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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여행] 뜨내기가 정착하는 법 (8)

by 촌년 2014. 6. 11.

<농저널 농담> 박은빈


몽중설몽(夢中說夢)


여유로운 초저녁 도시 살이 풍경을 그려본다. 입이 심심한 게 뭐 먹을 거 없나 냉장고 문을 열지만 딱히 마땅한 게 없다. 방바닥은 따끈하고, 어스름한 방안 가운데 전등이 밝게 울고 있다. 창문 밖에 남의 집 불빛도 다닥다닥 붙어있다. 오늘 저녁은 새로 개업한 치킨집에서 갈릭치킨을 시켜먹어 봐야지. 지갑을 들쳐보니 텅텅. 아직 알바비가 들어오려면 일주일이나 남았구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쉰 김치 한 덩이를 꺼내 뭉텅 자르고 끓인다. 고춧가루가 매워 혀를 내두르며 물을 찾는데 삼다수 페트병에 한 모금 남짓 남아있는 게 전부다. 아이고.

어느새 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멀고도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브릿트마공동체(Brithdir mawr community)에서 지내는 요즘은 당연한 것들에 대해 몸으로 되물어가는 중이다. 


커다란 트랙터 대신 말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 

땅을 갈아엎고 무거운 나무기둥을 옮길 때마다 힘을 빌린다. ⓒ 박은빈


여기 세탁기는 풍력으로 돌아간다. 바람 좋은 날이 빨래하는 날이다. 10명 넘는 사람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전기는 집 옆 계곡에서 태어난다. 그마저도 거창한 수력발전기를 사다 들여 설치하지 않고 간단히 세탁기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뜨뜻한 물에 샤워는 한낮을 뜨겁게 달군 태양으로부터 선물 받는다. 흐린 날에는 나무가 제 몸을 태워 물을 데워준다. 밖에서 오는 정체모를 전기는 들이지 않는다. 안에서 스스로 생겨나는 만큼 만족스레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매일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 목욕하던 사람은 아주 가끔으로 줄여야 할 것이다. 빨래를 하려면 바람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전기세 많이 내고 말지 뭐. 하루 종일 틀어놓던 습관과도 안녕해야 한다. 

내게 물과 전기는 달마다 날라 오는 고지서로부터 오는 것들이었다. 돈만 있으면 되는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때 오는 당황을 기억해보니, 지난 날 서울 전역이 갑자기 정전되었을 때 껌껌한 식당에서 멀뚱히 30분 가까이 앉아있던 때가 생각난다. 태풍 메아린가 볼라벤인가 왔을 때도 아침마다 8명 정도 기다렸던 버스정류장에 80명 가까이 인파가 몰려들어 충격 받았던 때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다. 


매일 세 가지 당번이 있다. 이른 아침 염소젖을 짜고, 오후에는 모두가 먹을 빵을 굽고, 밭에서 갓 따온 재료로 저녁을 차릴 당번. 염소젖은 식구들의 유일한 우유가 되어주고, 화덕에 구워진 빵은 맛난 점심으로 먹는다. 부엌에 들어가기 앞서 오른편 구석 찬장 전체에 색색깔 병들이 놓여있다. 작년에 담은 토마토소스, 야채 피클, 잼, 각종 병조림이다. 25가지도 넘는 종류가 수 십 개씩 있다. 작년 겨울부터 오늘저녁까지 두고두고 요리에 쓰이는 요긴한 식량창고다.



매일 저녁식사시간이 기다려진다. 이번엔 또 어떤 채소로 나를 놀래 킬지! ⓒ 박은빈


매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즈음 모두 모여 뭘 먹고 싶은지 의논한다. 이름하야 작부회의. 다음 해 봄부터 무엇을 길러다 먹을지 정하는 시간이다. 여기서의 계획은 하루 한 끼 상추 조금 뜯어다 샐러드 먹는 정도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야말로 밭에서 기른 것만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냉장고도 없어 덕분에 늘 신선한 재료로 요리한다. 책장에는 너덜거리는 채소 요리책들과 20년 가까이 채식으로 단련해온 요리비법노트가 꽂혀있다. 과연 저녁식사 때마다 놀라운 응용요리를 맛본다. 토마토소스로 맛을 낸 수프는 알큰한 해장국이 틀림없었다. 각종 양념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콩 무침, 대파가 주인공이었던 요리는 경전의 한 구절처럼 와 닿았다. 

계절 따라 밥상 차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먹고 싶은 요리와 가지고 있는 재료는 늘 따로 노니까. 끼니마다 차려먹는 것만도 용하다. 밭에 보이는 퍼런 푸성귀들로만 밥을 하라니. 안 먹고 만다. 남의 일상에 끼어들어 살다보니 좋은 점은 꿈에서만 보던 게 눈을 떴는데도 사라지지 않고 하루 종일 나랑 살고 있다. 꿈이 아니다. 같은 지구에 한 인간이 살아가는 실재다. ‘이 사람들도 이렇게 사는데, 나라고 못 살겠어?’대범해지다가도 ‘내년에 토마토를 잘 길러서 소스로 담가먹어야지!’은근슬쩍 소박해진다. 




뜨내기가 정착하는 법


무릎길이가 채 못 되는 토마토들이 하우스에 줄줄이 심겨져있다. 이른 아침부터 먼저 나와 일하고 있는 토니 할아버지. 이 공동체에서 제일 연장자시다. 기댈 곳을 찾는 토마토에게 긴 줄을 매달아 길을 내주고 계신다. 날이 흐려 바깥바람은 서늘한 반면 하우스 안은 포근하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 앉아 곁가지 사이에 솟아난 작은 순을 따주었다. 요놈들 올 봄만 해도 아기손톱 같은 씨앗이었다. 모두 할아버지의 손길을 거친 씨앗들이다. 다들 줄기가 굵고 단단한 게 건강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제 가족들이 살았던 집이니만큼 마음 편안히 뿌리내리는가 보다. 

오래전 첫 해, 할아버지는 작고 붉은 체리토마토의 아련한 단맛을 그리며 받아놓았던 씨앗을 꺼내 흙에 묻었다. 다시금 만나보길 고대해보았지만 그 많은 토마토들 중 딱 한 그루만이 본래 역사를 이어받았다. 다음 해도 역시 대부분의 씨앗은 제각기 운명 따라 다 다른 모습으로 열매를 맺었다. 그럼에도 그 다음의 다음 해도 할아버지의 손길은 푹 익은 열매로 향했다. 언제나 아주 적은 수의 몇몇 그루만이 할아버지의 입 꼬리를 방긋 당겼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7~8년이 지나서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더 이상 그녀를 찾아 헤맬 필요 없이 심는 족족 붉은 그녀가 자라 열매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마침내 하우스 안엔 온통 그녀만이 서있었다. 


 한없이 작은 발자국이건만 묵묵히 길 따라 걸어간다.

(가운데 보이는 회색 지붕이 Brithdir mawr 공동체다.) ⓒ 박은빈


할아버지가 신나게 토마토 이야기를 하는 동안 문득 씨앗에게 감정이입하는 나를 보았다. 정착하지 못하고 뜨내기로 살던 지난날의 고충들이 생각났다. 신도림역을 지나쳐 서울 어디론가 향하고 있을 내 친구들도 떠올랐다. 7년 째 방황하던 씨앗이 하나의 존재로 고정되었다는 이야기가 머리카락마다 묻어 지워지지가 않는다. 7년 째 방황하던 인간도 그 자리에 뿌리내릴 수 있을까? 뭐라도 피워낼 수 있을까? 

정착과 떠돎. 젊은이가 벌써부터 시골에 들어가 사는 걸 기특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앞날이 창창한데 너무 일찍 무한한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거 아니냐며 아까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무수한 일들 중에 진짜 네 일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속삭이기도 한다. 두 저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혹은 비틀거리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오갔던가. 논 한 뙈기 줄맞춰 모 내는 농부에게 물어본다. 계절마다 길모퉁이에 피어나는 들꽃에게 물어본다. 울퉁불퉁하니 굳은살 박혀있는 농부의 손과 깊고 촘촘히 뻗어난 들꽃의 뿌리가 말해준다. 들리지 않지만 알 수 있다. 

붉은 토마토가 익는 날, 토니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잘 익은 녀석을 골라다 씨앗을 받을 것이다. 다음 해에는 그 다음 해를 위해. 다시 또 무릎만치 자란 녀석들을 조심스레 끌어다 줄에 엮어 길들이시겠지. 그때쯤이면 나도 외줄타기를 그만두고 저울 한 쪽에 살포시 앉겠지. 곧 저울은 가라앉아 나를 대지로 데려다줄 것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수많은 밤낮이 오간 후 저울은 그 사이 피어난 들꽃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이다. 씨앗 한 톨처럼 그 어느 날 첫 해처럼 뿌리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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