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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친구에게] 달래언니

by 농민, 들 2017. 8. 15.

혼자 상상만 해온 일을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 열린 청년여성농민 캠프 우리끼리 좋아서 하룻밤’. 2017년 아직 농사가 시작되기 전이던 3월 어느 날, 청년여성농민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열 명의 농민, 농업활동가, 농촌생활자가 모였습니다. 

첫 번째 캠프 이야기 http://j-nongdam.tistory.com/96

 

지난 3월 청년여성농민 캠프에서 1 2일을 함께 보낸 청년여성농민 열 명은 헤어지기 전, 릴레이 편지를 쓸 것을 약속했습니다. 삶을 공유하는 일을 지속하자는 약속이었습니다.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간 청년여성농민들은 논밭에서, 집에서, 사무실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받고, 또 누군가에게 편지를 씁니다. [농저널 농담]



<청년여성농민 캠프 참가자> 들


달래언니.


지금은 아침 10시에요. 농사일을 도우러 오신 일꾼 할머니들에게 아침참을 드리고, 오후참을 준비하면 매일같이 꼭 10시가 돼요. 애써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때를 맞춰 참 준비를 하다 보니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있게 되네요. 참 준비는 올 봄, 고향에 내려와서부터 한 일이에요. 밭농사가 많은 아빠는 동네 할머니들을 자주 모셔다 일하거든요. 할머니들은 아빠의 중요한 동료들이에요. 농민이나 유기농업 생산자로 대우받지는 못 하지만 아빠가 짓는 농사에 있어서는, 분명 유기농업의 손발이 되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에요. 할머니들 참은 주로 집에서 수확한 유기농산물로 만들어요.


매번 같은 참을 드릴 수는 없기에, 같은 재료로 어떻게 다른 맛과 모양을 낼지 연구 중이기도 하고요. 때론 일명 들참사업을 구상하기도 해요. 매일 아침 주변 농가로부터 참 주문을 받는 거죠. 자기네가 수확한 농산물을 가져다주면 가격 할인. 상상뿐이지만, 재밌을 것 같아서 상상을 넓혀가는 중이에요. 저야 무소속 날라리라서 참을 구상할 여유까지 있지만, 부지깽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만큼 바쁜 다른 농가는 참 한 번 사 나르는 것도 큰 일일 수 있으니까요.


시내 파리바게트 빵 대신 건강한 재료로 참을 만드는 건 일꾼 할머니들을 향한 감사 표현이자, 지금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농민운동이란 생각을 해요.



일꾼 할머니들 / ⓒ들



언니, 언니는 잘 지내나요? 홍동은 가을이 온 것 같아요. 바람이 아침저녁 제법 시원하게 부네요. 며칠 전부터는 벼 익는 냄새가 나기도 해요. 저는 여름 끄트머리와 가을로 들어서는 이 계절이 좋아요. 벼 냄새가 날 때면 마음이 일렁여요. 이 계절, 우리 곧 만나겠네요. 첫 번째 청년여성농민캠프(이하 '캠프')가 열린지 다섯 달 만에요.


두 번째 캠프가 다가올수록 지난겨울, 캠프 기획을 시작했던 때가 떠올라요. 전여농(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과 청년여성농민 간담회를 한 후, 카페로 자리를 옮겨 나눈 대화들. 캠프를 준비하며 했던 숱한 통화와 채팅들을 자꾸 더듬어보게 돼요. 기억을 더듬다, 종종 스스로에게 묻기도 해요. 나는 왜 캠프가 힘들었을까. 기획자였던 우리 좋자고 시작한 캠프였는데, 거기서 나는 왜 지쳤을까. 다른 기획자들을 몰아세우면서까지 일을 잘 추진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친 마음에 한 동안 미뤄두었던 질문을 다시 하고 있어요.


나는 왜 캠프에 욕심이 났을까. 성과를 내고 싶으냐는 언니의 질문에 울컥했지만, 언니 말이 맞았어요. 그 때 난 성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성차별이 만연한 농촌/농업사회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와,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운동 방향에 따라 실무만 반복하는 생활을 벗어날 수 있겠다는 희망들이 쌓여 욕심이 됐어요. 관성처럼 성과와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요. 그러다보니 중요한 나와 동료의 행복을 잊었던 것 같아요.


달래언니. 언니에게 있어 지난봄 우리가 함께 열었던 캠프는 어떤 의미였나요? 언니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언니는 곧 있을 두 번째 캠프 다음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언니와 함께 캠프 다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언니가 오랫동안 품은 공동체에 대한 꿈이 얼마나 발전됐는지도 궁금해요. 언니와 함께, 우리가 농촌/농업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 하고 싶어요. 더불어 우리 삶의 행복에 대해서도. 종종 안부를 묻는 사이지만, 언니는 내게 늘 좋은 힘이 되는 존재였어요. 언니는 내게 좋은 선배이자 동료에요편지를 쓰다 보니, 언니가 보고 싶어요. 내 지친 마음을 위로 받고 싶기도 하고, 가능하다면 언니 삶에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언니가 존재함에 감사해요.

 

홍동은 어제부터 비가 내리고 있어요. 장마 때보다 더 많이 온다는데, 이 비가 지나면 가을이 부쩍 가까이 와 있을 것 같아요. 언니가 농사짓고 사는 안골의 가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요. 오늘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자야겠어요. 안녕!



8월 중순 논 /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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