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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친구에게] 직장 다니며 논과 밭 농사를 짓는 희주가

by 농민, 들 2018. 8. 1.

농촌 청년 여성들의 느슨하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는 연대를 꿈꾸는 작은 판농촌청년여성캠프그곳에 모였던 여성들은 논밭에서집에서사무실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그러다 캠프에서 만난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받고또 누군가에게 편지를 씁니다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농촌청년여성캠프] 



<제4회 농촌청년여성캠프 참가자>

직장 다니며 논과 밭 농사를 짓는 희주



다들 일상으로 잘 돌아갔나요?

저는 캠프 끝나고 집에 가서 하루 종일 누워있었어요. 더위에 많이 지쳤었나 봐요. 홍동에서 자연농 논농사 모임을 함께 하고 있는데, 6월에 모내기 하던 날에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 모내기를 하고나서는 그 다음날 탈이 나서는 하루 종일 누워있었거든요. 서울에서 생활 할 때는 햇빛 아래에서 오랫동안 있을 일이 없어서 아직 제 몸이 적응하지 못 했나 봐요. 그리고 캠프 내내 맛있는 것들이 많아서 욕심내서 먹었더니 그것도 몸이 힘들었나 봐요. 저는 욕심내서 먹으면 꼭 탈이 나요. 홍성에 오면서 욕심을 많이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욕심이 가득한 저를 반성했어요.


캠프 얘기를 잠깐하자면 식사와 설거지 당번이 있어서 좋았어요. 모두가 돌아가면서 하니까 내 차례가 아닐 때는 맘 편히 쉴 수 있었어요. 이전에 다른 캠프에 갔을 때는 한 분이 식사 준비를 도맡아서 하다보니까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거 같고 작은 일이라도 도와야 할 거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었거든요. 그리고 조금 아쉬웠던 점은 서로의 내밀한 얘기를 듣지 못 했다는 거예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한계는 있었겠지만, 조금 더 친밀해졌다면 보다 더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제가 예전에 농활캠프에 갔을 때, 서로의 등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듯이 상대에게 등으로 표현하는 걸 한 적이 있었는데 처음엔 정말 어색했는데 그걸 하고나서 갑자기 확 가까워진 느낌이 든 적이 있어요. 그리고 이거는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 친구랑 했던 것인데 잡지나 신문에서 나한테 와 닿는 단어·문장·그림·사진 등을 오려 붙여 놓고서 왜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를 설명하면서 친구의 생각도 들을 수 있었고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어요. 다음 번 캠프에서는 소소하게 이런 활동도 같이 하면 좋지 않을까 해요.


 

ⓒ희주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매일 학교로 출퇴근하고 있어요. 방학이라 학생들이 없어서 조용하지만 일은 끊임없이 있네요. 저는 서울에서 아주 작은 대학교를 다녔거든요. 건물이 몇 채 없었어요. 그래서 이곳에 와서 캠퍼스의 규모를 보고 놀랍고 부러웠어요. 나무도 정말 많고 곳곳에 쉴 수 있는 곳이 많거든요. 편의시설은 없지만 공간 자체가 넓어서 저는 좋은데 학생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사진은 제가 학교에서 제일 좋아하는 길이에요. 분명 학교인데 숲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 곳곳에 숨어있어요.

 

올해 초, 욕심 부려서 시작한 자연농 논농사 모임과 텃밭의 풀들 때문에 매일 걱정이에요. 논은 4줄을 하는 데 물을 대기 전에 1차 풀베기를 해야 한다고 해서 3줄은 지난 주 내내 퇴근하고 가서 풀베기를 했는데 마지막 한 줄은 포기했거든요. 그런데 물을 대고난 후에도 풀을 베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또 퇴근 하고 논으로 풀베기 하러 가야해요. 싫은 건 아닌데 벼보다 많은 풀들을 베고 있으면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희주


ⓒ희주

 

어제는 퇴근하고서 오랜만에 밭에 갔어요. 지난 주 내내 논 풀베기를 하느라 밭은 잘 못 갔거든요. 그랬더니 비도 안 왔었는데 그 사이에 풀들이 정말 많이 자랐더라고요. 정말 강인한 생명력이에요. 그래도 빨갛게 익은 토마토 3개를 처음 수확했어요. 다른 밭 보면 빨갛고 큰 토마토들이 많지만 우리 밭은 토마토도 천천히 자라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단 맛이 있고 껍질이 좀 질겨요. 그리고 처음부터 영 힘이 없던 고추는 이제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어요. 지난달에는 심은 적 없는 깻잎이 제일 잘 자랐는데 이번 달에는 오레가노가 제일 풍성하게 자라고 있어요. 같이 심었던 바질은 냄새만 풍기고 자라지 않더라고요.

 

ⓒ희주

 

그리고 옥수수는 2종류를 심었었는데요. 쥐눈이빨 옥수수랑 노랑팝콘 옥수수를 심었는데, 다른 밭에 비하면 아직 애기 수준이지만 그래도 제법 옥수수 같은 모습을 뽐내며 자라고 있어요. 밭에 심은 작물 중에 제일 걱정인 것은 고구마에요. 고구마는 주변에 풀이 있는 걸 싫어한다고 하는데 풀을 잘 못 베어 내서 고구마 순이 잘 뻗어나가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처음에 비하면 정말 많이 자랐어요. 고구마 심을 때 잘 못 심어서 비 맞아가면서 고구마를 전부 다 다시 심었었거든요. 그래서 심은 상태 그대로 변화가 없더니 그래도 이제는 잎과 줄기가 새로 나면서 조금씩 자라고 있어요.

 

지금 밭에는 농약도 비료도 아무것도 주지 않았거든요. 그게 땅과 작물에 좋은거지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작물들이 더디게 자라고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는 풀들을 보면서는 처음 시작했을 때 마음이 조금씩 흐려지더라고요. 어디서 비교하되 판단하지마라는 말을 듣고는 그래, 다른 밭하고 비교는 할 수 있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돌아다니면서 고구마 잎이 쑥쑥 자라서 다 덮은 밭들을 보면서는 또 그 다짐을 잃어버리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느리지만 죽지 않고 자라는 작물들을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고요.

 

저는 여기서도 서울에서처럼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훨씬 마음이 편해졌어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공간과 환경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분명한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아요. 여전히 이곳에서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걱정이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려고요. 아래는 <불안과 경쟁 없는 이곳에서>라는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인데 같이 나누고 싶어서요.

 

우리 모두는 마땅한 때, 마땅한 곳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발걸음을 내딛고 있으니까, 그렇게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마련이고 그에 따라 나아갈 길 역시 자연스레 펼쳐지게 되니까.”

 p.84, 불안과 경쟁없는 이곳에서, 강수희패트릭 라이든 함께 지음

PS. 서울로 돌아 간 이오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그리고 캠프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마지막에 해 주신 응원이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요즘 문득 여기서 내가 뭐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거든요, 감사해요: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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