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풀무에서 보내는 편지

[풀무에서 보내는 편지]다섯 번째. 희정선배께

by 농민, 들 2014. 5. 12.

<농저널 농담> 여연

 

찬란했던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있어요 ⓒ 문수영

 

 

희정선배! 이번 편지의 주인공은 선배랍니다. 놀라셨죠?” 이렇게 편지를 시작하려고 했어요. 감사하게도 선배가 항상 제 글을 챙겨봐 주시니까, 아무 말 않다가 편지를 써서 깜짝 놀래켜 드리려고 했는데. 늘 성급한 이놈의 입이 문제네요. 아니, 주책없이 카톡을 보낸 손가락이 문제일까요? 미리 알리지 말고 조금만 참을 걸 그랬어요.

 

서울에서 잠시 살다 홍성으로 내려올 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그림이랑 편지랑 써서 선배네 집에 보내야지하고 다짐 비슷한 걸 했었어요.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록 펜을 들지 못하고 있네요. “잘 지내세요, 사랑해요!”이런 안부인사는 다른 걸 통해서도 주고받을 수 있지만, 악필이라도 끼적끼적 손글씨를 쓰고 마음을 담은 그림을 그려서 보내는 건 특별한 건데. 저도 참, 일상에 치여서 주변 관계들을 잘 못 챙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아요. 혹시라도 이런 평화로운 일상이 무너지게 되면 분명 후회할 일이 잔뜩 있을 거예요.

 

 

 

논둑에 핀 자운영 논둑에 덕분에 저절로 만들어진 작은 정원   ⓒ 여연

 

찬란했던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있어요. 이제 낮이 길어져서 오전 다섯 시 반이면 태양이 벌써 멀리 산들 사이로 고개를 빠꼼 내밀어요. 매일 아침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나곤 해요. “으악, 늦잠을 잤나 봐! 벌써 해가 중천이네.” 하지만 허둥지둥 시계를 보면 다행스럽게도 바늘은 숫자 6을 가리키고 있어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누워요.

 

옆자리에서 주무시는 수녀님은 벌써 일어나셔서, 다른 방에서 기도를 하고 계세요. 그 옆에서는 선배 언니가 발그레한 볼을 하고 곤히 잠들어 있고요. 밖은 벌써 한낮처럼 밝아요.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오고, 새들이 지저귀는 맑고 고요한 아침.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체조시간이 되면 마지못해 일어나는 전공부의 아침을 선배랑 나눌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웃고 떠들며 모판을 붙이고 나니 저도 괜히 굉장한 일에 한몫을 한 듯, 뿌듯한 마음이 들었어요 ⓒ 홍한솔찬

 

 

이제 바야흐로 농사철이에요. 전공부에서 논농사를 담당하고 계신 선생님은, 3월에 갓 입학한 일학년들에게 농사일은 옆에서 보고 배우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지금 저희가 논농사를 딱 그런 식으로 배우고 있어요. 선생님들이 그때그때 시기에 맞춰 일을 하시면, 학생들은 옆에서 설명을 들으며 주어지는 일들을 얌전히 하는 거예요.

 

사실 저는 논농사를 위해서 그렇게나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여기서 처음 알았어요. 싹을 틔우는 작업도 복잡해요. 먼저 볍씨에 까끌까끌하게 붙어있는 털인 꺼럭을 제거하고, 소금물에 담가 좋은 종자를 골라내요. 그리고는 볍씨를 종자별로 조금씩 나눠 담아 열탕소독이란 걸 하는데, 말 그대로 60도씨의 뜨거운 물에 볍씨를 넣었다 빼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병균들을 없애는 작업이에요.

 

열탕소독을 하고 나서는 싹을 틔워요. 낮에 햇볕 아래서 따끈따끈 데워진 물에 볍씨를 담갔다가, 밤에는 빼서 말리고. 이 일을 10일쯤 되풀이하면 볍씨에서 싹이 트는 거예요. ‘비둘기 가슴만큼 싹이 올라왔다란 말, 혹시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자그마한 볍씨에 하얀 싹이 볼록하게 올라오면, 그게 꼭 깃털을 잔뜩 부풀린 비둘기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나 봐요.

 

볍씨 싹이 트는 동안, 벼 모종을 키울 못자리 논을 준비해요. 실습시간에 선생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논에 거름도 뿌리고, 물을 대기 위해 모터도 설치하고, 경운기에 쟁기를 달아서 한 명씩 돌아가며 쟁기질도 연습해봤어요. ‘가래라고 불리는 희한하게 생긴 삽을 이용해서 질척질척한 도랑의 진흙을 퍼내는 일도 했죠. 가래는 양 귀퉁이에 끈이 하나씩 달려 있는 커다란 삽인데, 세 사람이 함께 쓰는 거라서 삽보다 훨씬 무겁고 찐득거리는 흙도 파낼 수 있어요. 대신 함께하는 사람들과 호흡이 잘 맞아야 해요.

 

그렇게 준비를 하고, 때가 되면 싹튼 볍씨를 모판에 뿌려서 못자리에 가져다놓는 일을 해요. 전공부에서는 하루 반 정도 아예 수업도 쉬고 이 일에 매달리는데, 몇 천 판이나 되는 모판을 준비해서 볍씨를 뿌려요. 또 모판을 놓아둘 못자리에 물을 대고, 질척한 진흙 속으로 들어가 삽이랑 레이크랑 써레 같은 여러 도구들을 사용해서 평평하게 땅을 골라요. 최대한 평평하게 골라야지 물이 고르게 받아지고 모판이 땅에 착 달라붙기 때문에, 땅을 고르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완전히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라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세기면서 신중하게 높낮이를 맞추지만, 온몸을 써서 일해도 여전히 땅은 울퉁불퉁. 평등한 세상이란 사람세상에서나 모판세상에서나 불가능한 일인 걸까요. 그래도 써레질을 해서 매끄러워진 땅에 전공부 선생님, 학생, 졸업생이 모두 함께 웃고 떠들며 모판을 붙이고 나니 저도 괜히 굉장한 일에 한몫을 한 듯, 뿌듯한 마음이 들었어요.

 

 

땅을 고갈시키지 않는 농사를 짓고 싶어요 ⓒ 홍한솔찬

 

논농사를 배우면서 요즘 느끼고 있는 건, 역시나 기계를 많이 쓴다는 거예요. 커다란 트랙터로 논도 갈아줘야 하고, 갈아엎어져서 속살이 드러난 논을 잘게 부셔서 로터리를 치는 일도 경운기나 트랙터가 해요. 논에 물을 담을 수 있도록 논두렁을 탄탄하게 만드는 일도 트랙터에 논두렁 조성기라는 걸 붙여서 하더라고요.

 

기계를 잘 다루는 선생님이 운전하시는 커다랗고 빨간 트랙터가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왔다 갔다 하고 나면 광활하게만 보이던 논이 순식간에 갈리고, 기다란 논두렁이 마치 칼로 깎아낸 것처럼 반듯하게 착착 만들어져요. 사람 힘으로 했으면 몇날 며칠이 걸렸을 일인데. 남자동기들은 역시 기계가 좋다고 낄낄거리고, 저는 동기 언니와 얼굴을 마주보며 허망한 미소를 짓죠.

 

당장 오늘 일을 덜하고 몸이 편한 건 반갑지만, 저렇게 큰 기계가 왔다 갔다 하는 걸 멍하니 쳐다보는 농사를 저는 하고 싶지 않아요. 나와 내 가족이 먹을 만큼의 규모로 퇴비와 노동력을 자급하고, 가능하면 외부에서 에너지를 가져오지 않으면서, 땅을 고갈시키지 않는 농사를 짓고 싶어요,

 

논 조금, 밭 조금, 작은 집 한 채, 소 한 마리, 닭 몇 마리. 쓰고 보니 이건 무슨 동화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네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이십대 초반 아이의 꿈일 뿐일까요? 그렇지만 나중에라도 제가 이렇게 살면 저희 집에 자주 놀러오세요.

 

 

어느새 모판에 파랗게 싹이 났어요  ⓒ 홍한솔찬

 

 

못자리를 만든 다음 비가 몇 번 내리고, 선생님과 2학년 선배들이 물을 잘 관리해줬는지 어느새 모판에 파랗게 싹이 났어요. 이제 실습 주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이때는 수업도 다 쉬고, 아침 여덟시부터 해질 때까지 일을 한다고 해요. 전공부 건물 바로 옆에 있는 갓골 논의 모를 하루 만에 다 심는대요. 학교 사람들과 지역에 사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멀리서 온 손님들이 함께, 축제처럼 노래하고 새참을 먹고 술을 마시며 구부린 허리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겠지요.

 

문득,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 논농사는 공동체가 살아있는 곳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전공부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렸어요. 내가 사는 지역을 잘 알고, 그 지역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내가 더 크게 농사를 짓는 이웃과 도움을 주고받고, 일을 놀이처럼 여기면서 일 자체에서 위안을 얻고. 내가 발 딛고 서있는 땅과 자연을 사랑하고, 한 장소를 계절마다 여행하면서.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너는 분명 그렇게 살 수 있을 거야,” 선배라면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용기를 주실 것 같아요. 나이차이가 나더라도, 멀리 살더라도, 나눌 수 있는 생각과 삶이 있는 사람. 선배께 저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어요.

 

선배,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