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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빛으로 그린 농사

[빛으로 그린 농사] 실습주간 맞이 몸풀기

by 농민, 들 2014. 5. 16.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2학년인 문수영이 학교와 지역에서 살며 배우며 겪게 되는 것들을 2주에 한 번씩 빛으로 그려냅니다. [농저널 농담]

 

실습주간 맞이 몸풀기

-  전공부 체육대회 이야기  -

 

<농저널 농담> 문수영

 

ⓒ 문수영

 

5월이면 풀무학교 전공부 식구들끼리 하는 체육대회가 열린다. 비가 퍼붓는 날이 아니고서야 바쁜 농사일로 학교에서 지지고 볶으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마음 놓고 푹 놀 수 있는 때가 바로 이 체육대회다. 선생님들, 학생들, 전공부를 졸업한 수업생들까지 삼삼오오 모여 준비한 놀이를 하면서 들판에 드러누워 쉬고 먹는다.

 

전공부 안에는 뛰어놀 수 있을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푸른 잔디도 깔려있고, 넓어서 움직이기 좋은 근처 풀무고등학교 운동장을 빌렸다. 요 며칠 5월 같지 않게 날이 흐리고 바람이 제법 쌀쌀해서 체육대회 날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적당히 뜨거운 햇빛이 내려주어서 우리의 기분은 한층 들떠 있었다.

 

작은 숲속을 옮겨놓은 듯한 고등학교 운동장은 울창한 나무들로 우리를 둘러싸며 반겨주었다. 본격적인 놀이를 하기에 앞서 국민체조 노래를 큰 소리로 틀어놓고선 이 동작이 맞나? 저 동작이 맞나? 어설픈 몸짓으로 서로 눈치만 보았다. 결국 제일 자신 있는 모습으로 팔다리를 쭉 뻗는 재승오빠를 따라서 같은 자세를 무한 반복하며 준비운동을 했다.

 

 

ⓒ 문수영

 

진행자 3인방 솔찬이, 벼리, 백겸이. 남자 셋의 끈끈한 결속력을 보여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그들도 축구공 앞에선 정신이 쏙 빠져 돌아오지 못하는 남자들이었다. 나중에는 놀이보다 쉬는 시간이 많아서 쉬다가 지친 사람들이 진행자를 부르러 다니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 문수영

 

‘보디가드 피구’, ‘몸으로 말해요’ 게임을 끝내고 이어달리기를 했다. 보통 똑같은 줄에 나란히 서서 팀끼리 바통을 주고받으며 달리는 게 이어달리기라면, 우리의 달리기는 조금 특별했다. 총 4구간으로 나뉘어서 못줄 빨리 감기, 물장화 빨리 신기, 유박 포대 들고 나르기, 코끼리 코 10번 돌고 모판 흙 담아 들고 가기를 하나의 레이스로 뛰는 거였다.

 

‘소농의 대표주자’ 장쌤 라인과 ‘영원한 기계사랑’ 문쌤 라인으로 팀이 정해졌는데, 마지막 게임이라서 그런지 불꽃 튀는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아주 넉넉한 차이로 문쌤 라인이 싱겁게 이겨버렸다.

 

 

 

ⓒ 문수영

 

이대로 체육대회를 끝내는 게 못내 아쉬웠던 사람들의 열렬한 호응으로 번외 게임 축구가 시작됐다. 공평하고 안전한 게임을 위해 여자가 공을 넣는 걸로 규칙을 정했지만,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은 상태여서 예상 외로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다. 공을 뺏으려고 짧은 다리를 닿는 데까지 뻗어보기도 하고, 팔로 붙잡기도 하고, 헛발질 하다가 엎어지고, 잔디밭에 쓰러지기도 했다. 같은 편이 공을 넣으면 박수로 북돋아주고 상대편이 공을 넣으면 함께 탄성을 내질렀다. 오랜만에 땀을 흠뻑 흘리며 뛰어다닐 수 있어서 다들 아픔도 못 느낀 채 열심히 달렸다.

 

2대 2로 동점골을 넣고 “이제 집에 가자!” 라고 외치는 식구들 얼굴이 싱글벙글하다.

 

 

 

ⓒ 문수영

 

아담한 체구의 오도쌤은 굴러가는 공을 졸졸 따라다니기 바쁘셨다. 몇 분 만에 지쳐버린 선생님이 “아이구”하며 털썩 무릎을 꿇고 허탈하게 웃는 가운데, 잔디를 깎으러 나온 고등학교 친구들이 멀뚱히 서서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재밌다.

 

 

ⓒ 문수영

 

보너스 사진. 같은 날, 2학년 사진 수업 가는 길에 찍은 풍경.

 

밝맑도서관에서 1교시 수업을 마치고, 사진을 가르쳐주시는 민쌤을 만나러 걷고 있던 도중 집 앞에서 부지런히 빗자루 질을 하시고 있는 홍쌤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니 특유의 으하하 웃음소리를 내시며 “너희가 날 위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허다. 수업 갈 때는 잘 구경하면서 다녀야 돼.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수업 20분 늦어도 내가 괜찮다고 할 테니까 얼마든지 돌아 댕기다가 가. 아무렴. 이것도 수업이야!” 하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명랑한 목소리에 몸을 쭈뼛거리다 나도 몰래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때, 우리 앞으로 민쌤 차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신 민쌤이 작업복 복장의 홍쌤을 보고 허둥지둥 사진기를 챙기시더니 “선생님, 지금 너무 멋지세요!” 하면서 다가가 사진을 찍으셨다. 그 모습이 너무 그림 같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던 나는 수경이의 재촉에 이끌려 사진기를 집어 들었다. 철컥이는 셔터 소리가 귓가에 가득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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