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풀무에서 보내는 편지

쌀 수입 전면 개방에 대한 풀무 전공부 학생들의 입장

by 농민, 들 2014. 8. 31.

충남 홍성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환경농업전공부 재학생들이 지난 3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쌀 개방에 대한 공부모임을 한 뒤 <쌀 수입 전면 개방에 대한 풀무 전공부 학생들의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저널 농담 또한 정부의 일방적인 쌀 시장 개방 발표에 크나큰 우려를 표하며, 학생이자 소농인 풀무 전공부 학생들의 입장 글을 전합니다.<농저널 농담>

 


지난 718() 농업, 농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동필)는 쌀 관세화를 내년 1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쌀 관세화는 쌀에 관세를 매기면 얼마든지 쌀을 수입할 수 있는 제도로, 우리나라가 쌀 시장을 완전히 개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쌀 관세화 문제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에서 부터 출발합니다. UR을 통해 세계무역기구(WTO)가 세계 농산물 시장개방을 관장하게 되면서 농업시장 개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세계무역기구에서 한국은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아 쌀 관세화를 2004년까지 늦췄고, 이후에는 의무수입물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2014년까지 다시한번 10년간 쌀 관세화를 연기해왔습니다. 농식품부는 18일 쌀 관세화를 내년부터 시행한다고 밝히고, 9월까지 관세화율과 쌀 산업발전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동필 장관은 쌀 관세화가 불가피한 선택이며 향후 이뤄질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쌀 고 관세율을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농민단체들과 농민들은 이 같은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비판합니다. 쌀 관세화, 즉 고율관세를 매긴 쌀 개방은 기존에 맺어놓은 자유무역협정은 물론 향후 맺게 될 국제통상협약에 의해 유지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2014810일자 옥천신문 권오성 기자








정부가 내년 11일부터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이 선언은 농사를 짓는 농민과 쌀을 주식으로 삼는 시민과의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것이었다. 이는 정부가 쌀을 상품으로만 여기며, 고령화된 농촌에 남은 농민의 삶이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지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쌀시장의 전면 개방은 농부들과 초국적 농기업과의 경쟁을 부추긴다. 무한경쟁 속에서 농부들은 농지를 규모화하고, 농사 기술을 기계화하라는 압박을 끊임없이 받는다. 마침내 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게 되면, 농지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사람들은 농사의 소중함에 대해서 잊게 될 것이다.

 

이 선언을 듣고 난 이후의 우리 풀무 전공부 학생들의 심경은 실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함께 모여 살며 소규모로 농사를 지어 우리가 먹을 쌀과 채소들을 자급한다. 또 우리가 정성스레 키운 것들을 판매하면서 농부로서의 삶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우리는 농사를 배우고 농적 삶을 고민하는 학생들로서, 지금의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정부가 주장하는 식량안보를 우리는 믿지 않는다. 식량안보는 방식이야 어찌됐든 충분한 식량만 확보하면 된다는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이 자기 이익에 맞게 유전자 조작을 한 종자를 심어서 생산된 쌀, 엄청난 농약과 화학비료로 땅을 오염시키면서 생산된 쌀, 한정된 자원인 석유를 쓰고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면서 바다를 건너온 쌀도 먹을 수만 있다면 식량이 된다. 게다가 우리 정부는 핸드폰과 자동차, 통신장비를 전 세계에 많이 팔 수만 있다면 쌀은 수입해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우리는 쌀개방이 모든 이의 식량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식량주권은 다음과 같다.

 

식량주권은

첫째,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기본권이고

둘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이며

셋째,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매일 먹을 수 있는 권리이다.

넷째,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권리이고

다섯째, 생태계를 파괴하는 음식을 먹지 않을 권리이며

여섯째, 돈이 있건 없건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접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일곱째, 지역의 고유하고 독특한 종자로 길러낸 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권리이고

여덟째,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자기 지역에서 판매할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이 모든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세계무역시장의 상황과 관계없이 지역 먹거리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먹거리를 통제하려는 다국적 기업의 가축이 되지 않을 권리를 요구한다.(우리는 유전자조작식품을 먹고 싶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소농의 권리를 주장한다. 소농에겐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안전하게 지속가능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우리는 쌀을 지키는 일이 단순히 우리의 식량뿐만이 아니라 논에 깃들어 사는 사람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들의 삶터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나. 논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고 있다. 이들의 집인 논을 지키게 해 달라.

하나. 논이 주는 아름다움과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며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하나. 우리에게는 미래세대에게 비옥하고 생산적인 농지를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하나. 우리는 논에서 일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하나. 우리는 우리가 사는 지역의 기후에 맞는 쌀농사를 지으면서 농부로서 자립하고 싶다.

하나. 우리는 벼농사와 함께 전해지는 마을공동체 문화와 소중한 전통적 기술을 지키고 싶다.

 

우리는 소농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젊은 세대로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금의 현실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우리는 일상의 평화를 누리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농사를 지을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풀무 전공부 재학생 일동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