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여행] 촌스러운 가족, 촌스러운 여행 (1)

by 농민, 들 2014. 3. 5.

 ©박은빈

 

20142, 가족들과 유럽 시골마을로 일명 촌스러운 여행을 떠난 박은빈의 기록이 연재됩니다. 박은빈과 그녀의 가족이 유럽여행 중 만나는 다양한 농촌과 농업 형태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농저널 농담> 박은빈

 

 안녕하세요. 농사짓는 박은빈이라고 합니다.

농부할아버지와 무시무시한 트랙터가 사는 농촌에서 농부언니로, 동네에선 새악씨로 불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다 농부아버지를 만나, 어쩌다 농고를 나와, 어쩌다 충남 홍성에서 친구들과 아름다운 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제 나이 스물여섯, 또래 친구들이 불안한 마음 이끌고 직장 찾아다니는 세상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갓 수확한 양배추와 피망을 건네주는 것! 혹여나 촘촘한 도시살이에서 하나뿐인 존재또한 미뤄두고 잊어버린 건 아닌지 친구들 걱정이 앞서는데, 오히려 제가 더 걱정이 되는가봅니다. “시골에서 먹고 살 수 있어? 애쓴다.”며 측은한 눈빛을 잊지 않습니다. ? 나야말로 잘~ ‘먹고 살고있는데!!?? 

 

주변에서 듣는 귀농, 귀촌 이야기가 그리 낯설지 않은 요즘입니다. 다만 귀농 1세대들의 세월 깊은 이야기들만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문득 귀농 2세대들의 삶이 궁금해집니다. ‘그 농부 딸내미는 뭐한데?’ 똑같은 도시에서 똑같은 직장에 다니는 진로만 보고 살아온 친구들에게 다른 길, 다른 삶을 소개해주고 싶습니다.

 

어느 귀농 가족이 잠시 모든 걸 중단하고, 유럽 시골마을에서 1년 간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귀농한 아버지를 둔 딸내미의 시선으로, 농촌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젊은이의 시선으로 여행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아래 시작 편을 공유합니다.

 

 

 ©박은빈

 

엄마는 말했다.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여행을 가고 싶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지금이 아니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아.” 

 

 

 하루 이틀 만에 툭하고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두 딸내미를 키우며 잠시 본인의 본연의 삶을 내려놓았던 몇 십 년이 지나고서야 내뱉은 말이었다. 그 말에 묻은 세월의 힘이 곧장 우리들 말문을 막아섰지만, 동생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달려있었다. 엄마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 혼자서라도 당장에 가고 싶지만, 이렇게 다 모인 자리에서 말하려고 했던 이유는…….” 

 

 

가족여행. 다 같이 떠나자는 말이었다. 귀농한지 14년 동안 단 한 번도 밭을 떠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 아빠, 나도 이제 막 친구들과 농사 좀 제대로 져보려고 하는데? ? 아까부터 울던 동생 얼굴만 온통 감동의 눈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한편 그즈음 나는 속으로 더 늦기 전에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아빠 혼자 치사하게 12살짜리 5살짜리 두 딸내미를 엄마한테 맡기고, 시골에서 농사짓겠다고 떠났었고, 그 당시 엄마 또한 시골에서 살고 싶지 않은 의지가 완강했기에 가족과의 생활은 어엿한 25살이 되어서도 그리움으로 남아있었다.

 

가장 먼저 동생이 여행을 위해 고등학생 신분을 내려놓기로 하였다. 다음 차례로 나는 가족이 모두 떠나는 여행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역시나 아빠가 관건이었다. 좋게 말하면 자기 신념이 뚜렷한, 삐딱하게 말하면 고집이 센 우리 아빠는 예상했던 대로 가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겨울이 봄이 되고나서야 엄마의 한 맺힌 소원, 여자 셋 보디가드해줄 아빠가 꼭 필요하다는 동생의 호소, 우리가족이 또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게 절망스럽다는 큰 딸의 눈물은 아빠의 마음을 뒤흔들고 말았다.

 

 

 

그래, 가자!”

 

 

여행기간은 1. 20142월에 한국을 떠나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터키를 건너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쏘다니는 나라가 이렇다한들 이 여행기에서 파리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에서 본 모나리자 이야기나 영국 런더너의 일상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각 나라별 WWOOF(http://www.wwoof.org/)GEN(http://gen.ecovillage.org/)을 통해 유럽의 시골마을과 농장에서 머무를 계획이다. 손과 옷에 흙 묻혀가며 한 해를 보내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촌()스러운 여행이다.

 

 

 

 ©박은빈

 

 

기대도 걱정이 되는 요즘, 어느 가족도 24시간 내내 얼굴 마주보며 살지 못할 텐데, 13년 만에 가족과의 집중동거라니. 특히나 중학교를 갓 나와서부터 기숙사 고등학교를 다니며 일찍이 가출(?)하여 가족과 산 날보다 떨어져 산 날이 더 많은데 말이다. 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취향을 내내 어떻게 맞춰야 할까. 아이돌 S***그룹을 사랑하는 동생의 마음은 늘 음방(음악방송)에 가있는데, 내리 시골에서 지내는 게 어떨지. 엄마도 돈만 있다면 고되게 일하고 싶지 않을 텐데.

 

이렇게 말하니 이 여행은 나만을 위한 여행 같다! 아무렴 좋다! 내 목적은 딱 두 가지. 20대 중반 느지막이 가족과 살 부대끼기. 부모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는데 큰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그동안 만나왔던 농촌과 농부, 그 농부가 디자인한 밭을 넘어 유럽 내 다양한 농장들, 올곧게 어쩌면 모나게 자신의 철학으로 밭을 일구는 소농들을 만나는 것이다.

 

이미 시작되었다! 울퉁불퉁하고도 촌스러운 여행기, 시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