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청년 여성들의 느슨하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는 연대를 꿈꾸는 작은 판, 농촌청년여성캠프. 그곳에 모였던 여성들은 논밭에서, 집에서, 사무실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캠프에서 만난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받고, 또 누군가에게 편지를 씁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농촌청년여성캠프]
<제4회 농촌청년여성캠프 참가자>
이오
안녕하세요. 친구에게 쓰는 편지 그 2번째 이오입니다.
희주님의 편지 정말 반갑고, 읽는 내내 즐거웠어요. 찬찬히 얘기하는 걸 읽고 있자니, 희주님의 밭 한 가운데에 서있는 기분이 들더군요.
먼저,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장곡에서 캠프를 마치고 연달아서 1주일간 여름휴가로 진도와 해남을 다녀왔고, 폭염경보 문자가 계속 들어오는 핸드폰을 던져두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신선놀음 하다 왔지요.
ⓒ 휴가 중 시원한 계곡
ⓒ 휴가 중 멋진 숲
신나는 휴가 덕분에 막상 캠프가 기억에서 멀리 사라질 때마다 우리가 함께 즐겁게 만들었던 간의의자를 숲속에서 꺼내놓고 술상(!)으로 활용했어요. 가볍고 부드러운 느낌이 좋아 어딜 가든 주안상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답니다.(선생님, 감사합니다. 뿌듯 뿌듯)
ⓒ 뿌듯뿌듯
사무실 동료가 보기에는 별 변화가 없어 보이겠지만, 저 딴에는 캠프 참가 전과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느끼고 있어요. 좀 더 고민의 깊이가 깊어지고 있달까. 사실 캠프 첫 날 저녁에 이런 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농사에 소질이 없는 사람들은 농촌에 살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죠. 벌레가 무섭고 예초기를 못쓰면 농촌에서 살면 안 되는 걸까, 농사에 타고난 체질이 아닌 사람들은 농촌에 살 자격이 없는 걸까, 좀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안 될 건 또 없지 않나. 뭐 그런 생각들...
그러다가 문득 우리사회는 뭔가를 뛰어나게 잘 하는 사람들 외에는 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숨죽여 숨어 지내야 할 것 같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충 허술하면서도 즐겁게 사는 모습은 잘 허용이 되지 않는 분위기라는 생각, 그리고 농촌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째 더 자신감이 없어졌고요.
실험이 용납되지 않는 세상에서, 개인은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농촌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그래서 제게 잘 맞을지 모르겠지만 살아보고 싶거든요. 그런데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할 것 같으니, 아예 시도도 할 수 없는 건 좀 슬픈 것 같기도 해요. 저는 농촌이든 도시든 그냥 살아보고 결정할 수 있는, 잘 모르니까 가서 살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실패자라고 낙오자라고 낙인찍히지 않고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혹은 다른 데로 또 옮겨갈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좋겠어요. 서울 안에서 양천구에 살다가 마포구에 가서 산다고 내가 양천구에서 실패한 인생이라고 하지는 안잖아요;;; 외국에 이민 가서도 몇 년씩 살다가 안 맞으면 돌아오는 판에, 버스로 2시간이면 가는 곳에서 그게 안 될 건 또 뭐람.
생각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죠. 그런 점에서 희주님과 맹아님이 참 용감하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감히 옮기지 못했던 일을 실행에 옮긴 멋진 여자들이니까 더 기대가 되고, 계속 얘기 듣고 싶어요.(물론 다른 분들도 다 뵙고 싶지요ㅎㅎ)
희주님 말처럼 이번 캠프에서 모두가 같이 한 활동에 비해, 우리 하나 하나 사이의 접점 만들기는 조금 부족했다고 저도 느껴요. 같이 방을 쓴 수박님, 설거지를 함께 했던 아롬님, 그 뜨거운 날 홍동 가이드가 되어준 맹아님, 문상 갔다가 얼떨결에 합류한 마고님, 멋모르고 좋은 데 간다고 따라온 뚱혜님... 이 밖에 같이 얘기를 많이 나눠보지 못한 분들이 아직 많은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만나고 이야기 듣고, 이렇게 생각 주고받을 기회가 많이 있으면 좋겠네요. 아롬님이 말한 서울모임을 비롯해서 말이에요.
ⓒ 홍동 투어 중, 만화방
아, 얼마 전 방송에서 우연히 아롬님을 보고 엄청 반가웠어요. 방송에서 말했던 반농반X라는 책을 마침 홍동 갔을 때 읽고 있었는데 그 얘기를 하셔서 더 반갑기도 했고요.
마지막으로 캠프를 위해 마음을 많이 쓴 들님과 해원님께, 그리고 의젓하게 엄마를 나누어준 우리님께도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뱉어내느라 좀 두서가 없지만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려요.
다음 편지는 맛있는 박하차를 나눠주신 서와님께 부탁드려요. 따로 많은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아쉬운데, 이런 기회를 빌어서 이야기 듣고 싶네요. 서와님의 여름 이야기 기대할게요.
더위에 몸 건강히, 마음은 더 건강히 지내시길. 또 만나요!
- 이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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