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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친구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도 즐겁게 살 수 있길!

by 농민, 들 2018. 8. 7.

농촌 청년 여성들의 느슨하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는 연대를 꿈꾸는 작은 판농촌청년여성캠프그곳에 모였던 여성들은 논밭에서집에서사무실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그러다 캠프에서 만난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받고또 누군가에게 편지를 씁니다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농촌청년여성캠프] 



<제4회 농촌청년여성캠프 참가자>

이오


안녕하세요. 친구에게 쓰는 편지 그 2번째 이오입니다.

 

희주님의 편지 정말 반갑고읽는 내내 즐거웠어요찬찬히 얘기하는 걸 읽고 있자니희주님의 밭 한 가운데에 서있는 기분이 들더군요.

 

먼저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장곡에서 캠프를 마치고 연달아서 1주일간 여름휴가로 진도와 해남을 다녀왔고폭염경보 문자가 계속 들어오는 핸드폰을 던져두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신선놀음 하다 왔지요.


ⓒ 휴가 중 시원한 계곡


ⓒ 휴가 중 멋진 숲

 

신나는 휴가 덕분에 막상 캠프가 기억에서 멀리 사라질 때마다 우리가 함께 즐겁게 만들었던 간의의자를 숲속에서 꺼내놓고 술상(!)으로 활용했어요가볍고 부드러운 느낌이 좋아 어딜 가든 주안상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답니다.(선생님감사합니다뿌듯 뿌듯)

 

ⓒ 뿌듯뿌듯



사무실 동료가 보기에는 별 변화가 없어 보이겠지만저 딴에는 캠프 참가 전과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느끼고 있어요좀 더 고민의 깊이가 깊어지고 있달까사실 캠프 첫 날 저녁에 이런 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농사에 소질이 없는 사람들은 농촌에 살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죠벌레가 무섭고 예초기를 못쓰면 농촌에서 살면 안 되는 걸까농사에 타고난 체질이 아닌 사람들은 농촌에 살 자격이 없는 걸까좀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안 될 건 또 없지 않나뭐 그런 생각들...

 

그러다가 문득 우리사회는 뭔가를 뛰어나게 잘 하는 사람들 외에는 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숨죽여 숨어 지내야 할 것 같은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충 허술하면서도 즐겁게 사는 모습은 잘 허용이 되지 않는 분위기라는 생각그리고 농촌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어째 더 자신감이 없어졌고요.

 

실험이 용납되지 않는 세상에서개인은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저는 농촌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그래서 제게 잘 맞을지 모르겠지만 살아보고 싶거든요그런데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할 것 같으니아예 시도도 할 수 없는 건 좀 슬픈 것 같기도 해요저는 농촌이든 도시든 그냥 살아보고 결정할 수 있는잘 모르니까 가서 살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실패자라고 낙오자라고 낙인찍히지 않고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혹은 다른 데로 또 옮겨갈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좋겠어요서울 안에서 양천구에 살다가 마포구에 가서 산다고 내가 양천구에서 실패한 인생이라고 하지는 안잖아요;;; 외국에 이민 가서도 몇 년씩 살다가 안 맞으면 돌아오는 판에버스로 2시간이면 가는 곳에서 그게 안 될 건 또 뭐람.

 

생각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죠그런 점에서 희주님과 맹아님이 참 용감하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제가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감히 옮기지 못했던 일을 실행에 옮긴 멋진 여자들이니까 더 기대가 되고계속 얘기 듣고 싶어요.(물론 다른 분들도 다 뵙고 싶지요ㅎㅎ)

 

희주님 말처럼 이번 캠프에서 모두가 같이 한 활동에 비해우리 하나 하나 사이의 접점 만들기는 조금 부족했다고 저도 느껴요같이 방을 쓴 수박님설거지를 함께 했던 아롬님그 뜨거운 날 홍동 가이드가 되어준 맹아님문상 갔다가 얼떨결에 합류한 마고님멋모르고 좋은 데 간다고 따라온 뚱혜님... 이 밖에 같이 얘기를 많이 나눠보지 못한 분들이 아직 많은 것 같습니다계속해서 만나고 이야기 듣고이렇게 생각 주고받을 기회가 많이 있으면 좋겠네요아롬님이 말한 서울모임을 비롯해서 말이에요.

 

ⓒ 홍동 투어 중, 만화방



얼마 전 방송에서 우연히 아롬님을 보고 엄청 반가웠어요방송에서 말했던 반농반X라는 책을 마침 홍동 갔을 때 읽고 있었는데 그 얘기를 하셔서 더 반갑기도 했고요.

 

마지막으로 캠프를 위해 마음을 많이 쓴 들님과 해원님께그리고 의젓하게 엄마를 나누어준 우리님께도 특별히 감사드립니다이런 저런 생각을 뱉어내느라 좀 두서가 없지만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려요.

 

다음 편지는 맛있는 박하차를 나눠주신 서와님께 부탁드려요따로 많은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아쉬운데이런 기회를 빌어서 이야기 듣고 싶네요서와님의 여름 이야기 기대할게요.

 

더위에 몸 건강히마음은 더 건강히 지내시길또 만나요!

 

- 이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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