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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농촌페미니즘

[언니 이거알아?]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누구나 꿈꾸는 나라’ 유토피아

by 농민, 들 2017. 11. 13.

2차 청년여성농민캠프 참가자들의 공동 프로젝트. <언니, 이거 알아?>는 청년여성농민, 농촌에 사는 청년여성, 농업농민단체 청년여성 활동가 열 명이 서로에게 소개하고 싶은 콘텐츠를 이야기하는 연재 글입니다. 말하자면 청년여성농민의, 청년여성농민에 의한, 청년여성농민을 위한 콘텐츠. 이 연재는 3차 청년여성농민캠프가 열리기 전인 11월까지, 총 10회로 진행됩니다. [농저널 농담]



<청년여성농민캠프 참가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조직국장> 정원



요즘 ‘김생민의 영수증’이 인기있는 팟캐스트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의 한두 달 영수증을 받아서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그레잇’과 ‘스튜핏’으로 평가를 해줍니다. 개인 재정운영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김생민이라는 사람의 여러 가지 일화와 어울러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가끔 듣다보면 돈으로 사람의 삶이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생활은 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미 500년도 전에 이런 세상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꿰뚫어보고, 이상적인 세상을 소설로 그린 사람이 있습니다. 영국의 변호사 토머스 모어입니다. 이 소설의 제목이 <유토피아>입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유토피아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이번 가을에 드디어 <유토피아>를 읽고 놀라움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토마스 모어가 보여 준 당시의 영국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었습니다. 유토피아가 단순히 그려진 상상의 나라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영국,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깊은 철학적 성찰에서 그려진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모어는 “진실하고 충직한 신하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혼과 양심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헨리8세의 부당한 이혼요구와 로마교황을 배척하고 영국 종교의 수장으로 인정되는 과정에 동의하지 않아 반란죄인으로 단두대에서 생을 마쳤다는 사실에서도 토마스 모어의 삶과 철학 깊이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로마교황청은 400년이 지난 후에 그를 성인으로 인정했다고 하네요.



토마스 모어(1478.2.7~1535.7.6)  



“사유재산이 있는 곳, 그리고 돈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곳에서는 나라가 정의롭고 번성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장으로 이 문장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하던 그 시절, 양이 사람을 땅에서 쫓아내던 그 시절에 어쩌면 자본주의의 모순을 가장 간결하고 명확하게 드러내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되는지에 대한 토마스 모어의 해설을 ‘유토피아’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그리고 유토피아에서 살다 온 사람의 입을 빌어 대화형식으로 쓴 이 책속에서 모어는 영국의 현실비판과 함께 유토피아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게 되는지를 매우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농민운동을 하는 나의 입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내용은 모어가 그린 농업과 농촌, 먹거리 정책이었습니다. 평소에 교육과정에 최소한 한 달 이상 모든 학생이 농촌에서 생활하며 농사를 지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내 의견이 큰 지지를 받은 느낌입니다. 모어가 그린 농업과 농촌은 단순히 농촌만 있지 않습니다. 한 사회 구성원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고 부족할 경우 무조건 문제가 되는 것이 식량입니다. 모어는 그래서 이 문제를 농촌에만 맡기지 않고, 농민들만 책임을 지게 하지 않고 전 사회적인 구조를 통해 해결합니다.


유토피아에서 모든 사람들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등분하여 그 중 6시간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지적활동, 오락,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여덟 시간은 잠을 잔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 중 많이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정치, 교육, 여행, 의료, 결혼, 종교, 군사 등 한 사회가 갖춰야 할 모든 문제에 대해 서술되어 있습니다. 전쟁포로나 범죄자, 외국에서 온 자발적 노동자를 노예라 명명하고 있는데, 특히 잘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저지른 자국민에 대해 엄격하게 대한다는 내용도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범죄자를 가혹하게 대하는 당시 영국의 사회상에 대한 비판과 함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사회에서 필요한 일을 강제로 하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칠 기회를 준다는 상상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조금씩 유토피아를 닮은 사회를 만들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토피아를 ‘어디에도 없는 나라’라고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조금씩 유토피아를 닮은 사회를 만들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해온 사람들의 꿈이 지금은 다양한 날것으로 현실이 되었듯이, 먼 곳의 사람과 대화하는 꿈이 현실이 된 것처럼, 우주를 탐험하는 것이 상상속의 꿈만은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는 현재를 보면서 사람의 상상, 사람의 꿈이 가진 힘을 생각해봅니다.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는 세계 곳곳에서 시도되고, 실현되고 있기도 합니다.

500년 전의 책이 지금도 읽히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을 구체적으로 그린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고, 많은 사람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이전의 많은 철학자와 혁명가,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읽고 더 많은 상상과 꿈을 꾸었던 것처럼요.


가을의 끝자락에서 잎사귀를 물들인 나무들을 보면서 저 잎사귀들을 떨어뜨리고 새 봄을 맞이할 나무들처럼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모순을 떨어뜨려버리고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을 꿈꿔봅니다. 만추(晩秋)에 여러분도 500년 전 토마스 모어가 꿈 꾼 세상을 만나보세요.


여러분이 상상하고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요?


PS. 많은 번역본이 있지만 『서해문집』 출판사의 서해클래시 시리즈 중 ‘유토피아’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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