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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빛으로 그린 농사

[빛으로 그린 농사] 여름날

by 농민, 들 2014. 8. 5.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2학년인 문수영이 학교와 지역에서 살며 배우며 겪게 되는 것들을 빛으로 그려냅니다. [농저널 농담]

 

 

여름날

 

<농저널 농담> 문수영



ⓒ 문수영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떠들썩한 이 밤, 하늘색이 불타오른다. 


바람소리가 요란스러워 창문이 흔들댄다. 얼마나 무섭게 쏟아지려고 이러는 걸까. 

거의 한달 동안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밭은 엉망이 되고야 말았다.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아 딱딱하게 땅이 메마른가 하면 갑자기 때를 모르고 몰아치는 비바람에 참깨와 옥수수가 쓰러져 누웠고 생강은 옥수숫대에 깔려 꺾여버렸다. 저번 주 내내 내린 비로 풀들은 한 뼘씩 더 자라 무릎까지 컸다. 여기가 풀밭인지 그냥 밭인지 알 수 없을 노릇이었다. 


나는 늘 어깨에 걸치던 사진기를 벗어던졌다. 끝없이 자라나는 풀과 싸우려면 온 몸을 움직여 풀을 매어야했기 때문이다. 쪼그려 앉아서 들려있던 엉덩이가 나도 모르는 새 땅에 닿아지고 차가운 촉감이 느껴진다. 엉금엉금 기어가며 밭을 매고 나면 티셔츠, 바지 하나 할 것 없이 흙투성이로 변한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가까이 땅과 한 몸이 되어간다.



ⓒ 문수영



하루는 땅콩 밭을 맬 때였다. 


1주일씩 돌아가며 여름휴가를 보내느라 고작 다섯 명이서 일을 해야 했다.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들이 보시면 웃을 일이지만, 우리에겐 앞길이 구만리였다. 다부지게 호미를 붙잡고 일을 해나가도 풀이 많고 땅이 질어서 그런지 속도가 잘 붙지 않았다. 

그런데 뒤에서 중얼거리는 재미난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혜순언니였다. 혜순언니는 수녀님이다. 그런 언니를 예수님과 결혼했다며 장난스럽게 얘기하곤 한다. “아유. 하느님. 세상에 웬 풀들이 이렇게나 많아.” 하며 언니는 옆집에서 기르는 하얀 염소에게 “얘, 이리 와서 이 풀 좀 먹어.” 하기도 하고 풀들에게 말을 건네기도 했다. 절대 너희가 미워서 뽑는 게 아니라고. 미안하다며. 


밭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다 뽑아버리겠다는 마음으로 눈에 불을 키며 전투적으로 풀을 맸던 난 뜨끔해버렸다. 맞다. 농사는 이렇게 짓는 게 아닌데. 사람하고 관계를 맺는 것처럼 일을 하면서 나와 마주하는 풍경을 두런두런 살피고 다정스런 눈빛을 보내주는 것, 이야기 걸어주는 것, 여유로이 받아들이는 것. 그래야 한다는 걸.


내 몸과 땅은 쉴 새 없이 부딪치지만 그 사이로 어떤 작은 신호도 주고받지 못함에 또 반성하는 나였다.



 

ⓒ 문수영



보너스 사진. 전공부 전대미문의 오리 실종 사건.

 

집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다 학교에 남아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분명 오기 전까지 논에서 잘 헤엄치고 있던 오리 30마리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아마 전기망 틈새를 뚫고 들어온 산짐승이나 족제비가 물어간 것 같다고 했다. 마음이 일렁였다. 배고프다고 꽉꽉 울어대던 오리들이 눈에 선했다. 혹시나 수로 밑으로 떠내려 간 건 아닐까, 집을 못 찾는 건 아닐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오리농법으로 논에 넣은 오리들은 벼 이삭이 패기 전에 밖으로 내보내진다. 이삭이 팰 무렵이면 논에는 더 이상 큰 오리가 먹을 게 없어 자칫 잘못하다간 이삭을 먹을 수 있어서이다. 보통 농가에서 이렇게 남은 오리들을 팔거나 먹는다. 이맘때쯤 학교에서도 실습의 하나로 오리 잡기를 해왔다. 어쩌면 족제비한테 잡아먹힌 거나 우리한테 잡아먹히는 거나 오리에게는 다르지 않을 거다. 결국 나 또한 살아있는 오리가 죽은 채로 내 앞에 왔을 때는 아무 느낌 없이 열심히 먹어댈지 모른다. 

그래도 슬프다. 두 손에 폭 잡힐 정도의 작은 몸집으로 처음 학교에 오던 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구석에서 숨어있던 모습, 구호를 외치며 훈련시키는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대답해줬을 때, 물에서 놀다가 벼 포기 사이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던 얼굴들이 겹겹이 떠올랐다.

 

이 사진은 오리들의 첫 입수 날이다. 해질녘 빛이 사그라지기 전 아주 고요한 논에 찰랑이는 물결들이 번져갔다. 

오리들은 기지개를 펴듯 몸을 털고선 물을 마셨다. 우리는 그 순간을 숨죽이며 가만히 지켜봤다. 그들의 움직임이 눈을 뗄 수 없이 아름다웠고 빛났다. 필연적이게도 농사를 지으면서 수많은 삶과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죽음은 소화하기 어렵다. 무언가 턱 걸리지만 뱉어내지 못한 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놓치고 만다. 주변의 아픔을 느끼는 것에 서툴고 그것들을 용감히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한 나는 부끄러움을 전하며 오리들에게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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