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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농촌청년여성 생활수기] 농사지을 준비 중

by 농민, 들 2018. 1. 30.



<농저널 농담 기획자, 충남 홍성 농민> 들


ⓒ들

논과 오서산


ⓒ들

눈 내린 밭



1. 어젯밤 눈이 내렸다. 어제는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금’ 신청 서류를 드디어 제출했다. 최선을 다해 서류를 만든 건 아무래도 이번이 처음 같다. 합격이 되면 3년 동안 매달 80~100만원을 받을 수도 있게 된다. 좋은 조건이니 이 정도 노력을 들이는 건, 가성비로 따지면 갑이다. 내 생애 이 정도로 완성된 서류를 만들 수 도 있다니. 역시 돈이란 건 놀랍다. 돈은 게으른 나도 움직이게 했다.


전국 1200명 대상, 홍성지역에 할당된 6명에 내가 해당될지는 미지수다. 얼마 전, 먼 곳에서 농사짓는 친구와 서로 합격하길 빌어주자며 이런 얘길 했다. 이 사업비만큼은 서류만 잘 만들고 말발만 센 사람들 말고, 농업으로 벌어먹고 살 계획인(살고 있는) 청년들이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2. 요새는 틈틈이 농장 이름을 구상한다. 친구들은 좋은 이름이 생각날 때마다 내게 알려준다. 친구들에게선 별의별 이름이 다 나온다. 이름 대부분에는 내 이름인 ‘들’이 들어간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은 ‘따뜻한 들’. 지독한 한파 때문에 끌린 건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볕이 들끓는 여름이 되면 따뜻하다는 표현은 버리고 싶어지려나. 따뜻하다는 건 여러 의미로 비춰질 수 있어서 좋았다. 대자연을 향한 경의를 담은 것 같기도 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농부를 표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음에 드는 것치고는 망설여진다. 농산물 마케팅에 있어서는 인정 많고 따뜻한 농민으로 비춰지고 싶지만, 역시 난 많고 많은 농부 감성마케팅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 이제 흔해진 감성마케팅의 한계를 느끼기도 할 뿐만 아니라 나는 곱지도, 착하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이기적이고, 때론 배타적이기까지 한 사람이다. 따뜻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는 일을, 어서 그만두길 스스로에게 바라며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정한 농산물 직거래 사이트, 운영자 콘셉트는 이렇다. 고향에서 농민 아빠를 따라 농사지을 준비 중인 농촌페미니스트이자 왈패. 그런데 이래도 농산물이 잘 팔릴지는 모르겠다. 아, 정신 차리고 돈 벌어야 되는데. 


3차 청년여성농민캠프 참가자들의 생활글쓰기 공동프로젝트. 

2017년 1월 30일 농저널농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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