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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친구에게] 왕십리와 용산을 오고 가며, 영지가

by 농민, 들 2017. 7. 17.

혼자 상상만 해온 일을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 열린 청년여성농민 캠프 우리끼리 좋아서 하룻밤’. 2017년 아직 농사가 시작되기 전이던 3월 어느 날, 청년여성농민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열 명의 농민, 농업활동가, 농촌생활자가 모였습니다. 

첫 번째 캠프 이야기 > http://j-nongdam.tistory.com/96

 

지난 3월 청년여성농민 캠프에서 1 2일을 함께 보낸 청년여성농민 열 명은 헤어지기 전, 릴레이 편지를 쓸 것을 약속했습니다. 삶을 공유하는 일을 지속하자는 약속이었습니다.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간 청년여성농민들은 논밭에서, 집에서, 사무실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받고, 또 누군가에게 편지를 씁니다. [농저널 농담]


<청년여성농민 캠프 참가자> 영지


봄이 막 오는 계절에 홍동에 갔던 게 엊그제 같네요. 첨 만난 사람들과 수줍기도 하지만 봄볕만큼이나 따스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돌아와서 이어지는 릴레이 소식을 재미있게 보면서도, 도시에 사는 저도 글을 실을 거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막상 이렇게 글을 쓰려니 막막하고 또 부끄럽네요. 일단은 을 테마로 하는 공간이니, 저도 남루한(?) 저의 텃밭 일기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저는 현장 농사에 관해서는 정말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치만 농업/농민 연구소에서 일을 하면서 땅에 대한 최소한의 감각은 필요할 것 같아 올해부터 친구들과 주말 농장을 시작했어요.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토종 씨앗으로다가 멕시코 원주민들이 먹거리 자급을 위해 옥수수, , 호박을 함께 심는 세 자매 농법을 실천하려고 했으나.. 텃밭이 집에서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다가, 다들 직장인들이라 자주 가진 못할 것 같아서 쉬운 작물들, 그리고 우리가 잘 먹는데 괜히 사먹으려면 비싼 작물을 선택했어요. 봄에만 해도 아쉬웠는데 여름이 오니까 욕심 안 부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 해서, 루꼴라, 바질, 고수, 민트, 케일,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 옥수수, 제비콩, 그리고 목화를 심었더래요.

 

텃밭에서 알아서 자라고 있는 가지, 옥수수와 제비콩



사실 한동안 날이 너무 가물어서 비실비실하더라고요. 직파에 실패를 하고 모종을 다시 사서 심었는데도요. 중간에 고추랑 고수가 말라 죽질 않나. 유독 이웃집이랑 비교해보면 우리 텃밭만 듬성듬성한 느낌이었는데 (,)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니까 다행히 아이들이 알아서 잘 자라더라구요. 지날 주말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서 일주일 만에 텃밭에 가보니, 방울 토마토도 주렁주렁, 가지는 큼직큼직, 케일은 내 얼굴보다 크게 자라있었어요. 가지고 갔던 장바구니에 똑똑 따서 담으니 일주일은 혼자서 충분히 먹을 만큼 신선한 야채들이 채워졌어요 <3 여기다가 보란이가 보내 준 아스파라거스만 있으면 건강한 식사가 뚝딱.


 

감사한 텃밭 친구들


소소한 취미활동이지만, 저한테는 일요일에 텃밭에 가는 시간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에요. 일요일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요가원에 갔다가 버스를 타고 밭으로 가요. 맘 맞는 친구랑 같이 밭에 물도 주고, 대도 세우고. 잡초도 뽑고 그러다 보면 주중에 무거워졌던 가슴이 한결 가벼워지더라구요. 밭에서 내려오면서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하면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구요. 술이 좀 깨면 친구랑 까페에 앉아서 요즘 읽고 있는 책 이야기도 하고 멍도 때리다가 해질녘엔 집에 돌아와서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을 준비를 합니다.


, 이제 조금은 지루한 연구소 일상으로저희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가톨릭 농민회가 힘을 합쳐서 만든 독립적인 민간 연구소에요. 아무래도 국책 연구소가 농민들의 답답한 속을 충분히 긁어주지 못하니까, 보다 적극적으로 농민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에요. 개인적으로 저는 여성농민들의 식량주권운동을 중심으로 한 생태/여성농민 운동과 초국적인 대안 먹거리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소에 들어갔어요.




우리 연구소 로고!




연구소에서 첫 번째로 맡게 된 프로젝트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과 진행하는 여성농민 농생태학 학교에요. 농생태 운동의 개념은 사실 명확하지는 않은데요. 생태학의 원리를 농업에 적용하는 것과 관련한 학문(science)이기도 하고, 이런 것들을 생산 현장에서 직접 적용하는 농법(practice)이기도 하며, 신자유주의적인 농업 체계에 대안이 되는 운동(movement)이기도 합니다. 이미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UN FAO)에서는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각종 식량, 환경, 불평등 문제에 대한 돌파구로서 농생태 운동(Agroecology)에 주목하고, 지역별로 상황에 맞게 농생태 운동이 확산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있어요. 특히 초국적인 중소규모 농민들의 연합체인 비아캄페시나(La Via Campesina)는 농산업계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경제, 환경 파괴적인 수출지향 단작 농업에 대한 대항마로서 먹거리주권(Food Sovereignty)을 표방하며, 구체적인 대안으로서 농민이 중심이 되는 농생태 운동을 내세우고 있답니다. 6월달에는 3일간 스리랑카에 모여서 아시아 대륙 차원에서 비아캄페시나 조직들이 각 국가에서 하고 있는 농생태 운동의 활동을 서로 나누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저도 통역으로서 전여농, 전농 참가자들의 활동을 지원하고자 따라갔는데 매우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농생태 운동 및 기후정의 모임



전여농은 비아캄페시나 회원 조직으로 활동을 하면서 먹거리주권과 농생태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목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시작으로 한국에서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어요.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은 전여농이 시민 사회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고 지지를 받았던 사례이기도 합니다. 특히 토종먹거리를 보다 생태적인 원칙에 입각해 생산하는 여성농민들을 소비자들과 직접 연결해주는 언니네텃밭은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전여농의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이 10년을 맞이해서 그간의 활동들을 기록한 책자가 6월 말에 출판되었답니다. 사실 제가 전여농과 직접적으로 같이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이 책자와 관련한 자료 정리를 맡으면서예요. 책이 딱딱하지 않도록 활동에 대한 정리 외에도. 지역 별로 지키고 있는 토종종자들 목록, 지역과 전국 단위로 토종종자를 지키기 위해 힘쓰신 여성농민들과의 인터뷰를 담았어요. 책이 편집의 세례를 받고 나니까 한층 더 멋진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답니다.


토종씨앗 지키기에 이어서 최근 몇 년간은 농생태 운동의 실천 방향을 놓고 전여농이 많은 고민을 해 왔어요. 부여에 농생태 운동 실습소를 설치하여 이런저런 생태농사와 자급을 모색하는 것으로 첫 스타트를 끊었고요, 올해는 제주도 지역에도 실습소가 확장되었어요.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과 달리 농생태 운동은 사실 개념이 광범위하고,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실제 활동과 사업으로 녹여내기가 쉽지는 않아요. 그래서 일단 관련한 개념들을 확인해보고, 우리 안에서 농생태 운동을 다시 정의하고, 확산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자 농생태 학교를 열게 된 거에요.




20172회차 농생태학 학교 기념샷!



올해는 전국의 여성농민들 20명 정도를 대상으로, 1년에 4, 12일에 걸쳐서 진행하게 되었고요, 다양한 강사분들과 함께 농생태학의 개념과 원칙 외에도 한국 농업의 자본주의화, 정책과 대안의 모색까지 방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일단 2번째 농생태학교까지 완료 되었습니다. 앞으로 8월에 부여에서, 11월에 서울에서 남은 두 회차가 열릴 거에요. 다소 시험적이었던 올해가 가면 내년부터는 보다 체계적인 학교를 열 예정이니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농생태 운동이 확산하길 기대해봅니다 ^.^


이 밖에도 요즘 연구소에서는 서울시의 사업을 받아 희망먹거리네트워크라는 급식운동 단체와 함께 시민들을 상대로 공공급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구요.. 틈틈이 관심 가는 주제가 있으면 공부를 해서 보고서도 쓰고 그래요. 최근에는 비아캄페시나를 중심으로 UN에서 농민과 농촌 노동자 권리 선언문을 수립하기 위한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연구소에서도 토론회가 열릴 때마다 꼼꼼히 챙겨보고, 농민 활동가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 너무 일 이야기만 많이 했나요다소 따분하지요?


남은 편지는 소소한 제 일상으로 마무리하고자 해요. 사실 요즘에 가장 많이 에너지를 쏟고 있는 활동 중 하나가, 아침마다 하는 요가에요. 제가 하는 아쉬탕가 요가는 인도의 마이솔이라는 곳에서 유래되었는데, 순서가 딱 짜여 있어요. 특히 마이솔 스타일이라는 방식은, 선생님이 하면 따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생님이 진도를 하나씩 주시면 앞에서부터 순서를 외워가면서 셀프로 진행해요.



아쉬탕가 요가 첫 번째 시리즈 순서        

출처: http://www.trueryan.com/store/download-the-primary-series-chart/



남이 시켜야, 떠먹여줘야만 뭔가를 하다가 나 혼자 몸을 쓴다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매일 아침을 내 호흡을 바라보고 집중하는 시간으로 시작을 하니 종일 마음을 편하지만 강하게 잡아주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실 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올빼미족인데, 일찍 수련하자고 마음을 먹고선 5시 전후해서 일어나서 수련을 가요.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일어나기가 고달파지겠지만, 암튼 날이 밝은 요즘은 이런 일과의 시작이 참 좋네요.


그리고 최근엔 신체 활동이 하나 더 추가되었어요. 바로 바로 자전거 타고 한강 달리기. 서울시에서는 도시의 교통과 공해 문제를 덜고자 공공 자전거인 따릉이를 설치하고 확대하는 과정에 있어요. 성난 자동차로 가득 찬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기가 영 쉽지는 않지만, 어쨌든 한강까지만 내려가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기분 좋게 달릴 수 있어요. 이 전 시장은 세금을 잔뜩 들여 강에다가 쓰지도 않을 이상한 건물을 지었는데, 이렇게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에 시장이 신경을 쓰니 정말 소소한 변화 하나로 행복해지네요. 에너지를 많이 쓰고, 지구를 오염시키고, 위험하기까지 한 자동차보다, 건강하고, 착하고, 지구를 살리는 자전거를 맘놓고 탈 수 있는 도시가 되면 좋겠어요.



따릉이 타고 퇴근하는 길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주 금요일에는 스페인으로 출국을 해요. 4년마다 열리는 비아캄페시나 총회에 저도 통역으로 가게 되었거든요. 참고로 우리 농담의 최보란양도 한국의 청년농민을 대표해서 갑니다. 자잘하게 준비를 하다 보니 하는 거 없이 괜히 마음이 분주하고, 잘 해야 하는데 하고 걱정도 드네요. 보람찬 시간을 보내고 와서 8월달에 우리 만날 때 소식 공유할게요!

 

. 쓰고 보니 정말 뒤죽박죽 한 글이네요^^; 요즘 생활이 딱 그래요. 그런데 뒤죽박죽 한 거, 나름 재미도 있고.. 마냥 나쁘지는 않은 거 같아요.


2017711.

왕십리에서 영지 씀.

 

다음 편지는, 다시 화천으로 가서 달짱의 소식을 듣고 싶네요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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