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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풀무에서 보내는 편지

[풀무에서 보내는 편지]첫 번째. 하연에게

by 농민, 들 2014. 3. 9.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환경농업 전공부에 입학한 여연이가 겪고 느끼는 것을 편지에 담아 주변 사람들에게 보냅니다. 20대 청년이 학교에서 생태농업과 공동체를 배워 나가는 과정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농저널 농담> 여연

 

 

하연아 안녕, 언니야. 지난 2월 말 내가 집을 떠나고, 며칠 안 있어 너도 집을 떠난 이후로 전화통화 한 번 못했지? 마음속으로는 하연이 네 생각 참 많이 했는데, 이상하게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어. 언니로서 역할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드네. 우리 둘 다 처음 겪어보는 학교라는 공간, 그리고 기숙사 생활인데,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잘 적응하고 있겠지? 집이랑, 엄마랑, 동물들이 그립지는 않을까? “핸드폰이 있으면서 연락도 안 하고, 나쁜 언니야!”라고 툴툴거리는 네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

 

나는 여기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 환경농업 전공부에서 첫 번째 일주일을 보냈어. 신입생 설명회랑 입학식도 끝냈고, 수업도 한 번씩 다 들어봤지. 낯선 공간, 모르는 사람들, 처음 듣는 강의. 김치 맛도 다르고, 공기도 달라. 새로움으로 가득한 한 주였다는 생각이 들어.

 

 ⓒ문수영

 

일주일동안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설명해줄게. 아침 620분이 되면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기숙사 아래층에 있는 식당으로 비척비척 걸어 내려가. 세수도 안 하고 왜 이렇게 일찍 식당으로 가냐고? 630분부터 식당에서 아침운동을 하기 때문이야. 졸린 눈을 하고 둔하게 몸을 움직이다가도, 운동이 끝날 때쯤이면 잠에서 얼추 깨어나 있게 되더라고.

 

7시에는 아침밥을 먹어. 그리고 8시부터는 아침모임을 하는데, 이땐 학생들이 모두 모여서 성경구절을 한 소절씩 읽어. 기독교를 믿지는 않지만 성경을 종교적인 의미를 담은 책으로 읽지 않고 그저 한 권의 오래된 책이라고 생각하니까 이 시간도 재밌어. 지금은 신약성서 중에서도 마태복음을 읽는 중이야. 여기저기 익숙한 부분이 많아서 이 책이 얼마나 유명한지 실감하고 있어. 또 같이 입학한 사람들 중에 수녀님이 한 분 계신데, 그분은 성경을 참 우아하고 낭랑하게 읽으셔서 듣기 좋아.

 

ⓒ문수영

 

아침 모임이 끝나면 기숙사로 돌아가서 씻고, 9시에 시작되는 교실수업을 위해서 학교 건물로 가. 아침수업은 두 과목을 들을 수 있고,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과목들이 개설되어 있어. <농부와 인문> 시간에는 생활글 쓰기와 책 읽고 글쓰기 등을 해. 같은 선생님이 <농부와 고전> 수업도 진행하시는데, 이 시간에는 논어를 읽고 있어. 한자를 잘 모르니까 첫 문장에서부터 턱 막히더라고. 앞길이 막막해.

 

<논농사> 시간에는 벼농사에 관련된 이론적인 지식들을 배우고, 농사철이 아닐 땐 여러 가지 사상가들의 글을 읽기도 해. <밭농사> 수업은 첫 시간이 시작될 때까지 도대체 뭘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어. 그런데 알고 보니까 무지 재미있는 수업이더라고! 꽃과 채소를 함께 심어 가꾸는 텃밭정원이라는 걸 설계하고, 계절에 따라서 직접 만들어 보는 거야. 같은 선생님이 <농사계획><재배계획> 도 진행하시는데, 교실 수업 중에선 농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실용적인 수업이야.

 

또 하나 실용적인 <농업과 기술> 시간에는 학생들의 흥미에 따라 다양한 기술들을 배우게 될 거래. 농기구와 농기계 다루는 법을 익히고, 수도나 보일러를 고쳐보기도 하고, 빵과 가공식품 만들기도 하고, 목공 실습을 할지도 모른다고 해. 과연 짧은 수업 시간에 이 모든 걸 다 해볼 수 있을까? 무조건 경험해본다고 해서 몸에 바로 익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야. 인기가 좋은 수업이라는데,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

 

그 외에도 외부에서 선생님이 오셔서 강의를 하는 <인권과 자치> 수업과, 밝맑도서관에서 진행되는 <자연과학> 수업이 있어. <+노래+상상력> 이란 건 올해 처음 생긴 수업인데, 2학년들이 진행하는 시간이야. 수업 이야긴 언젠가 다시 쓸 기회가 있을 테니 여기까지만 할게.

 

교실수업이 끝나면 점심시간이야. 여긴 쌀부터 배추까지 거의 모든 식량을 우리가 농사지어서 먹는다는 이야긴 전에 한 적이 있던가? 너도 알다시피 규모는 작아도 여긴 학교잖아. 선생님과 학교에서 일하시는 분들, 무지무지 먹어대는 학생들, 손님들까지. 이 모든 사람들이 먹는 곡식과 채소 대부분을 학교에서 농사짓는 거야. 멋지지?

 

아침과 저녁은 당번을 정해 학생들끼리 해먹지만, 점심에는 이 지역에 사시는 분이 밥을 해주러 오셔. 밥이 정말 맛있어! 금요일 점심에는 잔치국수가 나왔는데, 그렇게 맛있는 잔치국수는 처음 먹어 봤다니까. 밥이 워낙 맛있어서 학교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어.


점심을 다 먹고 나면 한시 반까지 잠시 쉬는 시간이 있어. 길지 않은 자투리 시간이지만, 잘 활용해서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더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야. 매일매일 뭘 할지 계획을 잔뜩 세우는데,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제대로 해내는 일은 거의 없는 거야. 계획은 늘 얼크러지고, 마음속에는 아쉬움만 가득 남아. 아무튼 앞으로 점심시간에는 수업 정리도 좀 하고, 찾아볼 게 있으면 도서실에 가서 찾아보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알차게 보내려고 해.

 

ⓒ문수영

 

달콤하고 아쉬운 점심시간이 끝나면 130분까지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학교 앞에 모여야 해. 그때부턴 농사 실습 시간이거든. 첫 실습 시간에는 씨감자를 자르고, 감자와 완두콩 밭에 거름을 냈어. 그리고 다음날 실습 시간에 감자와 완두콩을 심었어.

실습을 할 때 조금 아쉬운 건, 1학년인 우리가 직접 해볼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다는 거야. 우리 자신이 워낙 서투르기도 하거니와, 굵직굵직한 일들은 선생님들이 해주시기 때문에 아직은 농사 체험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 하지만 그렇다고 덜 피곤한 건 아냐. 어느 날은 실습 시간 내내 땅콩만 깠는데, 땅콩을 까는 동안 같은 학년 동기들과 얼마나 수다를 떨었는지 저녁이 되니까 머리가 멍하더라고.

 

실습을 하고 있으면 식사 당번이 새참을 내와. 당번은 식사 당번, 축사 당번, 원예 당번 이렇게 세 가지가 있는데, 두 사람이 짝을 지어서 하는 거야. 어느 한 가지도 난 아직 맡아본 적이 없어. 다음 주쯤 되면 첫 번째 당번을 해보게 될 텐데, 식사 당번 같은 경우는 할 일이 많은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돼. 하루 두 끼 밥도 준비해야 하고, 밥 먹고 나서 뒷정리도 해야 하고, 참도 만들어야 하거든. 하지만 만드는 사람은 고생스러워도 먹는 사람에게는 물론 새참이 반갑지.

 

ⓒ문수영

 

실습 시간은 6시에 끝나. 그럼 잠시 기숙사에 들어가서 씻는 시간을 가지고, 630분에는 저녁을 먹어. 저녁을 먹고 나서부턴 자유시간이야. 이 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기타를 연습해. 근처 마을도서관인 밝맑도서관에 강좌를 들으러 갈 수도 있고, 동아리 활동을 할 수도 있지. 그러다가 10시나 11시쯤 되면 피곤해져서, 이불을 깔고 잘 준비를 해.

집에서는 떼가 꼬질꼬질 낀 면바지에, 아침 9시에 일어나서 머리도 안 빗고 돌아다니던 언니도 여기선 꽤나 규칙적이고 깔끔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지? 그러고 보면 일상생활에서 시간적인 자유가 있어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질 능력이 없으면 무슨 소용일까 싶어. 너 혹시 몇 년 전에 집에서 내가 얼마나 한심하게 살았는지 기억하니? 밤마다 마을회관에 몰래 가 드라마와 웹툰을 보면서,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잖아. 그렇게 사는 건 어렵지 않아.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돼. 내가 어디에 사는지, 어떤 사람인지, 주변에는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무감각해지는 거지.

 

ⓒ문수영

 

하지만 더 이상은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어디에 있든, 내가 살아가는 장소를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고 해.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사람 아닌 다른 존재와 사물들까지. 어떤 장소든 살면서 좋고 나쁜 기억이 쌓이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곳을 오롯이 사랑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은 것 같아. 게다가 늘 아직 가보지 못한 곳, 멀리 있는 곳을 꿈꾸고, 동시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걸 상상하게 되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럴수록 눈앞에 있는 일상과, 서로 부대끼는 사람들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해보려고 해.

 

언니 이야기는 이만 줄일게. 나는 정말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하연이 너도 새로운 장소에서 마음 맞는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흥미에 맞는 공부와 생활을 하면서 신나게 지냈으면 좋겠다. 처음 겪는 학교생활과, 열일곱 살의 봄을 네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맞이하기를. 각자가 살아가는 장소에서, 힘내서 생활하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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