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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가족, 촌스러운 여행 (4)

by 농민, 들 2014. 4. 17.

2014년 2월, 가족들과 유럽 시골마을로 일명 촌스러운 여행을 떠난 박은빈의 기록입니다. 박은빈과 그녀의 가족이 유럽여행 중 만나는 다양한 농촌과 농업 협태를 전합니다. 매달 첫째, 셋째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농저널 농담]

 

<농저널 농담> 박은빈

 

 

 

봄에는 삽질

 

조랑말 두 마리와 양 네 마리가 넓은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다. 그 옆에 얼룩 돼지도 같이 놀고 있다. 들판에 흩어져있는 귀여운 똥들을 한 바구니에 모아 퇴비더미로 옮겨 준 후, 겨울 내 쉬고 있던 밭을 갈아엎는다. 곧 닭들이 쫓아와 부드러운 흙에 몸을 부비고 그 안에 맛있는 벌레들을 쪼아 먹는다. 완두콩 세알씩 줄줄이 땅에 담고, 아까 뽑다가 놔둔 잡초들을 마저 정리해주면 차를 마실 시간이다. 이 모든 일이 낯익다. 봄을 맞이하는 풍경이다. 지난겨울부터 여태 잡지 못했던 삽자루도 실컷 보듬어준다.

 

우리는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떠나 차를 타고 4시간 거리의 디스(Diss)로 왔다. 우리가 16일 간 머무는 핀쳄스 농장은(Fincham's Farm)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담한 곳이다. 온실에는 지난해 열심을 다했던 토마토 줄기가 아직도 꽂혀있다. 텃밭에는 송송 삐죽이는 마늘이 보인다. 먼지 가득한 창고에 들어서면 흙이 잔뜩 묻은 농기구들이 간신히 벽에 기대어 있다. 수레와 화분, 장화 등등 모든 게 어지럽게 흩어져있지만 그 자체로 질서가 성립되는 듯하다. 농장주인 브리짓할머니는 너무 바빠서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했다는 말을 내내 반복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할 일이 많다는 건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뜻이다. 흙 밟고 씨앗 뿌리는 봄의 춤사위라면 기꺼이!

 

 

 

땅을 갈아엎으니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영국 지렁이. 그립던 친구를 만난 것 마냥 반가웠다. ⓒ 박은빈

 

 

20년 전, 런던에 살던 브리짓은 질퍽이는 땅이 전부였던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우리말로 치자면 귀농을 한 셈이다. 그 이유는 조금 특별하다. 젊은 브리짓은 친구들과 함께 런던 한복판에 있는 한 주택을 13개의 방이 있는 집으로 수리하였다. 그곳에서 여러 프로젝트들을 벌였는데, 주로 정신적으로 여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와서 머물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야말로 자연과 가까운 시골에서 지낸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장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그 당시 값이 가장 저렴했던 지금의 농장을 샀다. 말이 농장이지 쓰러져가는 돼지우리만 덩그러니 있는 황량한 곳이었다. 이후 수년 동안 전 세계에서 온 WWOOFer(WWOOF)들과 Helper(HelpX)들의 손길을 거쳐 15명도 넘게 편히 머무를 수 있는 농장이 되었다.

 

 

 

 

가족의 탄생

 

이 농장에는 브리짓 말고도 9명의 식구들이 함께 살고 있다. 모두 부담되지 않는 정도의 월세를 내며 지낸다. 만약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에는 농장 일을 도우며 월세를 대신한다. 주로 브리짓의 오랜 친구인 캐리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다. 길 위의 목사라 불리는 캐리는 거리에서 만난 노숙인들, 알콜·마약 중독자들을 데리고 자주 농장을 찾아왔다. 그중 머물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 지금과 같이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농장에 찾아오는 캐리는 언제나 밝고 힘이 넘친다.

 

 

저녁시간이 가장 시끌벅적하다. 가운데 보이는 할머니가 바로 브리짓. ⓒ 박은빈

 

 

이곳은 사회복지시설도 아니요, 공동체도 아니요, 평범한 농장이다. 이곳엔 내담자’, ‘클라이언트’, ‘환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다. 70대 노인에게 가당찮은 무거운 짐을 들어줄 친구라면 모를까. 공동의 규칙은 술과 마약을 하지 않는 것 외에 딱히 없다. 자유롭게 각자의 공간과 생활을 만들어 가면된다. 혼자 밥 먹기 외로울 땐 모두 함께 저녁을 먹고, 심심한 날이면 다 같이 거실에서 영화를 본다.

바로 이전에 머물었던 브루더호프는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 손녀들이 모두 같이 사는 대가족 공동체였다. 그와는 너무나 다르게 이곳은 그 누구도 서로의 가족이 아니다. 여기에는 주로 우리가 가족이라 여기는 결혼한 사람도, 자식을 낳은 사람도 없다. 8년 전에 Helper로 왔다가 인연을 맺게 된 대학생, 틈틈이 농장 살림을 도우며 자기 작업을 즐기는 아티스트, 작은 배에서 살다가 추운 겨울을 나기 어려워 머물고 있는 누군가, 길에서 캐리를 만나 이곳에 오게 된 누군가. 모두들 가족을 떠나 또 다른 가족을 구성하고 있다.

 

어느 날 밤은 브리짓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브리짓은 함께 사는 게 즐거울까? 왜 결혼은 하지 않았을까? 보통의 가정을 꾸리고 싶지는 않았을까?

나도 함께 살았던 기억이 있다. 대학교 옆에서 자취를 할 때에 따로 자취하던 친구들 3명을 모아 방 세 개에 거실이 딸려있는 커다란 집을 같이 마련했다. 우리끼리만 잘 살자고 시작한 게 아니라 혼자 자취방에서 짜파게티 끓여먹고 있을 다른 친구들, 더 나아가 무심하게 스쳐지나가는 동네 사람들하고도 같이 잘 놀아보자는 취지였다. 가장 먼저 서로 가지고 있던 책들을 다 모아 일일이 책이름과 글쓴이를 기록해서는 누구나 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에 개방하였다. 비록 그 누구도 빌리지 않아 망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의 작당은 계속되었다. 노나(너나)없이 노나(나눠)먹자는 노나모임을 만들어서 인근 자취생들과 네트워크를 이뤘다. 덕분에 1인 주거자라면 틀림없이 버렸을 파 한 단을 무사히 나눠먹을 수 있었다. 또한 음반 모으는 게 취미인 친구에게 꼭 듣고 싶었던 앨범도 빌릴 수 있었다. 어떤 날은 노나모임잔치를 열어 서른 명이 넘는 친구들이 우리 집에 가득 차기도 했다. 그 모임을 시작으로 서로 모르던 사이 간에 대화가 시작되었다. 7명이나 되는 친구들이 같이 살던 때에는 특히나 매일 밤이 복작였다. 늦은 밤마다 공포의 초인종을 누르던 윗집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늘 잠자기 전 바른 아이크림을 미처 닦지 못하고 우리에게 화를 내러 달려오셨다. 우린 영롱히 반짝이는 아이크림 때문에 눈이 부실 뿐이었다. 어느 날은 주인집 아주머니가 문을 따고 들어와 세탁기를 훔쳐가는 사건마저 벌어지기도 했다. 다행이도 함께 사는 덕분에 그 모든 시간들을 즐거이 연주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도시에서 농촌으로, 대학생에서 농사짓는 녀석으로 변하였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같은 관심과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다만 부모로부터 물리적, 경제적으로 독립하면서부터 나만의 공간과 가정에 대해 새롭게 상상하기 시작했다.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걸까?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면 어떤 모습일까? 란 질문들처럼 말이다. 앞집 할머니가 나를 볼 때마다 옆 마을 총각과 결혼하라고 소리칠 때부터였는지, 동네 꼬마아이가 엄마한테 와락 안기며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걸 볼 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결혼이란 주제 옆에 부쩍 가까이 살고 있다.

 

 

농장 옆 마을을 산책하며, 여행한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는 걸 알았다. ⓒ 박은빈

 

많은 사람들은 이성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길 바란다. 나도 피할 수 없이 같은 바람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가만히 보니 내 주변엔 단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정이 별로 없다. 내가 말하는 단란의 척도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운동회 날이면 아주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시원한 그늘에 펼쳐놓은 돗자리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날에 나도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 왜 쟤는 할머니랑 둘이서 도시락 먹어?”

가족이란 뭘까? 숨 쉬는 모든 것을 포함하여 숨 쉬지 않는 것마저도 이렇게나 다양한데,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도 무수히 다양할 거라 믿고 있다. 당연하게 하나의 그림만 그리며 살고 싶지 않다. 마침 브리짓은 결혼하지 않고 한평생을 살아온 할머니로서는 내게 첫 인물이다. 그렇다고 그를 통해 결혼을 꼭 해야겠다거나 하지 말아야겠다는 단서를 얻을 생각은 없다. 결혼이 실수나 공식이 된 사회에서 그밖에 선택을 한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1차 가족대전

 

아빠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무엇인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밭에서 같이 일을 할 때 자주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돼. 봐봐. 이렇게 해야 해.” 십여 년 훌쩍 넘게 농사지어온 아빠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일머리를 늘어놓는다. 농장주인인 브리짓과 일을 할 때에도 이렇게 일하면 두 번 일인데. 거참.” 중얼거리며 마지못해 따라 일한다. 이미 옆에서 일하고 있는 내 표정은 딱딱하게 마른 말똥마냥 잔뜩 굳어있다. 나야말로 아빠가 맘에 들지 않는다. 물론 나도 브리짓과 일을 할 때엔 가끔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한 예로, 쌓여있는 나무를 치워달라고 해서 열심히 줍고 있으면, 곧 다시 와서 감자를 심자고 한다. 필요한 도구를 수레에 싣고 막 출발하려고 하면, 브리짓이 옆에 서있는 사과나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아무래도 가지치기를 먼저 해야겠단다. 결국에는 사과나무 가지를 정리한다. 하지만 브리짓은 이미 사과나무 건너편 장미덩굴 곁으로 다가가고 있다.

 

 

 

작은 정원을 만들기 위해 울타리를 설치하는 아빠와 엄마 ⓒ 박은빈

 

 

아빠는 거의 매년 혼자서 3톤 가까이 되는 배추를 손수 절여 팔았을 만큼 혼자 일하는 게 익숙한 사람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책 보고 공부해서 3년 동안 홀로 지었다. 지독히도 고독하게 일해 온 습관이 여기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기까지 하고 마치자는 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해치운다. 못된 딸내미는 그런 아빠를 이해하고 싶지 않다. 아빠의 세월 깊은 조언은 자신이 가장 우월하다는 허세로만 들린다. 지내는 게 어떤지 이야기하는 모습도 내 눈엔 이곳을 폄하하고 평가하는 걸로 보인다. 검은 칠판에 손톱으로 긴 선을 곧장 그으면 끼이익! 신경이 곤두서는 소리를 다들 참을 수 없듯이. 나도 아빠의 모든 행동을 참을 수 없다. 덕분에 난 요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철갑으로 무장하고 있다. 한 겹으로도 모자라 세 겹의 갑옷을 입고 있는데, 허리춤에는 날카로운 칼도 두르고 있다. 온종일 통틀어서 내가 아빠에게 하는 말은 딱 하나이다.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해.” 그게 아니면 한 겨울 가장 추웠던 그 날의 온도로 됐어.”

이리도 차가웠던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가끔 집에 가서 아빠 일을 묵묵히 돕는 착한 큰딸이었지, 엄마도 돌변한 날 보고 놀란다. 사실 차가움 이면에는 커다란 돌덩이로 명치를 얻어맞는 것과 같은 아픔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아팠던 것처럼 그다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눈을 감으면 자그마한 7살짜리 아이가 커다란 아빠의 보폭에 맞춰 두 걸음 먼저 뛰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 어린 아이 손이나 좀 잡아주고 같이 천천히 걸어주지. 아빠라는 사람은 늘 성큼성큼 혼자 걸어갔다. 자꾸만 내 안에 어린아이가 일어나 말을 걸어온다. 왜 나를 더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았느냐며 엉엉 울고 있다.

 

일이 모두 끝난 늦은 오후마다 아빠는 나를 피해 밖을 나가 한참을 헤매곤 했다. “미안해. 아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별로 울고 싶지 않았지만 벌써 콧물이 묵직했다. 나의 아빠도 누군가의 아들로 태어나, 나처럼 7살의 해맑은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다. 그 사람만이 겪은 시절과 인연들이 있다. 지금도 스스로 겪어야 하는 그만의 인생이 있다. 아빠를 미워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미워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 주어진 시작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빠도 나도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제힘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 명확하게도 온전히 자기 몫이다. 알고 있던 사실이 평소보다 더 깊은 곳으로 느릿느릿 가라앉는다. “각자의 몫을 해내면서, 서로를 그대로 인정해줄 수도 있어야 해.” 아빠가 덧붙인 말은 역시나 많이 들어봤던 말이지만 아주아주 어렵다. 차라리 영어가 쉽다.

 

이제야 처박아두었던 짐을 앞마당에 꺼내놓았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제 모습을 드러냈다. 하도 오랫동안 구석에 둬서 두텁게 먼지 쌓여있는 꼴이 보기 싫다만, 환한 낮이면 지나가던 꿀벌도 구경하겠지. 마침 떠있는 보름달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적어 내려가는 이 글자들 또한 참을 수 없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근데 어쩌나, 고작 하나 꺼내놓았을 뿐이다. 아직도 쾨쾨하고 어두운 다락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다 내팽개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나만 그런 게 아니겠지? 무엇하나 시원스러운 게 없지만, 한편으로는 다락방에 하늘창을 내고, 예쁜 천을 달 꿈을 꾼다. 언젠가 그곳에서 심심한 오후 책을 읽다 잠이 들길, 친구들과 하늘창을 보고 누워 별이 보일 때까지 수다를 늘어놓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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