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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친구에게] 덜꽃이에요.

by 농민, 들 2017. 8. 31.

혼자 상상만 해온 일을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 열린 청년여성농민 캠프 우리끼리 좋아서 하룻밤’. 2017년 아직 농사가 시작되기 전이던 3월 어느 날, 청년여성농민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열 명의 농민, 농업활동가, 농촌생활자가 모였습니다. 

첫 번째 캠프 이야기 http://j-nongdam.tistory.com/96

 

지난 3월 청년여성농민 캠프에서 1 2일을 함께 보낸 청년여성농민 열 명은 헤어지기 전, 릴레이 편지를 쓸 것을 약속했습니다. 삶을 공유하는 일을 지속하자는 약속이었습니다.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간 청년여성농민들은 논밭에서, 집에서, 사무실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받고, 또 누군가에게 편지를 씁니다. [농저널 농담]



<청년여성농민 캠프 참가자> 덜꽃


덜꽃이에요^^.

누군가에게 글로 나의 소식을 전하는 일이 오랜만이네요.

 

청명한 햇빛이 내린 오늘은, 지난 이틀 동안 반갑지 않게 내린 비로 눅눅한 집안 살림들을 마당에 모두 내놓아 일광욕을 시키는 일로 아침을 시작했어요.

 

시골살이 5년 만에 생긴 일상하나는 매일 일기예보를 보는 일이네요.

오늘은 비가 오는지, 해님이 나오시는지, 온도는 어떤지….

이것이 농부의 자연스런 일상이고 일인 것을 배우고 익히고 있는 중입니다.

도시의 삶은 하루에 하늘을 볼 시간, 흙을 밟을 시간도 없고, 날씨는 그냥 TV에 나오는 화려한 기상캐스터의 충실한 자신의 업무 보고 정도로 받아드렸죠.

모든 자연과 맞닿아 있는 지금은 구름의 움직임, 바람의 세기와 촉촉함, 그리고 새 울음소리 등으로 나름 일기 점쳐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하지요.

 

여기 이 곳 홍천 내면이라는 곳에 온 지 이제 횟수로 5년이네요.

명칭처럼 내면.


 ⓒ덜꽃


깊고 깊은 골짜기에 자리를 잡고, 옆지기와 능력에 넘쳐나는 농사를 짓느라 농사철엔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어요.

 

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그 마음과는 많이 달라진 삶이지만, 어찌 보면 그때 그 마음이 농에 대한 허영이 아니었나 하는 반성이 들 때도 있어요.

농의 삶을 산다는 것을 쉽게 생각한 게 아닌지. 이상적인 삶을 꿈꾼 게 아닌지, 혹이나 멋스럽단 생각을 한 게 아닌지….

사실 너무 농사일이 버거운 날들이 더욱 많지만, 동네 어르신들의 부지런한 농사일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지나친 투정이 아닐까 반성하기도 해요.

 

아직 어리숙한 농부지만, 농부의 삶을 살다보니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어요.

지식보다 지혜로움이 더욱 값지고 얻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을,

모든 살아 숨 쉬는 것은 다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을 관찰해야만 이 모든 흘러가는 이치를 파악하고 이해 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할 수 있고, 이로써 자연自然스러운 이가 될 수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달고 살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농사일은 정~말 끝이 없네요.

 

눈뜨는 그 순간부터 달콤한 잠에 빠지는 그 순간까지 머릿속 할 일들은 가득하네요.

고추도 따야하고, 양파도 마무리해야지, 그 놈의 풀들은 왜 이리 금세 크는지, 브로콜리 곁순은 빨리 따줘야 실하게 열릴 거고, 양배추는 수확 해야지...

잠시 쉼표를 찍을 시간이 없네요.

옆지기에게 바다가 보고 싶다고 투정을 하면서도 문득이라도 혼자서라도 못나서는 이유는…. .

 

지난 청년여성농민 캠프(http://j-nongdam.tistory.com/108)로 잠시 지쳐있던 내 모습을 확인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정원님께서 제게 물으셨죠?

가장 지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요.

농부로서 완벽하게 살아가는 법! ^^

밭에서만 아닌 내 생활과 모든 주변에서 씩씩하고 살뜰하게 살아가보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싶네요.

 

처음으로 하는 제 이야기라 두서가 없었네요.

차차 저와 서로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날들을 기대합니다.

새벽부터 고추 딴 손으로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노라니 손가락이 어리둥절해 하네요. ㅋㅋㅋ 농번기엔 머리보다 몸의 활동이 큰 시기라 글을 쓰는 일이 배로 어려움을 느낍니다. 이렇게 오늘의 편지를 급 마무리하며 진부한 제 안부를 전합니다. 호호

 

정원님은 가을맞이를 잘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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