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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토론] 청년여성농민 좌절금지 정책 상상대회

by 농민, 들 2018. 1. 11.

<청년여성농민캠프 기획자, 농저널농담 운영자> 들



우리는 지난 토론회들을 거치며, 농촌에서 청년여성들이 겪는 좌절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지역과 문화에 따라 겪는 불평등 경험은 달랐지만, 차별이라는 인식의 씨앗은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에서 겪는 좌절은 개인의 노오력만을 가지고는 극복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기존의 *성인지정책을 기반으로 한 ‘농촌청년여성 좌절금지 정책 상상대회’를 가졌다. 정책 구상은 2017년 3월부터 12월까지 나눈 농촌에서 청년여성으로서 겪은 좌절키워드와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성인지정책

성평등 이념 실현, 성차별 개선, 성평등 기여정책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 기본사항으로 규정된 정책이기도 하다.



토론일시: 2017년 12월 10일(일)

장소: 충남 홍성 장곡 한울마을 마을회관

참가자: 달짱, 덜꽃, 들, 연근, 연두, 삐삐



ⓒ해원



(사회자): 농촌청년여성 좌절금지 정책 상상대회로, 농촌에 필요한 성인지정책을 구상하는 시간이에요. 수혜자는 농촌청년여성으로 설정하고, 구상을 해볼까요?


삐삐: 육아정책에 힘쓰는 것도 성인지정책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들: 보육정책도 성인지정책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보육정책이 잘 돼야 여성들이 자신들의 일을 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연두: 농촌 아이들이 주변 자연을 누리며 자랐으면 좋겠어요. 우리 동네에 산이 많잖아요. 그래서 숲유치원으로 소규모 작은 유치원 같은 걸 하고 싶은데, 쉽지는 않아요. 학부모들이 교육을 받아서 공동육아를 해도 좋겠지만, 생계 때문에 어려운 점이기도 하고요.

덜꽃: 동네사람들에게 들었는데요. 부녀회장이나 반장이 1년에 한번 리더십교육을 받거든요. 그 분들은 교육 중 한 챕터에서 귀농 귀촌인들과 잘 사는 방법에 대해 듣는다고 해요. 그 분들한테는 우리처럼 귀농 귀촌한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게 큰 문제니까, 그런 챕터가 있다고 하더라고. ‘서로가 같이 사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타협을 어떻게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 달짱은 어땠어요?


달짱: 여성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농기계가 필요해.

: 저는 그것도 성인지정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달짱: 여자가 농기계를 빌려 가면 미덥지 않은 시선을 보내. 남편이 없으니까 내가 기계를 빌려가는 것에 대해 신뢰하지 않더라고. 하도 가니까 나중에는 설명을 들어서 이해가 가긴 했는데,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어.

: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농기계 임대사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인 거예요?

달짱: 여성들에게도 농기계를 빌려주긴 하는데, 너무 무거워서 여성농민이 쓸 수 없어. 대부분 농촌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이 기계를 더 많이 다루긴 하지. 그렇지만 나 같은 1인 여성가구는 여성이 기계를 해야 하잖아. 빌려야 되는데, 나 같은 사람들만을 위해서는 여성 기계를 들일 수 없다는 거지. 예산이 많이 드니까. 이해가 되긴 하지만, 여성으로서 필요 하긴 하고. 또 남성들의 도움을 계속해 받을 수는 없는 부분이잖아.

: 여성을 위한 농기계임대사업과 기존 사업의 차이점은 뭐예요? 언니가 생각하는...

달래: 똑같아. 여성이 사용할 수 있는 기계를 그냥 사면되는데... 그게 임대수입도 생각해야 하는 거지. 여성농민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임대해서 뽑아낼 수 있는 수입을.


연두: 농촌청년여성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예산이 쓰이면 어떨까. 작은 6평짜리 공간이라도. 책이나 커피 이런 거 놓을 수 있는. 여성들이 따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무안에 여성회관, 센터 같은 게 있는 것처럼 공간과 프로그램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막 작게 작게.

달짱: 마을마다 있는 마을회관이나 여성회관 말고?

연두: (여성들의) 문화 같은 걸 할 수 있는. 왜냐하면 동네(화천)에서 보면 군인들이 많아서 도서관이나 어린이도서관은 짓는데, 여성을 위한 건물은 없어요. 얘들이랑 어린이도서관은 가도, 엄마가 자기를 위한 공간을 가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화천이 젊은 여성들이 많아요. 대부분 아기엄마들. 요즘 자주 만나는데, 프로그램이나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달짱: 여성의 공간도 필요하지만, 남자들도 끌어들여서 남자도 함께 고민하는 장이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연두: 그건 그 (여성들을 위한)공간에서 프로그램을 짜기 나름인 것 같아. 중심은 여성이고...

달짱: 그런데 여성이라는 문구가 들어가면 남자들은 잘 안 들어갈 것 같아. 그런 문구가 들어가고, 그런 사업이라면...

연두: 그럴 수도 있겠다.

: 화천 군부대 아파트에 사는 여성들도 농촌청년여성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들: 그렇네요.

덜꽃: 외국인들도 있잖아요

: 맞아요. 외국인 여성노동자나 결혼해서 외국에서 온 이주여성도 결국 농촌청년여성인거죠.

모두들: 그렇네요.

덜꽃: 농촌이 여러 문제들을 많이 안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동네는 외국인이 목을 매고 자살을 했어요. 자기가 일하는 하우스에서. 농촌문제가 앞으로는 더 다양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해원



: 여성 혼자 농촌에서 안전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그때의 세상은 많은 것들이 변해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여자가 혼자서도 안전에 대한 걱정없이 농촌에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건 청년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들부터 할머니들까지, 농촌에 사는 모든 여성의 문제 같아요.

달짱: 나는 요새 사람보다 동물이 무서워. 어느 날 이웃인 친구가 우리집에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문도 잠겨있고 불도 꺼져 있으니까 이상한 놈이 와서 해치진 않았나 걱정했다고 하더라고. 진짜 껌껌해. 그리고 산에 먹을 게 없으니까 동물들, 멧돼지가 그렇게 와.

모두들: 하하하.

연두: 농촌 1인 가구 여성이 얼마나 되는지, 또 수요가 얼마나 있는지 조사해보면 좋겠어요.

연근: 그런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도시에 온 사람들이 얼마나 농촌에 머물렀다가 가는지.

연두: 동네사람들에게는 얘가 여기에 얼마나 발붙이고 살 건지가 가장 중요하잖아요.

덜꽃: 나도 그 이야기 정말 많이 들었어. “금방 갈 줄 알았는데 오래 있네?” 뭐 이런 얘기.

연근: 나는 도시로 다시 돌아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 왜 농촌에 발을 못 붙였는지.

덜꽃: 맞아요.

연근: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서울로 돌아가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런 게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정착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렵지? 그저 이게 새로운 곳에 정착해서 힘든 건가, 청년여성이라서 힘든 건가... 고민이 돼요. 그런데 우리 마을은 표면적으로 “남자는~, 여자는~”이란 말을 많이 하진 않아요. 이런 말을 하면 주변에서 말리는 분위기.


덜꽃: 제가 가장 마지막에 있던 직장이 여성인력개발센터였거든요. 경력단절 여성들이 취업을 하기 위해 다니는 센터에 제가 있었어요. 그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아이를 낳은 순간과 (여성인력개발)센터에 합격돼서 교육을 받는 순간이 되게 좋았대요. 예를 들어서 제가 김명희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아 내가 내 이름을 얼마 만에 들어본 건가’하셨대요. 다 누구 엄마라고 불리니까요. 나중에 나도 결혼을 하면 저런 감정이 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막상 농촌에 오니까 난 남편 때문에 따라온 존재가 되어있더라고요. 나도 귀농준비를 하고, 귀농을 한 건데. 그러면서 여성의 존재감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가 계속 이야기한 것처럼 여자들은 항상 뒤에서 일하잖아요. 중요한 일이지만,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농촌에서의 여성의 힘과 역할이 많은 사람에게 인식되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우리는 사실 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도 우리 스스로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잘 못하게 되잖아요. 먹고, 생활하는 것 모두 여성의 손으로 하고 있는 건데.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인식의 변화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연두: 덜꽃 이야기 듣고 갑자기 든 생각인데, 우리가 성인지교육을 받고 마을어른들과 할 수 있는 성인지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거야. 우리는 그걸로 생계유지도 하면서, 성인지 프로그램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모두들: 좋네요.

: 덜꽃의 말을 들으니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의 토종종자사업이 생각나요. 전여농 활동가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성역할을 규정짓는 사업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요. 오랫동안 여성들이 지켜온 활동과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과, 성역할을 규정하는 일은 다른 것 같더라고요. 전여농의 토종종자사업처럼, 농촌 여성들이 해온 일들의 가치가 더 많이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덜꽃: 씨앗을 모으는 일은 모두 할머니들이 해오시던 거잖아요.

연근: 채종이라는 일이 만약 남성이 전통적으로 해오던 일이라면 막강한 권위를 가졌을 일일 것 같은데, 여성이 하니까 하찮고 잡일 같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항상 여성들은 경제의 주체였다는 생각을 해요.

덜꽃: 시골 사는 여성들은 일을 더 많이 해. 사실 남자들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달짱: 남녀는 똑같이 일을 해도 취급이 달라요.

덜꽃: 품값도 여자가 더 적게 받잖아.

모두들: 맞아 맞아.

덜꽃: 그런데 남자들이 일을 더 못 하는 부분도 있단 말이야.

: 보통 남자들은 힘을 쓰는 일을 하니까 돈을 더 주죠.

덜꽃: 난 그게 이해가 안 가. 힘의 논리로만 보면... 지구력 있게 일을 빨리 하는 건 여자들인데. 그런데 품값이 왜 차이가 날까.

: 힘쓰는 일을 많은 여자들이 잘 못하듯, 많은 남자들이 풀 메는 일을 잘 못하는데. 품값이 다른 건 이해가 안 가네요.

덜꽃: 이 캠프에 갈 걸 생각하는데, 예전에 귀농 초기에 에코페미니즘이란 책을 봤던 게 생각났어요. 그 책을 캠프에 가기 전에 읽어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하하하. 요즘 농촌에 새로 정착한 사람들이 그 책을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내 모습을 돌아보려고요.

: 나중에 같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달짱: 저는 요즘 여성이라는 게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체력이 부족해서. 나는 톱질해도 안 지쳤으면 좋겠어. 남자들, 아무리 말랐어도 나보다는 힘이 쎄더라고.

덜꽃: 나보다 힘 약한 남자들도 있는데. 사람에 따라 다른 거 아닐까? 힘의 논리로 볼 수도 있겠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이 못하는 것을 할 수도 있잖아.

달짱: 그런데 저는 혼자 다 해야 하니까. 아니면 신세를 져야 하고. 그게 싫어요.

덜꽃: “역시 남자가 있어야 해.” 나는 그 말이 싫더라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불끈해. 여자도 할 수 있어. 다만 시간이 힘이 쎈 사람보다 오래 걸릴 뿐이지.

달짱: 그래서 난 요즘 인정하게 됐어. 역시 남자가 필요하구나.

연두: 달짱, 남자라고 다 힘 쎈 거 아니고, 여자라고 다 힘이 약한 것도 아니야.

덜꽃: 그래. 남자들 중에서도 나보다 힘 못 쓰는 사람들 많아.

연두: 어제 왔던 만난 언니는 혼자 농사짓잖아. 혼자 퇴비 다 뿌리고, 혼자 다 한다고...

: 혼자 농사짓는 멋진 여성농부들을 만나러 다니면 좋겠네.

연두: 아, 좋다. 그거.


ⓒ해원

2017년 마지막 토론회, '청년여성농민 좌절금지 정책 상상대회' 참가자



마지막 토론회 기록으로 2017년 캠프 갈무리를 마친다. 청년여성농민이란 이름으로 모인 우리는 농민이었고, 귀농인이거나 귀촌인, 또는 엄마이자 아내였고, 단체 활동가였고, 청년실업자였다. 같은 이름으로 모였지만 다른 위치에 있었고, 모두 다른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2017년 세 번의 캠프를 통해 같은 것은 공감하고, 다른 것은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다른 생각을 스스럼없이 공개하는 것은 우리 캠프가 유지되는 힘이기도 했다.


“정체성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 모든 정체성은 차이를 가로질러 형성된다. (중략) 여성이나 페미니즘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자 내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억압이다. 여성들 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여성 해방이다.”

“현재 자신의 정체성과 멤버십에 기반을 두면서도 그것을 본질화하지 않으며, 타자를 동징화하지 않고 상대방의 상황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대화가 횡단의 정치이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제 3차 청년여성농민캠프 스케치 영상

제작: 들



<이 글은 농촌청년여성캠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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