우고 싶은 게 없었거든. 그때쯤 프랑스로 아르바이트 겸 여행을 떠났었어. 서핑을 가르쳐주는 일을 했었는데, 그 동네에 매주 토요일마다 댄스경연대회가 열리는 펍이 있었어. 자주 가서 춤췄던 곳이었는데 친구가 나 몰래 경연대회 목록에 내 이름을 올려버린 거야. 난 혼자 추는 걸 좋아하지 경쟁하고 그런 건 안 좋아하거든. 근데 뭐 어떡해. 이미 올렸으니까 취소하기도 그렇고 그냥하기로 했어.”

내가 적은 100가지 꿈 중에 한 가지가 댄스경연대회에서 섹시댄스를 추는 것이다. 아직 그 꿈을 차마 이루지 못한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가 말한 펍으로 순간 이동하여 병맥주 하나를 시켜들었다. “~ 막상 시작하니까 다들 엄청 잘 추더라고. 나도 지고 싶지는 않으니까 엄청 열심히 췄어.” “그래서? 그래서 대회에서 우승했어?” 마치 내 꿈이 이뤄진 양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니. 얼마 안 가서 떨어졌어.” 미간에는 삼지창이 그려졌고 아무렇지 않은 그보다 내가 더 낙심하였다. “아직 이야기 안 끝났어. 들어봐. 떨어지고 나서는 대회 구경을 하고 있는데, 어떤 애가 나한테 오더니 나보고 춤 정말 잘 춘다고 막 칭찬을 하는 거야. 그냥 나는 인사치레라고 생각하고 고맙다고 했는데, 걔가 엄청 진지하게 내 춤 보고 감명 받았다고 계속 말하는 거야. 그래서 정말 내 춤이 그 정도냐고 정말 고맙다고 했지. 알고 보니까 걔는 대학에서 춤을 전공하는 애더라고. 걔가 춤 배울 생각 없냐고, 넌 정말 춤 쪽으로 가야 된다고 나에게 진심으로 말하더라. 자기가 대학에 오디션 가능한지 물어볼 테니까 한 번 보라고 제안해서 나도 춤추는 게 좋으니 해보겠다고 했어.” 설마 그러다 대학에 간 건 아니겠지? 다니엘은 그리하여 오디션에 합격하였고 춤을 배우게 되었다. 마침 일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난 너무나 순식간에 전개된 이야기가 벅차 일하러 가겠다고 하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와인 두 잔, 바람에 곁들인 기타연주, 타오르는 불과 침묵 ⓒ박은빈

 

정원으로 나와 카모마일 사이에 난 잡초들을 뽑으며 다니엘이 했던 말을 되감기하고 다시재생 하였다. 누구나 예상치 못했던 자신의 재능에 놀란 적은 있지만 대부분 그 재능은 다시 일상에 덮여 장롱 속 아래서랍으로 들어간다. 이 친구의 흘러넘치는 즉흥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방학이 가까워지면 방학보다 동그라미에 하루계획표를 그려 넣는 걸 손꼽아 기다렸다. 시험공부를 할 때에도 과목, 단원마다 며칠에 공부할지 달력에 하나씩 적어 넣으며 쾌감을 느끼던 아이다. 당연히 이번 여행도 치밀하게 계획되어있다.

약간의 차이점은 호기심이 그 자리를 메꿔줄 수 있지만 이 격차는 수레 한 가득 잡초가 쌓일 때까지도 내게 불편함을 가져다주었다. 두 번째 수레를 채울 즈음 이 불편함은 그가 아닌 내게 향해있음을 알아차렸다. 며칠 전 그가 내게 했던 말들이 뒤섞여 떠오른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어. 너랑 내가 오늘 이렇게 이 길을 걸을 줄 누가 알았겠어. 아무도 몰라. 난 이래서 인생을 사랑해." 감탄사와 함께 터져 나온 그 말에 사랑이 묻어났다. ", 너 그 느낌 알아? 삶이 슬며시 내 뒤로 와서 나를 꼭 붙잡고 밀어주는 느낌. 난 그저 가만히 삶이 안내해주는 것들을 받아 안기만 하면 돼. 두려울 게 하나도 없다!"

짜여 진 계획표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습관처럼 하던 말이 있다. ‘어차피 곧 떠날 거야.’ 지금에 도착하자마자 가야할 곳으로 서둘러 떠나던 내 모습이 보인다. 거기엔 가는 곳마다 마중 나왔던 그리움도 있었다. 충남 작은 골짜기에 자리하던 엣 농장에서 차마 발을 떼지 못하던 내 모습도.

문득 주변을 둘러본다. 울타리 뒤 키 큰 나무가 바람과 함께 천만잎사귀를 흔들고 있다. 동네 교회에서 종소리가 네 번 울려온다. 해는 구름 뒤편에서 붉은 노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게. 난 지금 여기 있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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