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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친구에게] 제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by 농민, 들 2017. 8. 27.

혼자 상상만 해온 일을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 열린 청년여성농민 캠프 우리끼리 좋아서 하룻밤’. 2017년 아직 농사가 시작되기 전이던 3월 어느 날, 청년여성농민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열 명의 농민, 농업활동가, 농촌생활자가 모였습니다. 

첫 번째 캠프 이야기 http://j-nongdam.tistory.com/96

 

지난 3월 청년여성농민 캠프에서 1 2일을 함께 보낸 청년여성농민 열 명은 헤어지기 전, 릴레이 편지를 쓸 것을 약속했습니다. 삶을 공유하는 일을 지속하자는 약속이었습니다.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간 청년여성농민들은 논밭에서, 집에서, 사무실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받고, 또 누군가에게 편지를 씁니다. [농저널 농담]



<청년여성농민 캠프 참가자> 달래




모두들 잘 지내지요? 어느새 우린 두 번째 청년여성농민캠프에서 만났다 헤어졌네요. 첫 번째 캠프와 두 번째 캠프 사이, 제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변화에 익숙해지느라 봄과 여름을 정신없이 보냈어요. 청년여성으로 홀로 농사짓는 하루가 쉽지만은 않네요. 주제파악 못하고 가진 능력 이상으로 벌여놓은 일을 해 가느라, 체력고갈로 한계를 느낀 채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도 하고요.

 

요즘 전 이 또한 시간은 지나가리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협업을 꿈꾸며 또래친구들과 일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함께 하는 과정 중, 서로 다른 모습을 조율하는 일에 서툴렀고, 용기도 부족했어요.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걸 이제야 스스로를 바라보며 깨닫고 있어요.

얼마 전부터는 혼자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혼자 농사짓는 일은 편하지만, 때론 , 힘들다.” 하며 한숨을 쉬기도 해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먼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보기도 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는 구름과 바람이 보내는 위로 덕분에, 다시 마음을 움켜쥐고, 낫톱날로 풀을 베어 고추멀칭을 해주었어요.


 

ⓒ달래

수피작업



한 동에 100평 가까이 되는 시설재배 하우스 세 동을 준비하면서, 고단한 일들이 많은 나날을 보냈어요. 경험이 부족했던 저는 하우스 마무리 작업뿐만 아니라 비닐 씌우는 일, 물 배관부터 점적호수 설치, 물을 끌어오는 것 등 모르는 게 많았어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처절했고, 그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어요. 물론 할 일이 많다보니 슬픔에 깊게 빠질 수 없는 장점이 있긴 하더라고요. 정신을 차리고 주변 친구들, 이웃사촌들,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 겨우 겨우 해 나가고 있어요. ‘솟아날 구멍은 있구나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유기농업 농가와 농촌과 농사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우프코리아를 통해 6월 중순부터 2주간 한국 청년우퍼 시현이가 풀매는 일을 많이 도와주었고, 7월 초에는 홈스쿨링을 하는 열여섯 살 민규가 열흘 동안 하우스 치마 작업을 해줬고, 7월 말에는 풀무학교 지연과 다연 그리고 가영이가 2주간 참나무 껍질 수피를 하우스에 옮겨 펼쳐주는 작업을 해줘서 바쁜 불씨를 꺼주었거든요.

도움을 받는 만큼, 도움을 준 사람들이 먹을 참과 밥상을 차리는 것이 중요했어요. 도움을 받는 저로써는 최대한 외부 음식이 아닌 농사지은 것을 맛나고 풍성하게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달래

고추 집게 작업 중인 청년우퍼 시현

 


이제야 한해의 반이 지나가고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가 고추와 녹두, 백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수확하기 전인 이 시간이 제겐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쪽잠 같아요.


지난 편지에서 푸른들이가 물어본 마을 공동체 꿈은 조금씩 한쪽에 미루어두고 있어요. 본인부터 서야지 그 다음을 여유롭게 고민하며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스스로 준비 되지 않았는데 꿈만 쫓아가다 관계가 힘들어지는 것보다는, 저부터 터전을 다져 준비가 되면 기운을 모아보려고 해요.

앞서서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이 늘 하시는 말씀 중 때로는 사람이 억지로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별 생각 없이 하다보면 어느새 만들어져 있다.’고 하더군요. 쉽게 말하면 될 건 되고 안 될 건 안 된다. 조급하거나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제가 할일을 꾸준히 페이스조절하며 긴 호흡을 가지고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욕심은 선택을 후회를 하지 않는 거예요. 땅이 주는 힘과 자연흐름이 제게, 농사짓는 이유를 속삭여주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땅심과 자연의 기운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몸과 마음이 지속되었으면 하고요.

 

김을 매다가 고추가 지긋지긋하고 징글징글하다고, 한숨 쉬며 하늘을 원망스럽게 쳐다볼 때가 많았어요. 그러다 문득 본 하늘과 땅 사이 기운이 순간, 제 몸속에 들어올 때가 있어요. 어떻게 말로 표현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은은하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해야 할 것들을 보며 손도 못 놓고 발을 이리 동동 저리 동동 하고 있는 사이, 많은 사람들 도움으로 하나씩 해나가면서, ‘농사는 혼자 짓지만 결국은 함께 짓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달래

하우스에 심기 전인 아스파라거스



풀무학교 친구들이 2주간 일을 많이 해주어서 여유가 아닌 여유를 부려, 저번 주에는 동생네랑 언니네 조카들과 물놀이를 했어요. 또 아스파라거스가 잘 크고 있나 들여다보니 키도 훌쩍 크고, 뿌리착상도 잘 해 새순도 잘 자란 거 있죠? 무지한 나에게 온 아스파라거스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겨, 더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돼요. 이 소소한 마음에 마냥 힘이 나네요.


저는 이렇게 하루하루 땅을 들여다보고 있고, 심어놓은 식물들이 죽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무식할 정도로 멋모르는 도전을 하고 있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엉뚱한 질문에도 아버지께 이것저것 물어보며, 하나씩 습득해 가는데, 이게 은근히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제 생애 이렇게 많은 몸노동과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해나가는 일이 처음이에요올 한해가 배움과 습득이 가득 찬 해라고 생각하고, 올해보다는 내년이 수월해지겠지, 하는 기대로 꿋꿋하게 농사를 해나고 있습니다.

 

얼토당토 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지력을 살리고 보이지 않은 땅속 일꾼들 미생물과 하늘 그리고 사람이 함께 공생하며 농사짓는 터전을 만들어보는 것이 제 욕심 중 1순위예요.

 

힘들다, 힘들다.’ 저도 모르게 나오는 이 말을 내뱉지만, 중요한 건 지금 삶이 불행하지 많다는 거예요. 대단히 행복하고 즐겁지만도 않지만, 고단해도 지금 삶이 좋다고 제가 제 스스로에게 말해주니, 그 말에 버티고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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