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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언니, 이거 알아?] 손수(手):영화 '리틀포레스트'

by 농민, 들 2017. 9. 28.

2차 청년여성농민캠프 참가자들의 공동 프로젝트. <언니, 이거 알아?>는 청년여성농민, 농촌에 사는 청년여성, 농업농민단체 청년여성 활동가 열 명이 서로에게 소개하고 싶은 콘텐츠를 이야기하는 연재 글입니다. 말하자면 청년여성농민의, 청년여성농민에 의한, 청년여성농민을 위한 콘텐츠. 이 연재는 3차 청년여성농민캠프가 열리기 전인 11월까지, 총 10회로 진행됩니다. [농저널 농담]



<청년여성농민캠프 참가자> 덜꽃



캠프를 다녀온 후 농사일로 정신없이 지냈다. 심고, 수확하고, 수확한 채소들은 포장해서 내보내고... 올핸 처음으로 직거래를 하게 되어 더욱 바뻤다. 돌아보니 어느새 산천지 단풍이 수줍게 알록달록 물들고 있었다. 이 글을 쓰기로 한 것도 한참을 잊고 지냈다. 급히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한참을 고민했지만, 생각이 나지 않기에 지난 청년여성농민캠프 때 문득 생각난 영화 한 편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사실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장면들이 잔상으로 남아 힘들어지기 때문에, 영화를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지인들의 적극 추천으로 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얼핏 보면 단순한 이 영화를 어떤 이들은 지루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푹 빠져서 보았다. 농사를 지으면서 경험하게 된 신비롭고 소중한 일들을 보며 감탄하고, 공감하며.



ⓒ 영화 리틀포레스트 포스터/ 리틀포레스트



일본 한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는 코모리라는 여자가 홀로 농사를 지으며 체득하는 농사일, 손수 키우고 만들어 먹는 먹거리, 코모리와 코모리 주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일상들에 대한 이야기. 다른 영화들처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진 않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해주는 영화였다.


눈을 감고 모든 감각에 귀 기울여 논물이 빠지고 있는 곳을 찾아낸 장면은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 감탄스러운 장면이었다. 코모리는 결국 물이 흐르는 소리를 찾아 구멍을 막아내는데, 마치 모든 감각과 자연이 하나가 된 것만 같아 신비로웠다.


나는 요즘 도시에서 삶은 모든 것과 단절된 느낌이었다면, 시골의 삶은 모든 것들과 단절되는 순간 힘들어진다는 걸 느끼며 산다. 이 영화에서도 가장 많이 나오는 먹거리를 자급하는 일과 인간관계를 맺는 장면들에서 내 모습이 보인다.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하는 영화라 할까.



ⓒ 영화 리틀포레스트



사실 과거 도시에서 살던 한 때는 음식을 해 먹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던가! 단절된 삶에서 나오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리틀포레스트에서는 먹거리를 통해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음을, 순환하는 것임을 멋지게 그려냈다. 글로 담기에는 넘치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나도 지금은 코모리처럼 농촌에서 살며, 손수 하는 일들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내손으로 요리하고, 내손으로 장맛을 내고, 내손으로 작물을 키우고, 내 손으로 작은 바느질도 해보며, 작은 손짓들의 즐거움과 과정의 중요함을 깨닫고 있다. 우리가 놓치고, 잊고 사는 일들을 지금이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늘도 보고, 맛도 보고, 자연도 살피고, 사람들을 살피며 그렇게 살고 있다. 솜씨가 좀 더 있었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코모리처럼 살길 바라며 귀농했지만 막상 지금의 삶은 꿈과 다소 멀어져 있다. 바쁘다는 일상으로 여유가 없을 때가 많지만, 아직도 궁금하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가득하다. 동네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산나물이나 버섯, 꽃 이름도 배우고 싶고, 동네 아주머니한테 맛난 장 담그는 방법, 요리 노하우도 배우고 싶다. 동네 어르신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엮어 이야기책을 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정신없는 농사일에 일상이 지겹게 느껴질 수 있지만, 허리를 피고 본 구름과 시원한 바람은 매일을 새롭게 한다. 하루하루가 쌓여 나의 역사가 이루어지듯이, 하루하루 내 솜씨가 늘어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일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손수.



ⓒ 영화 리틀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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