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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풀무에서 보내는 편지

[풀무에서 보내는 편지] 세 번째. 푸른들언니에게

by 농민, 들 2014. 4. 7.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환경농업 전공부에 입학한 여연이가 겪고 느끼는 것을 편지에 담아 주변 사람들에게 보냅니다. 20대 청년이 학교에서 생태농업과 공동체를 배워 나가는 과정을 소개합니다.[농저널 농담]

 

<농저널 농담> 여연

 

 

<시 노래 상상력> 수업에서 '봄'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전공부 학생(의 손) ⓒ 여연

 

 

언니, 안녕. 이번 편지는 언니에게 쓰기로 했어. 어차피 이 농담이라는 저널에 함께 참여하는데 새삼스럽게 웬 편지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언니도 알다시피, 내가 풀무 전공부에 들어와야겠다고 맘먹은 건 푸른들이라는 사람이 있어서야. 학교에 대해서는 여러 번 이야기를 들었었지만, 홍동에서 나고 자라 전공부까지 나온 언니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더라면 내가 여기 오려는 결심을 굳게 할 수 있었을까 싶어. 아마 훨씬 더 헤매면서 망설였겠지.

 

하지만 운명인지 우연인지 어떤 자리에서 언니를 알게 됐어. 언니가 가진 독특한 개성이 묘하면서도 재미있었고, 끝내는 나도 전공부에 가면 저렇게 자연스럽고 우아해질 수 있을까?’라고 기대어린 마음을 품었어. 물론 많은 다른 상황들과 판단들도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지만, 언니가 결정적으로 불씨를 당겼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 별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한 사람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니. 친구란 참 멋진 거야.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편지는 전공부에서 맺는 관계들에 대해서 써볼까 해.

 

학교에서 맺는 관계라고 하면 선생님과의 관계가 있고, 선배들과의 관계가 있고, 동기들과의 관계도 있어. 전공부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 그리고 마을에 사는 사람들과 만들어 나가야 할 관계도 있겠지. 그중에서도 일상적이면서도 중요한 건 물론 학생들이 서로 맺는 관계야. 그중에서도 함께 입학한 동기들과는, 정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얼굴을 맞대고 지낸다고 해도 좋을 것 같아.

 

학교에 오기 전에는 친구들에 대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어. 전공부라는 곳에는 정말 다양하고 독특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짐작할 수가 없잖아.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큰 기대를 품으면 실망하게 될 것 같았거든. 그래서 그냥 막연하게 같이 입학하는 사람들이 혹시 너무 수가 적다거나, 잘 통하지 않는다거나 해도 학교생활에는 지장이 없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하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가장 많은 시간을 부대끼고 생각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친구들이야.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만나게 된 사람들이자,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떻게든 서로 참고 넘겨야 하는 사람들. 이 작은 학교에서 어떻게든 엮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가끔은 또 같이 해야 해? 정말 악연이다!’하고 투덜거리다가도 우연히 서로 통한다거나 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건 또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몰라.

 

 

 앵두나무에 피어난 꽃 ⓒ 여연

 

 

이들과는 애쓰지 않아도 늘 함께 있어. 함께 먹고, 공부하고, 일하고, 회의를 해. 나는 이런 친구들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학교의 분위기에 천천히 적응하고 있어. 서로가 원할 때 잠깐 만나고, 원치 않는 많은 시간동안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가 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던 이들인데. 이제는 하루의 대부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다니, 신기한 일이야.

 

농사를 배워서 수녀원에서 밭을 일구겠다는 마음을 품고 오신 수녀님, 시간이 날 때마다 피아노를 연습하는 어여쁜 언니. 늘 성경을 읽고 있는 오빠, 농담을 툭툭 잘하고 곰돌이 푸를 닮은 스무 살짜리 남자아이. 시를 잘 쓰고 조용히 집중해서 일하는 스무 살, 의사에게 농업을 포기하라는 말을 듣고도 꿋꿋하게 학교를 다니는 스물한 살, 학교에 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칼질하다 손톱을 잘라먹고 전치 4주를 받은, 막내다운 잔망스러움이 폴폴 풍기는 스무 살. 아침마다 양손에 반지를 끼고 나타나는 데스메탈 마니아 스무 살.

 

 

 텃밭 오총사: 강아지눈꽃, 낫, 호미, 장갑 그리고 밀짚모자 ⓒ 여연

 

 

우리는 함께 일을 해. 언니도 알지? 함께 일한다는 건 다른 어떤 일보다도 사람을 가까이 있게 만들어. 우리가 친구를 사귈 때 보통 하는 일들, 함께 뭔가를 먹고 마신다거나, 대화를 한다거나, 걷는다거나 하는 일들이 일한다는 것 안에 모두 들어가 있잖아.

 

함께 땅을 고르고, 거름도 내고, 풀도 뽑고, 지주도 세워. 그러면서 농담도 하고, 수다도 떨지. 새참이 오면 흙 묻은 손으로 허겁지겁 고픈 배를 채워. 먼지투성이의 맨얼굴, 낡은 작업복, 흙 묻은 장화. 거름 냄새. 일하는 동안에는 내숭을 떨거나 자신을 꼭꼭 숨길 틈이 없어.

저 사람은 어째서 저런 행동을 할까?’

저애는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왜 저렇게 답답하게 구는 거야!’

 

때때로 마음이 잘 맞지 않으면 이런 생각들이 열 번쯤은 머리를 스쳐 지나가. 하지만 , 넌 왜 그렇게 행동하니?”하고 물어보고, 대답을 얻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고는 결코 단정할 수 없어. 자신의 언어이건 타인의 언어이건, 말로 설명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복잡한 존재인 것 같거든.

 

<시 노래 상상력>수업시간에 '꽃'을 주제로 전공부 학생들이 그린 그림 ⓒ 여연

 

 

아주 사소해 보이는 어떤 행동도, 그 사람이 과거에 만들어 놓은 습관과 연결되어 있어. 그리고 그의 지금 기분 상태, 순간적인 판단, 상대방과의 관계. 그밖에도 말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온갖 미묘한 것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데, 어떻게 감히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겠어. 2년이 지나고 나면 적어도 이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될까? 가까움을 느낄 수 있게 될까?

 

아무튼 최근에는 이 사람을 안다, 이 사람과 친하다.” 이런 말들을 하는 게 조심스러워.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요즘이야. 있는 그대로 타인의 존재와 그 세계를 인정하기. 그럼으로써 서로 편안하게 관계 맺기. 농사도, 공부도 중요하지만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작은 배움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

 

푸른들 언니, 이곳의 하루하루가 참 행복해. 언니는 참 괜찮은 학교를 나왔어! 언니를 만나게 돼서, 전공부에 들어오게 돼서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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