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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가족, 촌스러운 여행 (3)

by 농민, 들 2014. 4. 7.

2014년 2월, 가족들과 유럽 시골마을로 일명 촌스러운 여행을 떠난 박은빈의 기록입니다. 박은빈과 그녀의 가족이 유럽여행 중 만나는 다양한 농촌과 농업 협태를 전합니다. 매달 첫째, 셋째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농저널 농담]

 

<농저널 농담> 박은빈



<글을 나누기에 앞서 오래된 공동체의 역사와 흐름 가운데 저희 가족이 머문 기간은 그에 비해 2주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음을 밝힙니다. 전반적인 공동체의 분위기를 적었을지라도 아주 단편적이고도 개인적인 사유임을 한 번 더 유념해주시길 바랍니다. 보다 자세히 공동체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들은 출판사 <쟁기> http://www.plough.com/에서 브루더호프 관련한 여러 책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는 영국 남동부 쪽에 위치한 브루더호프 공동체(Bruderhof)이다. 1920년대 독일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초대 기독교인들의 단순하고도 소박한 삶을 올곧게 실천해오고 있는 곳이다. 우리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브루더호프 공동체 중에서도 다벨(Davell)이란 곳에 머물고 있다. 작은 간이역 건너편 길을 따라 오래된 나무들과 낮은 들판을 지나 이곳에 도착했다. 300여명의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저녁식사 이후, 다들 손을 건네며 잘 왔어요!” 따뜻한 말을 건넨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대에 어찌할 바 모르는 내 볼때기만 움찔움찔.

 

이른 아침부터 지글지글 베이컨 굽는 냄새와 아이들의 우당탕탕 뛰어다니는 소리가 내가 어디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알려준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와 밖을 보니 어떤 아이는 아빠 손을 잡고, 어떤 아이들은 나무 수레를 타고 공동체 안 자그마한 학교로 향하고 있다. 어른들도 그 날에 맡은 일을 하러 각자의 자리로 향한다. 아빠를 포함한 남성들은 아이들 학교가 끝나는 시간 전까지 주로 공장에서 일을 한다. 어두운 배경에 기계들이 가득하고, 백열등 전구가 듬성듬성 빛을 내고 있는 공장과는 아주 다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어울려 종종 흥얼거리는 노래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나무 장난감들을 만든다. 엄마는 공동체 전 구성원의 빨래를 돕는다. 가지런히 개켜있는 빨래 옆에 넓은 창이 있는데, 거기서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참 좋다. 동생은 또래 친구들과 주방에서 감자를 깎거나 설거지를 하며 점심준비를 한다. 난 주방에 잠시 있다가 식당을 청소하고 식탁을 차린다.


 

 

  2월 18일. 여전히 비가 내리는 겨울이다. 다벨에서 만난 새소리는 굉장히 크고 선명했다. ⓒ 박은빈

 

 

예배를 드릴 때에는 당연히 울려야만 할 것 같은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신 자연스레 온 목소리가 다양한 화음으로 어우러져 울린다. 한 노래가 끝나면 누군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제 목소리로 먼저 시작한다. 한마디 앞선 시작과 동시에 다시 또 웅장한 합창이 시작된다. 그 진동이 몸에 닿을 때마다 지르르 떨리는데, 어떤 날은 눈물까지 떨구게 된다. 함께 노래하는 그들의 모습은 참 비슷하다. 여성들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긴 치마를 입고 있고, 남성들은 청바지에 단정한 남방을 입고 있다. 색깔과 무늬만 조금씩 다르지 모두가 공동체 구성원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17세 박은빈


지금보다 내가 한창 더 어여뻤을 적에 어쩌다 들어간 고등학교가 농업고등기술학교였다. 어쩌다 치고는 지금까지 삶의 수레바퀴 한 가운데 늘 자리하는 곳이다. 1958년 기독교 무교회 신앙을 바탕으로 세워진 이 학교는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농촌을 이해하고, 지역에 뿌리내리는 농민과 평민을 길러내고자 한다. 세련된 간판도 없고, 졸업장도 주지 않는데다가 직업을 가질 때에도 도리어 편한 곳보다 되도록 힘든 곳을 택하라고 말한다. 지금도 여전히 시골 변두리에 80여명의 식구들이 인문과 농사를 배우며 작은 공간에서 엎치락뒤치락 함께 살고 있다.

 

사춘기 박은빈은 뾰족한 눈매의 센케(센 척하는 캐릭터)였다. 또래들과 3년 간 같은 집에서 살고,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도 보고 또 봐야하는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누군가 시키니까 청소를 하고, 공부하는 범생이들과 선도부 애들을 비아냥거리던 옛 일상이 거꾸로 뒤집혔다. 누구 하나 특별한 지위를 갖지 않고, 모두들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가지고 스스로 학교 살림을 도맡았다. 농촌은 돈 못 벌고 실패한 사람들이 사는 후진 동네라 여겼는데, 그런 내가 노을 질 무렵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꽃이 무성한 시골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밤에는 학교 옥상에 올라가 누가 별똥별을 많이 봤는지 내기 하고, 여름 날 시원한 비 맞으며 맨발에 땅 딛고 삽질하며 한바탕 웃곤 했다.

 

다벨에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큰 건 4, 작은 건 2칸씩 화장지를 사용하자는 귀퉁이 쪽 글이 생각났다. 일 중간에 잠시 한 자리에 모여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곤 다시 또 공동을 위한 기도와 일을 시작하는 이곳 사람들을 볼 때면, 치열하게 함께 살기를 온몸으로 공부했던 그때 기억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고등학교 3년이란 시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졸업하는 우리들은 학교에서 배움은 다시 인생에서의 배움으로 이어지며, 계속 시작된다는 창업생으로 불린다만. 그런 우리들은 지금 각기 다른 세상에서 다른 틀을 가지고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 삶은 한 개인의 온 일생이 펼쳐진다. 그 안에서 배우고, 일하고, 아파하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더욱 견고하고 찬란하다.

 


 


내일 뭐해?


우리는 내일이 궁금하다. 정확히 말하면 주말이 궁금하다. 평일 내내 먹고 살기 위해 모든 걸 소진시키며 주말만을 기다린다. 나도 다벨에서 일주일 한 바퀴를 돌고나니 주말이 몹시 기다려졌다. 같이 자고, 같이 일하고, 같이 예배드리고, 또 같이 밥 먹고, 다시 일하고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도 못다 한 이야기를 같이 나눈다면? 아마 그 누구도 딱딱하게 굳은 어깨를 풀어줄 여백이 필요할 것이다. 내내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사방에서 접근해올 때마다 으레 두리번거리며 인사를 반복했다. 이젠 앞을 응시하고 한 목소리를 꽤 오랜 시간 들으며 수다를 풀어놓고 싶었다. 그래서 물었다.

 

 

방안에서 내다본 다벨의 풍경. 룸메이트들은 모두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 박은빈

 


코젯, 주말에 뭐해?” “몰라.” . 모른단다. 그래! 누군가는 아직 주말 계획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 “코젯, 주말에 나랑 놀자.” “좋지. 근데 시간이 어떻게 될 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렇구나. 코젯은 바쁜 여자구나. 그렇다면! “아델라, 주말에 나랑 놀자!” “미안, 주말에 뭘 할지 확실하지 않아서 대답해주기가 어려워.” 이번에도 거부당했다. “말렌다! 주말에 뭐해?” “글쎄, 나도 모르겠어.” 마지막으로 마야에게 물어보았지만 역시나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난 내 방으로 돌아와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랑 놀고 싶지 않은가봐.’ 내 어깨는 한층 더 움츠러들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두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모른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어떻게 보낼지 모른다는 건 너무나 비자발적인 태도였다. 하지만 며칠 후 나는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여느 날처럼 잠시 쉬는 시간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해가 따뜻하게 온 마을을 밝히고, 그 사이로 빗줄기가 닿아 온통 반짝거리고 있었다. 대부분 방금 전에 무지개 두 쌍이 한꺼번에 떴다며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웅성웅성 나누던 중이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너도 봤냐며 물어 왔고, 처음 인사를 나눈 터라 이어서 내 소개를 했다. 미국인 아주머니는 원래 미국에 있는 브루더호프에서 오랫동안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전, 영국 다벨로 옮기라는 소리를 듣고 온 가족이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갑자기 오게 된 경위가 몹시 궁금했다. 누가 가라고 하는 거지? 아주머니는 그저 가라고 해서 왔다고 말했다. 안양에서 구로로 이사 가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영국으로 온 가족의 삶터가 뒤바뀌는 일이다. 그럼 다시 미국 공동체로 돌아 갈 거냐고 물어보니 웃으며 하는 말. “We don't know tomorrow."

 

내가 본 그들은 의지 없이 수동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노인들의 발걸음이 경쾌하고, 매일 화장실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의 노래 소리가 흥겨울 수 없다. 가던 길 잠시 멈추고, 하늘에 흐르는 구름이 어떤지 햇살이 얼마나 따스한지 올려다 볼 여유를 가질 수 없다. 브루더호프 사람들은 신의 뜻 안에서 공동체 모두가 함께 필요를 이야기하고, 기다리고, 결정한다. 되어지는 대로 오는 대로 기꺼이 받아드리고자 한다. 모든 것이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낮은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작은 한 사람 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 갑작스레 아주 좁은 방으로 이사 가게 된 어느 할머니 얼굴도 변함없이 깊은 미소를 띄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숱한 나약한 인간들에게는 무한한 거리감이 느껴지리만큼 그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내일 일을 모르는 우리들은 내일이 오기도 전에 이미 다음 날 전철을 타고 학교를 향해, 직장을 향해 가고 있다. 나도 이제 막 여행을 시작했으면서, 여행 후 정해지지 않은 삶터와 일터를 가지고 불안해하고 있다. 불안해하는 사이에 무지개와 새소리는 지나가 버리고 만다. 오늘은 문을 활짝 열어둬야겠다. 다가올 일들이 주는 바람을 실컷 들여 마셔야지!

 



 

진로상담


공동체의 오래되고 오래된 세월을 느낄 수 있었던 건 건 책이나 말이 아닌 사람을 보고서였다. 여기엔 갓난아이부터 다양한 연령대에 아이들이 참 많다. 모두 부모와의 인연으로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나와 나이가 같은 한 친구도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가족들이 공동체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문득 아침마다 부엌에서 같이 설거지 하던 내 또래들이 눈앞에 스르르 지나간다. 이 친구들은 어쩌자고 이 나이에 이 벅찬 삶을 선택한 것일까.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하여 다른 선택은 할 수 없었던 걸까? 울타리 너머 세상 밖에서 사는 꿈을 꿔본 적은 없었을까?

 

모든 아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자라나 스무 살이 되기 한 두 해 전에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떠날 것인지 머무를 것인지. 선택과 동시에 그 아이는 온전히 그 선택에 책임을 가진다. 많은 친구들이 부모와 집을 떠나 세계 곳곳에 있는 다른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살아간다. 같은 브루더호프라고 해도 지역마다 다른 문화와 생활을 가지기에 홀로서기 충분한 시간일 것이다. 이마저도 부족하다 여기는 다른 친구들은 아예 공동체 밖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거나 만나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을 만난다. 그러다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기도 한다. 마치 돌아오기 위해 떠난 여행처럼.

 

한 친구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공동체를 떠나 혼자 도시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 그때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정신없이 바쁘거나, 어두운 표정으로 늘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어. 나도 점점 그 모습을 닮아갔고, 결국 모든 게 허무해지더라고.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공동체에서 듣고 자랐던 하나님 나라에 대해 진정으로 알고 싶어져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어.

그동안 공동체에서 자라오고 그 틀에 맞춰 살아왔어도 내 인생에 중심은 공동체가 아니야. 나조차도 내 인생에 중심이 될 수 없어. 하나님을 가장 중심에 두고, 내 인생을 통해 보여주시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며 살고 싶어. 물론 쉽지 않아.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해. 아마도 우리들은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여기면서부터 아프기 시작한다는 걸.”


 

 

다벨에 있는 코끼리 측백나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지트이자 놀이터다. ⓒ 박은빈

 


검은 하늘에 존재의 신호가 또 다른 형태로 반짝이고 있다. 벌건 벽난로를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앉아 젊은 친구들끼리 수다가 시작된다. 모두들 성경책을 펴놓고 구절마다 그때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 진지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잠시 침묵이 머무는 동안에는 성경책 넘기는 소리와 함께 반대편에서 누군가의 배가 꼬르륵 하고 울릴 뿐이다. 모임을 마치고는 공동체 집집마다 그들만이 부를 수 있는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고 살금살금 다음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숨 쉬듯 밤바람에 흘러가는 노래 소리였다. 그동안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삶을 살아왔던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동생은 어김없이 태블릿을 손에 쥐고 이불 위에 드러눕는다. “인터넷만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 우리 오빠들 콘서트한다고 했는데! 정보 뜨고 난리 났을 텐데. ~ 정말.” 동생의 한 마디 덕분에 곧장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아까 보니 모임시간동안 머리를 앞뒤로 까딱이며 잠을 청하던데, 과연 그 아름다웠던 시간보다 인터넷을 더 아름답게 여기는 친구다. 19살 내 동생. 잘만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다는 게 아직 믿기지 않나보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시내에 있는 유명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2년 간 대학입시를 위한 내신관리와 아이돌 덕질의 조화를 이룩하였지만, 여행을 선택한 이후 앞이 더 깜깜해졌다. “언니! 나 중졸이다? 어떡하지?”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녀석은 고삼생활이 꽤 두려운가보다. “이제 곧 모의고사인데, . 내 친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눈에 선명하게 그려져. 야자 밤 1130분에 끝나서 집에 오면 새벽 12시 넘지. 그리고 아침에 일찍 학교 와야 하니까 집에서는 정말 잠만 자. 근데 시험이 다가오면 올수록 불안하니까 잠도 잘 안 온대. 그렇게 11개월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봐. 그건 정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시선마저 발아래 고정되었다. 나야말로 어떡하지? 고민하는 동생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하지?

 

동생은 한 시골 동네에서 쭉 자라왔다. 여태껏 같은 동네 친구들과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며 자란 녀석이다. 난 초등학교 전학만 3번을 해서 그때 누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말이다. 오래된 동네 친구 하나가 10년 전 여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다는 게 얼마나 부러운지! 누군가 부럽다고 말해도 동생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사실이라 그게 왜?” 되려 질문이 돌아온다. 우린 같은 돌림이름을 쓰는 자매이지만,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살아온 습관과 시각이 다르다.

반이나 전교에서 1~2등 하는 애들은 어렸을 적부터 부모가 온갖 과외며 학원을 다녀서 기초가 튼튼하다는 말을 들어봤는가? 촌구석에서 살아온 동생이 한 맺힌 목소리로 말했다. 겨우 졸라서 하던 과외마저 도중에 그만두게 되었다고 툴툴거린다. 소농과 목사의 딸내미인지라 우리 집엔 돈이 없다고 툴툴. 다 길이 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엄마가 밉다고 툴툴. 완전 방임이나 마찬가지라고 툴툴. 자신에게 주는 도움은 모두 추상적인 것들뿐이어서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게 주된 입장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 얼굴이 스산하게 굳어간다. 왜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지? 결국 모든 건 자신의 몫이다. 밖으로 모든 탓을 돌리고 나는 불쌍하다는 식의 이야기는 최악이다. 나는 그저 올라오는 화를 참으며 입술을 깨문다. 안에서 껑충껑충 뛰던 화가 이내 곧 벌건 덩어리로 가라앉는데 마음이 아프다. 나도 동생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걸. 주제만 다를 뿐이지 탓하는 마음은 똑같다. 동생에게 홀가분한 도움하나 주지 못하는 내 꼴도 슬프다. 우린 서로 다른 나라에서 평행을 이루며 살아왔지만, 더는 멀어지고 싶지 않다. 작은 점으로라도 닿고 싶다.

대학에 꼭 가지 않아도 되고, 수능을 꼭 보지 않아도 돼. 그보다 네가 어떤 존재이고, 어디에서 무얼 할 때 살아있는지 들여다 봐. 그렇게 계속 살아 숨 쉬면 되는 거야.’라는 말도 추상적이기만 할 뿐이다. 두려움은 그보다 훨씬 거대하기에 보다 그럴듯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봐봐. 정치며 교육이며. 지금 너를 두렵게 만든 게 바로 그놈들이야.’ 자칫 사실을 넘어 모든 걸 분노로 삼게 하고 싶지는 않다. 손에 들고 있던 컵에 물은 다 마시고 없는데, 그 자리에 대신 생각이 들어찼는지 꽤 무겁다.


 

 

다벨을 떠나며 그간의 추억들과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렸다.

오래되고 가득 차있음과 동시에 늘 열려있는 곳이었다. 고마운 다벨.ⓒ 박은빈  

 


언니! 근데, 다벨에 있는 애들 말이야. 얘들은 핸드폰도 안 쓰고, 컴퓨터도 안 하고 살잖아. 처음에는 평생 여기 사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오늘 룸메이트랑 점심 먹고 산책하면서 이야기 나누다가 충격 받았어.” 동생 녀석은 정확히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내 또래 애들은 아무것도 몰라서 여기 살고 있는 게 아니야. 다른 삶도 알고 있어. 자기가 선택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 아무런 미디어 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거래.” 동생의 저울추가 조금씩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행기들 읽어 보면 다들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고들 말하잖아.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 정말 많다? 도대체 나는 무얼 깨닫게 될지 정말 궁금해. 나는 어떤 새로운 나를 찾게 되려나. 내 삶도 달라질까?” 그러게. 우리 넷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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