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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가족, 촌스러운 여행 (6)

by 농민, 들 2014. 5. 17.

<농저널 농담> 박은빈

 

배달되나요?

 

한국에 두고 온 게 많다. 자주 치던 악보를 동네 헌책방 검붉은 피아노 위에 두고 왔다. 여름 바람에 날아간 내 빨간 장화는 숲속 어딘가 굴러다니고 있을 텐데, 옆집 할머니에게 떠난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작년 늦가을에 추운 겨울 잘 견디라고 밭이랑마다 덮어준 볏짚이며, 아침마다 자전거로 지나다니던 벚꽃 길도 모두 놓고 왔다.

 

3년 전 전화 한 통화 받고 무작정 홍성 가는 기차를 탔다. 역에서 홍동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둘레둘레 돌아 도착한 겨울 밭은 그 후로 내게 고향이 되어주었다. 엄마는 돈도 얼마 못 받는데 먹고 살 수 있겠냐고 전화기 너머로 물어보았지만, 난 내가 알아서 잘 살 거라고 전화를 뚝, 그동안 받던 용돈도 뚝 끊었다. 자주 심심한 밤에 초가집에 혼자 앉아 눈만 껌뻑이느라 괴로웠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로망이었던 농사를 입으로 짓다가 내 일로 삼으니 그까지건 꿀꺽 삼켜낼 수 있었다. 고 말하자니 좀 찔리네. 얼마나 울퉁불퉁 하루 한 주를 살았는지 모르겠다. 질척이며 건넌 길을 돌아보면 신발과 종아리 뒤로 온갖 흔적들이 굳어 남아있지 않나. 아주 어렸을 적 흙탕물 찾아다니며 철퍽철퍽 튀기고 놀았던 그때처럼 좀처럼 떠나기 싫은 길이었다.

 

혼자였다면 여태껏 그래왔듯이 여긴 내게 맞는 곳이 아닐지도 몰라, 지금 나에겐 다른 게 필요하다며 금방 떠났을지 모른다. 도시촌년 시골살이 안내해주랴 싸움 상대해주랴 나 때문에 폭삭 늙은 형, 저만치 남은 삽질이 까마득해질 때면 달큰한 포도효소를 타와 주는 언니, 깜빡하고 놓친 일들을 살포시 뒷정리해주는 작은 언니, 밭일을 놀이로 만들어 한참을 웃게 만드는 친구. 해가 뜨고 지는 모든 날에 우린 밭에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여름에 아이스크림 던져놓고 도망가는 마을 분. 공휴일마다 집에 가져가라고 한 주머니 챙겨주시는 빵집 언니. “일 그만하고 쉬었다 해!!” 언덕 너머에서부터 동네 학교 선생님 걱정소리도 듣는다. 책 읽으라고 편지 끼워 선물해주시는 동네 출판사 사장님도 계신다.

어서 돌아가 잘 다녀왔습니다꾸벅 인사드리고 밭으로 달려가고 싶다.

 

 

 

 

 

사진은 작년 밭을 떠날 무렵이다. 이랑도 내 맘도 텅 비었던 그때. ⓒ 박푸른들

 

 

지금 나는 연극을 보고 있다. 배경은 영국 어딘가 시골이고 동양인은 나와 우리가족 뿐이다. 2~3주 꼴로 장소가 달라지며, 그때마다 만나는 서양인들의 대사는 똑같다. 영국에 처음 왔느냐, 그동안은 어디서 머물렀느냐, 다른 나라도 갈 예정이냐,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냐 죄다 똑같은 질문들이다.

 

이내 연극이 지루해지면, 나는 조용한 공간을 찾아 노트북 화면을 열어젖히고 익숙한 것들을 불어온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글을 훑어보며 꽤 진지한 척 고개를 끄덕인다. 풀린 눈으로 맞은 편 창문을 쳐다보니 해가 어둠속으로 숨었다. 대신 밝은 조명이 쏟아지고, 사람들이 동그랗게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연극은 계속된다. 나는 그저 양다리 곧게 붙이고 서서 지켜볼 뿐이다. 대화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오지만 곧장 반대편 귀로 흘러나간다. 기분이 좀 좋은 날에는 내가 먼저 대사를 시작하기도 한다. 그래봤자 관객이 객석에서 외치는 단 한마디. 가끔 부엌에서 양파를 써는 엑스트라가 되기도 하지만 눈만 맵지 하나도 재미가 없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게 빤히 보이는 실제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관객이 되어 어둠속으로 숨어든다. 똑같은 대화만 반복하다가 우린 또 새로운 목적지로 떠나겠지. 손톱이 검게 그을릴 때까지 밭을 가꾸다가도 떠나고 나면 그네들이 어떻게 자랐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겠지. 난 어서 나무를 심고 그 나무가 통통한 열매를 내밀 때까지, 굵은 가지마다 더해지는 마디처럼 같이 살고 싶은데, 여행은 그런 내 바람을 뎅강 잘라버린다. 나는 뭘 할 수 있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불투명함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모르겠다.

 

방에 혼자 쳐 박혀 지난 일기장을 뒤적이니 젊음을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는 문장이 뜨겁게 일렁인다. 내년에 한국에 돌아가면 라즈베리를 꼭 심어야지, 내년에 밭으로 돌아가면 아이들 밭은 이쪽으로 옮겨야지, 내년에, 내년에, 모두 나중을 겨냥한 말들로 빼곡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들고 나가는 숨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흩어져버린다. 일이 끝난 늦은 오후마다 주어지는 공백은 자유보다 초조다. 영화를 보거나 조율 안 된 피아노를 두들기며 애써 밀려오는 혼란을 덮어둔다. 나는 왜 여행에 온 걸까? 왜 떠나기를 선택한 걸까? 여행을 떠난 지 석 달이 지났는데도 난 아직 준비가 덜 된 모양이다.

 

 

 

비트가 준 교훈

 

6살 때였나. 동화책에서 다종다양한 인종이 지구를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서있는 그림을 보았었다. 그리고 스텐트우드 농장(Stentwood Farm)에서 머물게 된 이래로 매일 그 그림이 스스로 일어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걸 보고 있다. 스텐트우드 농장은 40여명의 식구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이다. 12지파(Twelvetribes)라는 국제적인 기독교 공동체이기도 한데, 1970년대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이 공동체는 15년 전에서야 영국에 자리를 잡았다. 옷차림과 하루 생활, 안식일 등을 포함하여 성경말씀 그대로 살기를 실천하는 그들이다. 지역에서는 농장보다는 빵집(Common loaf Bakery)으로 유명하다. 고급 유기농 재료와 자연효모발효로 만든 빵을 주된 생계로 하여 모두 지역 가게, 파머스 마켓에 직거래한다.

 

남성들은 빵을 만들거나 밭일과 같은 바깥일을 하고, 여성들과 아이들은 집안일을 하며 부엌에서 하루 세끼를 준비한다. 아빠는 하늘 아래 흙 밟으며 일하는 동안 우리 세 모녀는 부엌에서 플라스틱 도마 위에 양파를 놓고 잘게 칼질을 한다. 수레가 덜컹거리고 마지막 쇠스랑 한 자루마저 휘어져있더라도 밭일이 좋은데. 하지만 오전 오후 내내 야채를 다듬어야만 한다. 양파는 따갑도록 눈물을 쏟게 하고, 새소리만 남은 따스한 풍경은 창문너머 얄밉게 서있다.

40여명이 먹을 요리재료를 손수 다듬는 일을 하자니 옆에서 동생이 한 소리 한다. 학교 급식아주머니들을 존경한다며. 수십 개의 감자 껍질을 벗겨내는 내 얼굴엔 얼빠진 눈코입만 남아있다. 그다음 샐러드에 넣을 만치 상추를 잘게 찢고, 비트를 강판에 긁는다. 내가 아는 비트는 서양에서 온 샐러드 무로 재작년에 왕창 심었다가 역시나 낯선 맛이어서 방치했던 놈이다. 이걸 어떻게 먹겠다는 건지. 잘은 조각으로 줄어드는 비트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썰고 또 썰다보면 하루가 다 지나가 버린다. ⓒ 박은빈

 

 

한 그릇 가득 차있는 붉은 비트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불현 듯 부엌일이 즐겁다고 느껴졌다. 검정에 가까운 붉은 색과 눈부시기까지 한 빛 말고도 수십 가지의 붉은 빛이 그릇 안에 엉켜있는 걸 보았다. 게다가 식초와 소금으로 간단히 간을 했을 뿐인데 아드득 씹히는 식감과 신선한 기운, 달큰시큼한 맛이 맘에 들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다른 존재로 다가오는 경우다.

 

첫 해 농사지었던 때가 생각난다. 이것저것 신기해서 심었다가 어떻게 먹을지 몰라 못 본 척 피하곤 했다. 결국 바싹 마른 몰골로 퇴비장에 묻힌 불쌍한 녀석들.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두해 째 돼서야 제법 짜임새를 갖춘 작부를 짜고, 요리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엄두가 안나 잘 먹고잘 살자는 취지로 여럿 끌어들였다. 서로의 요리 안부를 묻고, 요리 본능을 자극하는 친구들 덕택에 부엌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직접 기른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면 지난 계절을 통틀어 폭 안겨있는 듯했다. 그동안 농사라는 행위에만 집중했지 작물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못했었다. 이후로는 작물마다 각각 또렷한 개체가 되어 수다스레 말을 걸어오더라. 역시 땅이 많고 돈을 많이 번다고 멋진 농부가 아니다. 밭과 부엌에서 신이 나야지!

 

비록 이곳에서 직접 요리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렇게 원재료를 골똘히 쳐다볼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비트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집에서 버릇들인 식습관을 내려두고 새롭고도 낯선 식탁에 앉을 수 있는 기회다. 부엌과 식탁의 다채로움은 그대로 밭에서도 이어질 것이다.

 

비트에게 반한 순간, 감히 렌즈로 다 담을 수 없는 빛깔이다. ⓒ 박은빈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매일 시작과 끝에 온 식구들과 둘러앉아 모임을 갖는다. 10개월 된 아기도 엄마 허리위에 걸터앉아 땡그란 눈을 깜빡인다. 마주치는 식구들마다 서로 가볍게 끌어안으며 밝은 기운을 주고받는다. 다들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면 누군가 첫 소절 먼저 노래하기 시작한다. 화음 없이 단조롭게 한 목소리를 모으는데 무엇보다 즐거움이 담겨있다. 부르고 싶은 사람이 부를 때까지 노래는 연이어지다가 곧 멈춰진다.

 

누구든지 지난 밤 등불아래 읽었던 성경구절을 가져와 자신이 무얼 배웠는지 이야기한다. 6살 소녀가 벌떡 일어나 엄마 말을 듣지 않았다며 앞으로는 잘 들을 거라고 말한다. 오른편에 있던 네 살배기 동생도 따라 일어나 자기도 잘 들을 거라고 또박 또박 말한다. 누구 하나 시키지도 정하지도 않은 자리다. 누구는 참았던 기색이 역력하여 이 공동체에서 왜 살고 있는지, 신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고백을 하기도 한다. 듣던 나는 뜨악 불안이 엄습하는데, 다른 식구들은 오히려 이야기해줘서 고맙다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매일 모여앉아 나누는 이야기는 서로를 드러내고 열려있게 만들어 준다. 덕분에 그들이 따르고자 하는 믿음이 일상에서도 결코 괴리되지 않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저녁모임 풍경. 곧 기타소리와 함께 노래가 시작될 것이다. ⓒ 박은빈

 

 

여기 아이들은 성별대로 나뉘어져 여자끼리 공주놀이 남자끼리 칼싸움을 하지 않는다. 들꽃을 따서 목걸이를 만들고, 풀밭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논다. 그보다 대부분의 시간은 엄마나 이모 따라 집안일을 돕거나 친구들과 그림을 그리고 선생님에게 악기 연주하는 법을 배운다. 저녁에는 자기네들끼리 장화로 갈아 신고 닭을 살피러 간다. 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스무 마리 각각 이름이 있다. 하루에 두 번 있는 모임시간에도 아이라고 숨어드는 법 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쳐다보며 경청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6살이든 15살이든 어른과 아이로 나눠지지 않고 제 존재를 꼿꼿이 피고 대화한다.

 

우리 가족 모두 애가 애 같지 않다고 놀랐다. 대게 아이들이라면 장보다가 눈에 띈 장난감 안 사준다고 목청 나갈 듯 악을 쓰고 울지 않나? 자기가 가지고 있던 물건이나 공간을 다른 친구와 공유하는 순간, 자기 거라고 뺏어가 숨기거나 내 자리라고 밀치고 엉덩이를 떼지 않는 아이들이 훨씬 평범하다. 하지만 여기 아이들은 먼저 양보하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을 때에는 참을 줄 안다. 처음엔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너무 일찍부터 어른들의 길을 따라 걷게 된 건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23주 함께 생활하며 울고 웃는 아이들과 있노라니 세상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순수함을 배운다. 오히려 무엇이 아이다운 것인지 되묻는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을 바라보면, 듬직한 걸음걸이에 어디하나 기죽음이 없고 밝음이 묻어난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 말고도 공동체로 묶여진 또 다른 식구들이 있어 보금자리는 더욱이 따뜻하다.

 

 

아이들도 발 맞춰 노래하는 시간 ⓒ 박은빈

 

 

아이가 아이다울 수 있는 건 어른이 어른답기 때문이다. 자신 혹은 상대방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끌어안을 수 있다면 어른이라 생각한다. 살아오며 참 많은 어른들을 만나고 지나쳤는데, 주로 내가 기억하는 그들은 자기만 고상한척 눈과 귀를 닫고 입만 열고 있었다. 게다가 이중적이기까지 했다. 어제 밤 꿈에는 중학교 때 잔인하기로 소문난 음악선생님이 그때처럼 나를 손 지검하고 때렸다. 언제나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권력 앞에 엎드려야만 했다. 조금만 엇나가도 화살은 약한 자에게로만 향한다. 배울 자세가 안 되어있는 철딱서니 없는 애가 되는 것이다.

 

이 공동체에서 지내며 나도 따라 눈물 났던 적이 여러 번 있다. 어른들이 부끄러운 자신을 그대로 내보이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서였다. 혹여나 사람들이 나를 험담하지는 않을까 두렵더라도 그들은 용기를 내었다. 물론 누구도 그들을 밀어내지 않았다. 그저 들릴 듯 말 듯 서로를 향해 기도를 보냈다. 한 번은 매일 저녁모임이 그러하듯 다 같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던 때였다. 전형적인 어른들은 보통 율동은 유치원에서 아이들이나 하는 거지,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여기 어른들은 어떤 유치한 가락의 춤사위라도 기쁘게 원 안으로 달려간다. 아이들도 섞여 같은 동작으로 원을 그린다.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어른과 대화할 때는 주로 귀를 사용하게 된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혜를 담아 들어야 하니까. 실은 살짝 비꼰 말이다. 어른들은 왜 그리 말하기를 좋아하는지. 물론 말하는 걸 좋아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데 있다. 듣더라도 자기 의견을 더욱 단단히 하기 위한 재료로 재구성한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가만히 귀를 열고 말하는 이에게 온 정신을 두는 이곳 사람들을 만나 참 반갑다. 나도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에서 바짝 정신 차려야지. 삶에서 운 좋게 만난 멋진 어른들을 기억하며.

 

 

ⓒ 박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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