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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토론] 농촌청년여성, 농촌페미니즘을 말하다.

by 농민, 들 2018. 1. 12.

농촌청년여성들이 말하는

농촌페미니즘

and

농촌에서 여성들이 겪은 좌절 성토대회



우리는 3차 청년여성농민캠프 시작토론으로 ‘농촌에서 청년여성이 겪은 좌절 성토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캠프에 참가하기에 앞서 문화기획 달이 제작한 자료집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와 그들이 여성주의저널 일다에 연재한 농촌페미니즘 기사를 읽어왔다. 우린 약 2시간가량 성토대회를 통해 농촌에서 청년여성으로 겪은 좌절과 농촌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년여성농민이란 이름으로 모인 우리는 농민이었고, 귀농인이거나 귀촌인, 또는 엄마이자 아내였고, 단체 활동가였고, 청년실업자였다. 같은 이름으로 모였지만 다른 위치에 있었고, 모두 다른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이번 토론회를 통해 같은 것은 공감하고, 다른 것은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다른 생각을 스스럼없이 공유하는 것은 우리 캠프가 유지되는 힘이기도 했다. 이 토론은 이후 다음 날 마무리 토론 ‘청년여성농민 좌절금지 정책 상상대회’로 이어졌다.



일시: 2017년 12월 9일(토)

장소: 충남 홍성 장곡 한울마을 마을회관

참가자: 달짱, 들, 연두, 삐삐, 보둥, 동건

진행: 삐

기록: 삐삐, 들




삐삐: 문화기획 달의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자료집과 일다 기사는 어떠셨나요? 공감이 많이 되시나요? 저는 이번 캠프를 준비하면서 ‘농촌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요. 공부를 하면서 ‘아, 그래 농촌에서의 페미니즘은 도시에서의 페미니즘과 다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사 내용은 제 개인적인 경험의 한계로 공감이 잘 안 될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도시와 농촌의 성차별 경험은 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농촌페미니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면 좋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지난 3월 첫 번째 캠프 때 여성으로서 농촌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찾아봤더니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더라고요.


1. 사생활 침해(과도한 관심,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 편견, 시선들, 간섭) 2. 함께 살기(공동체, 가족과의 동거,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선배, 지역사회에 대한 고민) 3. 노동(긴 노동, 남성이 할 수 있는 일과 여성이 할 수 있는 일, 힘 쓰는 일, 잡초, 여성으로서 자급하는 일) 4. 미세먼지 5. 빚(경제적 어려움, 먹고 사는 일, 차와 돈의 상관 관계, 주거) 6. 이른 아침 기상 6. 외로움


우리가 또 다들 다른 지역에 살고 있으니까, 다들 각자의 지역에서 여성으로서 지금은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갈까에 대한 이야기들이 궁금해요.


ⓒ보란

1차 농촌청년여성캠프 토론회



동건: 자료들을 보면서, 극단적인 상황들을 포함해 그런 상황들을 초래하게 된 인식, 그 인식이 일상에서 행해지는(표현되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힘든 건 그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뿐이더라고요. 저는 농촌에 사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농촌이라고 도시와 뭐가 다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다르다는 생각보다 (자료집 이야기가)공감 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농촌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쓰건 쓰지 않건 간에, 농촌이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다른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면 뭐가 있을까 그런 생각은 들더라구요. ‘노동이 다른 공간보다 과중한 부분은 확실히 있는 건데, 그것은 농업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인거지 페미니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이론화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요즘 (국제농민단체인 비아캄페시나에서는)‘대중소농 페미니즘’이란 말이 나오는데, 그곳에서는 농촌의 페미니즘은 도시, 서구 여성들의 페미니즘과 다르다고 얘기해요. 그런데 아직 그 이야기들이 좀 추상적인 느낌. 미국의 농촌과 한국의 농촌도 분명 다를텐데, 전세계에서 대중소농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면 그건 어떤 의미 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저는 성차별이라는 같은 씨앗이 도시와 시골에서, 그리고 삐삐가 겪은 것, 내가 겪은 것, 동건이 겪은 것들이 다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도시와 농촌에서 여성운동, 페미니즘 운동을 한다면 모습이 다르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농촌은 성차별이라는 씨앗이 도시와는 같지만, 드러나는 현상이 다를 수는 있잖아요. 그리고 평등을 외치는 순간 잃게 되는 것도 다르겠고요. 농촌은 농토나 농가 임대가 어렵게 되거나, 기계를 못 빌리게 될 수도 있고, 공동체에서 배제될 수도 있잖아요. 농촌페미니즘은 사는 곳에서 살지 않을 각오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어요. 저 역시 자료집과 기사에서 언급된 사례와 제가 경험한 것은 많이 달랐어요. 하지만 ‘농촌에서 겪는 성차별 문제는 그 지역만의 문제야’라던가 ‘저 사람들이 너무 예민해’ 이렇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도 성차별이 만연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겠어요. 지역별 특성에 따라 풀어가는 방법은 분명 다르겠지만요.


달짱: 나는 내가 보수적이여서인지 농촌 문화가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아. 어느 정도는 내가 맞춰 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그들(농촌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가 낯설단 말이야. 어떻게 보면 농촌의 문화에서 그들(페미니스트)의 행동이 너무 튀는 행동이라고 보여 지기도 하거든. 그것을 굳이 이 안에서 표출을 해야 할까 라는 생각도 들어. 물론 불편한 점도 있지. 우리 동네에서도 젊은 친구들이 동네 행사에 가면 ‘여자는 자고로 이런 행사에 설거지만 잘 하면 점수 반 이상 따먹고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어. 아줌마들은 만날 바쁘고 아저씨들은 술 마시고, 그런 걸 보면 상당히 불쾌하고 불편해.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살아온 문화가 있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 세대의 문화를 만들어 가면 되지 않을까. (기성세대)가 그렇다고 해서 우리 또래 부부들이 똑같은 건 아니니까. 우리는 동네행사 가서도 다 같이 치우고 같이 먹고 하거든. 그렇다고 어른들도 그걸 나무라지는 않는 분위기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너무 대립 구도로 갈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사실 나는 이런 페미니즘 문화가 되게 도시적인 문화라는 생각도 들거든. 도시 문화는 또 서양의 것들이 많이 묻어있고. 아까 동건이 말했듯 다들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점검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서양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오는 이 속도가 좀 빠르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우리의 속도대로 가야 하지 않을까, 각기 세대에 맞게 변화해 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는 중간에서 노력해 주시는 분이 계셔서 한결 좋았던 것도 있어. 세대 간의 중간다리 역할을 해 주시는 분이 있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


보둥: 저는 동네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안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농촌의)이런 문화를 접해보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부모님들과의 관계 속에서 불편을 느낄 때가 있어요. 저희 부부는 성별 분업이 없이 지내려고 하는데, 부모님은 그게 아니시거든요. 이런 문제에서 느끼는 성차별 같은 것이 있고. 농촌 내의 성차별 관련해서는 달짱과 입장이 비슷해요. 농촌사회 안에서 유별나게 하지 않더라도, 우리 가정 내의 성차별을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하며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어요. 달짱이 말했던 중간다리 역할을 해주는 분이 계시면 정말 좋겠지만, 저희처럼 그런 교류가 별로 없는 경우 저희끼리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가 좀 고민이에요.


: 농촌마다, 지역마다, 개인마다 다들 판단의 기준이 다르잖아요. 달짱이나 보둥이 유별나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는 유별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더 유별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건데, 그런 것들을 우리가 회의해서 결론을 내리듯이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누구의 기준을 따라서 유별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삐삐: 지역 분들과의 문제는 없나요?


보둥: 지역 분들과의 교류는 아예 안하는 편이에요. 1차 캠프 때도 말했듯 새로운 새댁이 지역에 들어오니까 아무렇지 않게 저희 집을 들락거리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활동을 안 하는데도 이정도 인데 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 모임에 한 번 가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진짜 아까 그 자료집에 나온 만화에서처럼 “너는 부엌으로 와~” 그러시더라구요. 그런 문화를 접하고 나서는 지역 분들과의 교류를 일절하지 않게 되었어요.


삐삐: 그런데 그렇게 지역 분들과 교류를 하지 않고 지역에서 지낼 만 하세요?


보둥: 일단 시부모님이 함께 계시고, 마을에 친척 분들이 많이 계서서 불이익 같은 건 없는데, 뒤에서 ‘그 집 새댁은 와서 아무 것도 안 한다’ 그런 말들은 하겠죠. 그래도 저한테 직접적으로 얘기 하시진 않으니까 그냥 지내고 있어요.


삐삐: 기사에 그런 내용이 있었어요. 도시에서 의식을 가지고 농촌에 귀농 귀촌을 하러 온 사람들도 지역에서 지역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어쩔 수없이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고요.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그런 상황에 처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연두: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며 사셨기 때문에 농촌문화를 많이 접하고 살았어요. 그래서 농촌의 이 문화에 내가 어떻게 분위기를 맞춰야 되는지를 먼저 알게 된 거죠. 그래서 농촌의 문화가 성역할의 분담 문제라기보다 그분들이 해오던 삶의 방식의 표현이랄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들어요. 예를 들어 “부엌으로 와~”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그분들의 애정의 표현일 수도 있다는 거죠. ‘너 참 이쁘니까 우리 영역으로 들어와서 빨리 같이 적응을 하게 해 주고 싶어’라는 표현일수도 있는 거예요. 그분들은 이런 표현이 성차별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얘가 우리 공동체에 빨리 적응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못 하시는 것 같아요. 그게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고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농촌공동체라는 특수성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농촌에 사는 건 정말 뭘까, 정말 대안적이기만 한 것일까’. 오히려 성차별, 세대간의 격차, 관습과 문화가 고정되어 있고, 텃세가 굉장히 심한 곳이 농촌이거든요.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땅을 일구며 일 년을 사는 사람들이에요. 빨리빨리 회전이 된다기보다는 부모님 세대부터 계속 이 땅에서 애를 낳고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농촌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여기서 다시 농촌페미니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분들을 변화 시켜야 된다기보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이들과 같이 잘 살고 싶고 함께 노력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우리가 그 문화에 조금 적응해야 하는 것도 필요 한 것 같아요. 그래야 그들도 우리에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니까요. 

저는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이 문화에 맞추며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가 성역할의 차별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지는 않아요. 하지만 도시에서 농촌으로 뭔가 새로운 삶을 꿈꾸며 온 사람들에게는 이런 문화가 훨씬 불편하게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그래서 저는 공동체 내에서 반상회 같은 곳에서 활동을 좀 하면서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은 뒤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지금 동네로 이사 온 지 2년 정도 됐는데 눈치가 많이 보여요. 왜냐하면 동네 사람들은 이 터에서 수십 년 살았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면 그냥 쭈글이가 돼요. 그럴 때는 ‘아 내가 굳이 이렇게 지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아이를 낳고 농사를 짓고 집을 짓고 계속 살아가야 되기 때문에, 격렬한 페미니즘운동은 하기 힘들어 지는 거죠. 안 그러면 혼자 살아야 하는데, 농촌이라는 문화 자체가 그렇게는 살 수 없는 곳이니까요.



ⓒ 들



삐삐: 얘기를 듣고 보니 저는 농촌페미니즘과 도시페미니즘만이 다르다고 생각 했는데, 더 들어가 농촌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서 또 입장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확실히 그 지역 공동에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것이고, 그에 비해 그냥 농촌이 좋아 농촌에 살게 된 사람들 그러니까 귀촌자들은 농사짓는 사람들에 비해 공동체의 영향을 덜 받는 거죠. 그래서 일다나 문화기획 달 사람들과 달리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아이를 낳고 터를 이루고 살아야 하는 연두나 달짱의 입장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달짱: 지역에 부모님이 있고 없고의 차이도 아주 커. 나 같은 경우 부모님이 이미 연세도 있으시고 하시니까 지역 어른들도 나한테는 함부로 안하시는 분위기가 있어.


연두: 우리처럼 이렇게 부모님이 지역에 살고 계시지 않을 경우, 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도시에서 와서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것들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아요.


삐삐: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농촌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혼자 사는 여성’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어요. 무섭겠다. 농촌에서 뭔가를 해결해 나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는 사실 가족들과 함께 농촌에 와서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농촌이 가족 중심적이라는 것을 많이 못 느꼈었거든요.


연두: 맞아요. 예를 들어 우리 동네에서는 연근이 결혼하지 않았는데도 어른들이 계속 ‘색시’라고 불러요. 그리고 아무런 연고 없이 농촌에 살기는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동건우리가 이야기를 계속 나누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여성도 여성이기 전에 인간이다’라는 것이 뚜렷한 방향성이고, ‘여성이라고 해서 어떠한 잣대가 있어서는 안 되고 모든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궁극적인 지향이라면, 방금 우리가 말했던 ‘농촌에서는 좀 달라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하는 거예요. 우리가 농촌에 살기 위해 달라야 한다는 것이 사실은 그냥 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내가 가지고 있는 방향성은 뚜렷한데 살기 위해서 타협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한 발 물러서는 걸까? 아니면 조화롭게 살기 위한 걸까? 둘 다 인 것 같기도 하더라구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가부장적인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이 많이 불편했어요. 그런데 ‘저분들도 평생 그게 당연한줄 알고 살아오신 분들인데 이해해야지’ 하고 생각하니 그냥 마음은 편하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제 자신이 그냥 편하게 살자고 한발 물러 서버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삐삐: 가끔은 내가 여자지만 페미니즘이 좀 불편하게 느껴 질 때가 있어요. 왜일까 생각해 보면 상황이 고려되지 않은 채 옳다는 정의만 강하게 주장되

어지고, 이로 인해 자기 부정을 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순간 페미니즘은 나에게 불편한 것이 되고, 운동의 지속성을 가질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이 기사나 자료집의 표현 방식이 좀 불편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도시에서의 페미니즘 운동방식과 농촌에서 하는 운동 방식이 분명 다를 것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그걸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는 아직 고민이에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이 옳다는 주장 하나만으로는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성차별적인 일은 어떻게든 표현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맞는 것도 같고. 이 지점에서 고민이 많이 돼요.


연두: 페미니즘이 ‘남녀와 상관없이 자기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받고 서로 인정해 주자’는 거잖아요. 농촌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정해진 틀에 재단하는 것에 저항해야 되는 거잖아요. 동건 말을 들으면서 내 행동이 타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농촌에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성차별을 받는 것에 대해 대항하고 목소리를 낼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고 농사를 지으면서 안정을 위해 헤엄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 농촌에서 일어나는 어떤 차별에 대해 내가 조금 더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자신감이 없어서 타협 중이에요.


: 저는 자료집과 기사를 보면서 이 사람들 정말 처절히 성차별을 경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정도까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정도로 사례를 모으고 같이 꾸준히 이야기를 해서 자료집까지 만들어 내고, 지금은 농촌 페미니즘 교육도 하고 있다는데... 결국 이런 결과를 위해 농촌페미니즘에 대해 처절하게 경험하고 치열하게 고민한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타협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 결과물은 처절하게 겪고,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들의 대항 결과인 것 같아요.


연두: 나에게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고 행동을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서 깨어 있는 것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동네에서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 같이 나누고, 공부하면서 우리 안에서 우리의 내공을 쌓아 가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이야기 나누면서 결국 중요한 건 타협을 하던 하지 않던, 운동을 하던 하지 않던 평등하지 않은 분위기, 평등하지 않은 구조가 우리 공동체 내에 있다는 것을 인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기사가 나오거나 프로젝트를 할 때 ‘아 쟤네는 왜 저렇게 오버하는 거야?’ ‘왜 저렇게 별것도 아닌 것에 반응 하는 거야?’라며 등 돌리지 않는 것. 그 정도는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달짱: 나는 차별이라는 말 자체가 도시적인 언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사실 차별이라기보다는 내가 불편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굳이 이렇게 이분법으로 표현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가끔 들어. 나는 ‘대립’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내가 투쟁 할 것은 하지만, 나에게 큰 타격이 올 것 같지 않은 것에는 별로 행동 하지 않거든. 반상회 같은 거 불편하면 안 나가버려. 난 어른들 자체가 불편하거든.


연두: 그런데 한편으로는 (농촌에서 행사에)가서 어머니들이 다 준비 했는데, 가서 얻어먹고만 오는 것이 마음이 좀 불편 한 것도 있지.


삐삐: 그걸 꼭 언니가 할 필요는 없잖아? 남편은 뭐해?


연두: 기본적인 상 옮기기 같은 건 하지만... 설거지는 안 하지.


삐삐: 그럼 다음 반상회 때 '남편 설거지 시키기' 하면 되겠다!


연두: 괜찮은 방법이네. 흐흐.


삐삐: 그들에게 강요하지는 않되, 우리가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이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네!


동건: 근데 그렇게 하면 또 욕먹지 않아요? 저 집 새댁은 남편한테 설거지 시킨다고.


연두: 그럴 때 유머를 발휘해서 치고 나가야 하는 게 있지.


삐삐: 나도 그런 방법들을 찾아서 조화롭게 해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편이에요. 하지만 성차별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왜 피해자가 이런 걸 의식해야 해?’라는 인식이 강할 수 있죠.


달짱: 나는 제일 중요한 게 집에서 남편들부터 자각시켜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 뭔가 ‘차별’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거부반응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 오히려 남편들에게 폭력적이게 느껴지진 않을까?


동건: 그런데 그렇게 폭력성을 드러내지 않으면 목소리가 안 들리는 부분도 있는 거잖아요. 사실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 페미니즘 운동이 강력하게 나오게 된 것도 여성들이 남성들의 언어를 강력하게 미러링하면서 가시화 된 부분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호전적인 성향을 띄는 것에 대해서도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게 개인적인 차원에서 실천하려다 보면 오히려 힘든 경우는 본인인 것 같고. 누군가가 나를 채찍으로 때리려고 했을 때, 똑같이 채찍을 들고 때리려는 사람도 있는 거고 그냥 피하고 마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건 판단의 차이이기 때문에...


: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삐삐: 오늘 토론회에서는 ‘성차별이라는 같은 씨앗이라 할지라도 농촌과 도시는 페미니즘 운동 방식이 다를 것’이라고 시작된 이야기가 ‘농촌에서 겪은 차별과 차별을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아까 말했듯 농촌 안에서도 생활 방식과 위치에 따라 겪는 상황과 앞으로 처할 상황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른 위치의 서로를 이해하는 것과 각자의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도 들고요. 내일은 우리의 오늘 토론을 바탕으로 성인지 정책에 대해 논의해보겠습니다. 이상으로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다음 날 토론기록농촌청년여성 좌절금지 정책 상상대회>




3차 청년여성농민캠프 스케치 영상

제작: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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