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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여행] 숨바꼭질 (7)

by 촌년 2014. 6. 1.

<농저널 농담> 박은빈

숨바꼭질 

1년을 계획하고 온 여행, 그중 6개월은 영국에서 지낸다. 엄마가 작년 봄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구글 번역기 돌리며 머물 장소를 물색한 덕분에 영국 스케줄은 모두 완료다. 600에 가까운 영국 우프(WWOOF) 호스트들 중에서 우리에게 알맞은 곳을 찾는데 가족들마다 입맛이 다양했다. 아빠는 흡연금지인 곳과 가축을 주로 기르는 곳은 꽝, 엄마는 숙소가 청결한 곳, 동생은 맛있는 걸 흡족히 먹을 수 있는 식사, 나는 농업을 하거나 교육을 하는 농장.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네 명이 한꺼번에 같이 지낼 공간이 없다는 답변만 줄줄이 날아왔다. 간혹 좋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엄마는 경쾌하고 끝이 약간 떨리는 높은 목소리로 작은 딸! 얼른 와봐!” 언어담당인 동생이 불려갔다. 엄마가 답장으로 보낼 내용을 한글로 적어놓으면 동생은 영어로 옮겨 적고 사전 쳐다보기를 왔다갔다. 혹시 철자가 틀리지는 않았나 한 번 더 확인하고는 당당히 의자를 박차고 자리를 떠났다. 끝내 밥상은 차려졌고, 다들 입맛이 까다로워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엄마가 고려해서 차려놓았겠거니 영국에 도착했다. 아빠는 첫판부터 브루더호프 기독교 공동체에서 베일에 쌓여있던 본인 흡연량에 한 땀도 못 미치는 담배 한 개비를 물어야 했다. 엄마는 핀챔스 농장에서 비온 뒤 온 동네를 휘젓고 부엌 식탁 아래서 낮잠 자는 개 두 마리와 한 집에서 살아야 했다. 운이 좋게 동생 녀석은 아쉬울 적마다 스스로 요리하여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제 내 차례구나.

난 언제쯤 농장에 도착할 수 있을까? 오늘로 여덟 번째 배낭을 꾸리고 짊어들었는데 아직도 라니 믿겨지지 않는다. ‘그동안 만나왔던 농촌과 농부, 그 농부가 디자인한 밭을 넘어 유럽 내 다양한 농장들, 올곧게 어쩌면 모나게 자신의 철학으로 밭을 일구는 소농들을 만나고 싶다고 여행기 첫 시작편에 그리 적었던 기억이 어슴푸레하다.


떠나는 날 인사해주던 하얀 문 ⓒ 박은빈

 

대문 옆에 대붕이가(이고 다니는 배낭들이 하도 무거워 이름을 붙였다.) 먼저 앉아 기다리고 있다. 아빠는 마지막으로 방을 구석마다 훑고 나서도 방문을 닫으며 내다볼 수 있는 만큼 작아지는 틈새를 응시한다. 대붕이를 호스트 할아버지 차에 먼저 나르고, 우리도 차례대로 허리 숙여 차 안으로 들어왔다. 달리는 차 안엔 그간에 정이 묻어난 공기로 가득 하다. 운전하는 할아버지 뒤통수에 꽂혀 흰머리 색을 감상하다 들판과 하늘로 나뉘는 창밖풍경을 쳐다본다. 날 좋은 바람이 얼굴에 부딪히니 . 또다시 떠나는구나.’ 동생이 다음 가는 곳은 뭐하는 데냐고 물었다. 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 둘이 지내시는 농장이라고 말하는데, 말 시작부터 미간에 삼지창이 그려진다. 정말 농장이냐고 되물었다. 그전에도 엄마는 분명히 농장에 간다고 말했었지만 난 농장에 가본 적이 없는 걸. 농장으로 둔갑한 정글이라면 기억이 난다. 체계적으로 작물을 생산하여 유통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마침 창문으로 나무판자에 참나무 농장이라 적힌 간판이 휙 하고 지나간다. 저렇게 번듯하게 농장이라고 써 붙인 곳이라면 주름마다 깊게 흙물 박힌 손으로 밭을 소개해주는 멋진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을까? 다음 길목에는 길 양쪽 기둥마다 간판이 걸려있다. 하나는 고동색 철판에 농부가 조각되어 있고, 하나는 꽃밭 그림 속에 농장이름이 들어있다. 걸어가던 길이라면 홀린 듯 표지판 따라 그리 흘러갈 텐데. 달리는 차안이라는 게 애석하다. 어라? 또 밖에 농장간판이 보인다. 이렇게 농장들이 많은데, 왜 아직 일이 끝나고도 밭에 남아 농부의 손길을 감상할 그런 농장은 만나지 못한 건지 의문이다.


덩그러니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박은빈

 

욕심도 많지. 대붕이가 정류장 의자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앉았다. 고마운 호스트 할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방향을 틀어 돌아가셨다. 해가 뜨겁다. 가만히 버스가 오는 쪽을 쳐다보는 우리들. 혹시나 여기가 아닌가 싶어 아빠는 반대편 정류장으로 뒷짐 지고 어슬렁어슬렁. 언덕 위로 버스 머리가 보이자 엄마가 어서 오라 소리친다. 그래도 버스는 아직 멀었는데 엄마는 늘 보통 반응에 네 배 크기로 발성한다.

버스기사아저씨들은 언제나 친절하다. 동생은 자리에 풀썩 앉아 잠에 들 채비를 한다. 다시 또 창밖의 파노라마가 시작되었다. 너른 들판에 소와 양들이 풀을 뜯는 풍경은 익숙해진지 오래. 이어서 입구마다 자기이름을 걸어놓은 농장들이 다시 눈에 띈다. 시선은 창밖 한 가운데 고정되어 생각들이 하나 둘 드리운다.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흔하디흔한 게 농장이다. 하지만 농장으로 찾아갈 수 있는 알림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서울 주요대학 합격했다고 마을마다 하얀 현수막은 펄럭이는데, 우리 아들이 농사짓기로 했다는 자랑은 함부로 못한다. 동네 할머니도 날 볼 적마다 퍼뜩 도로 서울 가서 돈 벌라고 혀를 끌끌 차셨다. 가끔 과수원 표지판이 보이지만, 손님들 잘 찾아오라고 전봇대마다 붙여놓은 전단지 같다. 늦은 밤까지 트럭 헤드라이트 불빛에 기대어 일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얼어 죽을 농장 간판 이겠냐만.

여기서는 시골길을 조금만 걷다가도 정갈하고 새침하리만큼 뽐내고 있는 농장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거기엔 농부의 손길과 세월의 흔적도 같이 있다. 무언가 이름을 붙인다는 건 그걸 어여삐 여긴다는 의미다. 오래전 농장이 태어났던 해에 마치 아이가 태어난 듯 온 동네에 기쁨을 함께 나누며 걸어놓았을 것이다.

 

벽을 오르는 포도나무와 칸마다 찬 채소들. 이게 어느 평범한 개인 가정집 텃밭이라니ⓒ 박은빈

 

아주 오래전부터 농장은 농산업을 통해 경제적 부산물들을 넉넉히 챙길 수 있어야만 내밀 수 있는 명칭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내가 머물었던 농장들은 농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과 전혀 관계없이 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만 스텐트우드 농장은 백 년 전부터 거슬러 농사지어온 집, 창고, 마구간과 대지에서 살고 있다는 걸 소중히 여겼다. 공동체 식구들이 먹을 만치 작물이 알아서 자라주는 대로 수확해 먹고, 아이들은 밭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때로는 온몸으로 흙과 놀며 배우고 있었다. 핀챔스 농장에서는 누구나 쉴 곳과 치유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찾아와 작은 밭일이라도 거들며 함께 지낼 수 있었다. 그밖에 농장이 아닌 다른 곳들에서도 어김없이 포크와 레이크가 우릴 맞이했다. 작은 텃밭에 올몽졸몽 키 작은 사과나무와 샐러드채소들, 줄타기 준비 중인 콩. 냉장고를 열면 서랍 하나가 씨앗으로 차있다. 농장이 아니라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농장은 농()의 장()이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찾을 수 있다니 더욱이 본래 뜻에 가깝다. 원한다면 누구나 표지판 따라 찾아갈 수 있다. 동네 아이들이 마당삼아 이랑 옆에 자리를 틀고, 목요일마다 오는 중학생 애들이 지난 주 심고 갔던 양배추 잎에서 애벌레를 떼어낸다면야. 작년에 고등학교 졸업한 누구는 이웃 농장을 대학으로 삼고, 서울에서 월급 받고 일하는 내 친구도 놀러와 밭 한가운데 평상에 훌러덩 들어 눕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 그러다 아예 눌러앉으면 더 좋고. 바라고 그린다.

어느새 버스는 작은 시골구석을 굽이굽이 돌다 이웃 마을을 연결하고 커다란 도시에 닿았다. 짧지만 굵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작은 미소를 내쉰다. “엄마! 다음 농장이 어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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